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편의점 할머니”… 노인 일자리사업 참여자 동행해보니

빈곤 해소 기능 외에도 삶의 활력을 주는 긍정적 영향

기사승인 2020-06-04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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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노상우 기자 = “어서 오세요.” 지난 1일 경기 고양시의 한 편의점. 계산대에 있던 초로의 할머니가 환한 미소로 기자를 반겨줬다. 할머니는 고양시니어클럽에서 주선한 노인 일자리사업에 참여한 김양순(64)씨였다. 

이 편의점은 고양시니어클럽이 편의점과 직접 가맹계약을 맺고 운영하는 2번째 ‘시니어편의점’이다. 낮에는 만 60세 이상의 시니어근무자가 오전, 오후로 나눠 근무를 하고, 밤에는  청·장년 근무자가 판매 및 매장을 관리하고 있었다. 일명 ‘세대 통합형 일자리’. 원래 할머니는 전북대학교 인근에서 커피전문점을 운영했다. 손님들이 줄을 설 정도로 운영이 잘 됐지만, 인근에 계속 늘어나는 프랜차이즈 카페와의 경쟁으로 매출이 줄기 시작했다. 그렇게 카페를 접은 게 10년 전. 이후 정부의 다른 사업을 통해 제빵 기술을 배웠지만, 생각하던 것과 달라 이마저 직업으로 이어가지 못했다.

시니어편의점과의 인연은 우연히 찾아왔다. 흥미를 느낀 할머니는 참여를 신청, 올해 3월부터 일을 시작했다. 편의점에서 그가 맡는 일은 판매 및 매장 관리가 전부가 아니다. 택배 접수·조회, 교통카드 충전·환불 등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천천히, 집중해서 최선을 다하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처음에는 여러 명이 함께 근무하다가 현재는 혼자 편의점을 맡아도 무리가 없다고. 일을 시작한 이후 직원들끼리도 끈끈해졌다. 노인 일자리사업 참여자 11명 모두 낙오하지 않고 매일 편의점을 지키고 있다. 

할머니의 근무시간은 정오부터 오후 6시까지다. 편의점이 역 인근에 위치해 있다 보니 오가는 손님 수는 많은 편. 기자가 방문한 날에만 6시간동안 200여명의 손님이 편의점을 들렀다. 한참 분주할 때는 1~2분에 한 명씩 편의점에 들어섰다. 할머니는 “오늘은 바쁜 편도 아니에요. 이 정도는 쉽죠”라며 방긋 웃었다. 편의점에 오는 모든 사람이 친절한 것은 아니다. 담배의 긴 이름을 잘라 말하면서 연신 “빨리빨리”를 내뱉는 한 아저씨를 할머니는 유한 미소로 대했다. “담배가 이게 맞죠? 맞다고요? 네. 감사합니다.” 할머니가 말했다. “가끔 무례한 손님이 오기도 하지만, 좋은 손님이 훨씬 많아서 화를 낼 틈조차 없어요. 바쁘니까 금방 잊어버려 마음이 풀어지더군요.” 그날 계산대에는 이름 모를 손님이 할머니를 응원하기 위해 놓아두고 간 음료수가 놓여 있었다.

오후 4시. 곁에 선 기자도 지치기 시작할 무렵 근처의 학원에서 수업을 마친 중학생 두 명이 편의점에 들어왔다. 살 물건을 고른 뒤 아이들은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만원이 넘으면 안 사 줄 거야” “절대 안 넘어!” 그리고 학생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할머니의 말. “만원은 안 넘을 것 같은데?” 정말로 계산기에는 9650원이 찍혔다. 키득대던 학생 중 하나가 “감사합니다. 쟤가 저보다 동생이에요”라고 웃었다. 손주뻘되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에 할머니 입꼬리는 한참 전부터 올라가 있었다. 인근에 학원이 몰려 있어 학생들은 편의점을 자주 찾아왔고, 엉겨 붙는 아이들을 할머니는 웃으며 반겼다. “나는 편의점 할머니”… 노인 일자리사업 참여자 동행해보니

예순 살이 넘으면서 할머니는 외출할 일이 많지 않았다. “멈추지 않고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에요. 이 나이에 누가 어디를 불러주겠어요.” 할머니는 편의점 일에 만족한다고 했다. 누군가에게는 한번 들르고 말 이곳은 그에게는 행복을 주는 곳이었다. 노인 일자리사업은 노년의 빈곤 해소라는 기능 외에도 어르신에게 활력을 주는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온다. 관련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지난 2017년 연구조사 결과를 보면, 우울 수준과 자아존중감, 삶의 만족도에서 참여 노인이 더 긍정적인 결과를 나타났다. 정부는 올해 74만개의 노인 일자리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오후 6시. 퇴근을 준비하는 김양순 할머니가 기자를 돌아보며 한 마디 했다. “주변에서 저를 부러워해 주고 가족들도 응원해줘요. 친구들은 손주들을 보거나 그냥 집에 있는 경우가 많아요. 친구들도 이 사업에 참여하고 싶다고 하는데 지자체별로 사업이 다르거나 없는 곳도 있어서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5~6년 더 해서 70살까지는 이 일을 계속 했으면 좋겠어요. 일을 하니까 머리도 쓰고 젊어지는 것 같아서 좋아요.” 

nswrea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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