같은 1등, 다른 男·女 상금 '성차별 아닌가요?'

기사승인 2019-11-23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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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골퍼 박인비(세계랭킹 13위)는 지난 7월 “여자 세계대회 상금 규모가 남자 대회의 절반 정도만 돼도 좋을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여성의 날인 지난 3월 8일에는 미국 여자 축구대표팀 27명이 로스앤젤레스 지방법원에 미국축구연맹(USSF)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여성 선수들에게도 남성 선수들과 동일한 수준의 임금과 훈련 환경을 보장하라는 요구였다. 

'남녀 운동선수 동일임금'은 최근 스포츠계의 큰 화두 중 하나다. 여성 선수들이 성차별에 따른 저임금을 받고 있다는 주장과, 시장 원리에 의한 임금 차이는 불가피하다는 시각이 대립 중이다. 

여성 선수들의 주장처럼 세계적인 프로 스포츠 대회에서 남녀 선수가 받는 상금 차이는 크다. 지난 7월 영국 오픈 대회 ‘디오픈’에서 우승한 셰인 로리는 상금으로 193만5000달러(약 23억원)를 받았고 ‘위민스 브리티시오픈’에서 우승한 시부노 하나코는 67만5000달러(약 7억8000만원)를 받았다. 이는 남자 우승 상금의 3분의 1에 못 미치는 액수다. 

지난해 ‘국제축구연맹(FIFA)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승한 프랑스 남자 축구대표팀은 상금으로 3800만 달러(약 452억원)를 받았다. 반면 지난 7월 ‘FIFA 프랑스 여자월드컵’에서 우승한 미국 여자 축구대표팀은 400만달러(약 47억원)를 받았다. 총 상금 규모도 13배 이상 차이 났다. FIFA는 남자 월드컵에 4억 달러(약 4700억원), 여자 월드컵에는 3000만 달러(약 355억원)의 상금을 걸었다.  

노력에 대한 보상이 성별에 따라 다르게 주어지기도 한다. 한국 남녀 축구 대표팀은 지난 2017년과 2018년 연이어 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얻었다. 그러나 이들에게 지급된 포상금의 차이는 컸다. 남자 대표팀은 2017년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하고 총 25억원을 받았다. 기여도에 따라 선수 1명당 4000만원(D급)에서 1억원(A급)까지 차등 분배됐다. 이듬해 월드컵 본선 진출 자격을 얻은 여자 대표팀에는 총 1억8000만원의 포상금이 지급됐다. 선수 1명당 800만원 꼴이었다.

임금차가 큰 것은 사실이지만, 선수들의 임금은 철저히 시장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아틀란타 유나이티드 FC 프랑크 더 부르 감독은 영국 가디언을 통해 “대회 수익이 선수의 임금 책정과 연동된다”며 “여자 스포츠가 남자 스포츠만큼 인기를 얻는다면 그만큼 돈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녀 선수 보상의 차이는 성차별이 아닌, 리그의 시장 규모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남자 경기 수익률은 여자 경기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FIFA에 따르면 2018 러시아 월드컵 시청자는 약 35억7200만명이었다. 2019 프랑스 월드컵 시청자는 약 11억2000만명으로 기록됐다. 포브스지에 따르면 러시아 월드컵으로 FIFA가 거둔 수익은 약 60억 달러(6조9000억원)였다. 반면 프랑스 여자 월드컵의 수익은 약 1억1300만 달러(1315억3200만원)로 추정됐다.

당장 국내 여자 골프만 들여다 봐도 상황이 다르다. 

여자 골프의 인기가 높은 국내 리그에선 여성 선수 수입이 남성 선수보다 많다. KLPGA 상금 1위 최혜진은 올해 총 12억700만원의 상금을 거뒀다. KPGA 챌린지투어 상금 1위 박승은이 받은 상금은 총 6억4900만원이다. 출전 기회도 여성 선수에게 더 많이 주어진다. 2019년 1부 투어 기준으로 국내에서 개최된 프로 골프 대회는 여자 대회가 29개, 남자 대회가 16개였다.

같은 1등, 다른 男·女 상금 '성차별 아닌가요?'

현재로선 남녀 선수의 동일임금을 둘러싼 양측 견해는 타협점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 여성 선수들의 처우 개선도 중요하지만, 시장 논리를 배제할 때 발생하는 부작용을 무시할 수 없다.

일례로 테니스계는 인위적으로 동일하게 설정한 남녀 상금으로 인해 역차별 시비에 휩싸였다. 

호주오픈·프랑스오픈·윔블던·US오픈 등 4대 메이저 테니스 대회는 선수 성별과 무관하게 같은 상금을 지급한다. 그런데 남자 경기는 5세트, 여자 경기는 3세트로 진행된다. 지난 7월 윔블던 단식 결승에서 남성 선수 조코비치는 4시간57분을, 여성 선수 할렙은 56분을 뛰었다. 두 선수 모두 우승 상금으로 235만 파운드(약 34억7000만원)를 받았다. 이에 남성 선수들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위배된다며 반발했다.

전문가들은 남녀 선수의 처우 격차를 성차별 문제로 간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전용배 단국대학교 스포츠경영학과 교수는 “선수의 연봉과 상금은 수요 공급 법칙에 따라 형성된다”며 “남녀 선수의 신체적 차이가 경기력의 차이로 이어지고, 이는 시장 경쟁력의 차이로 귀결된다”고 말했다. 배상우 고려대 국제스포츠학부 교수도 “국가 대표 선수단의 경우 ‘기회의 평등’을 고려해 남녀 선수의 동일임금·동일포상을 논할 수 있다”면서도 “협회 기금으로 운영되는 팀이나 상업적 대회에서는 남녀 선수에게 주어지는 보상의 차이가 불가피하다”고 선을 그었다.

일각에서는 수익성을 양보하고 남녀 선수에 동등한 보상을 시도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정용철 서강대학교 체육교육학과 교수는 “남자 스포츠에 비해 여자 스포츠가 재미와 경기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는 오류”라고 말했다. 그는 “스포츠 소비자들이 ‘르카프 정신’(강하게·높게·빠르게)에 매몰돼 있다”며 “스포츠에는 우아함, 아름다움, 정밀함 등 다른 감상 요소가 많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캠페인을 통해 인위적으로나마 동일임금을 도입하고, 여자 스포츠에 힘을 실어준다면 스포츠를 보는 소비자들의 시각도 다양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성주 인턴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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