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되려는 비정규직… 드라마 속에도 있다

정규직 되려는 비정규직… 드라마 속에도 있다

기사승인 2020-07-08 08: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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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되려는 비정규직… 드라마 속에도 있다
구세라(나나)씨가 직장 회식 중 해고 통보를 받는 장면 / 사진=KBS2 '출사표' 1회 캡쳐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2014년 방송된 tvN ‘미생’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그린 국내 첫 드라마였다. 2015년 JTBC ‘송곳’은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다뤘고, 2017년 MBC ‘자체발광 오피스’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반란을 코믹하게 그렸다. 2019년 MBC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은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의 관점에서 악덕 사업주의 불법 행위를 고발했다. 드라마가 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할수록 대부분의 20~30대 주인공들은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현실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현재 방송 중인 세 편의 작품을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가 드라마 속에서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 들여다봤다.

◇ KBS2 ‘출사표’ (2020년 7월1일 ~ 방영 중)

디자인 회사에 다니던 계약직 직장인 구세라(29)(나나)씨는 그날 회식이 자신의 송별회란 사실을 몰랐다. “내일부터 안 나와도 돼”라는 통보를 듣고서야 정말 자신의 얘기인지 되물었지만, “전임자가 복직하겠다는데 어떻게 해”라는 납득할 수 없는 해고 사유가 퉁명스럽게 돌아왔다. 분개하며 “이건 부당해고”라고 말해봤지만, 동료들이 구씨를 조용히 자리에 앉혔을 뿐이다. 부서의 담당자는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지”라며 남은 동료들에게 어색한 말투로 술을 권했다.

구씨가 전임자의 복직 때문에 해고한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사실은 구씨는 한 구의원의 불법 도박 현장을 발견해 ‘용감한 구민상’을 받았고, 구의원이 이를 보복하기 위해 지인인 구씨 회사 대표에게 해고 압력을 넣은 것이었다. 구씨는 과거에도 부당한 이유로 해고당한 이력이 있었다. 광고 회사에선 회식 도중 취한 척 몸을 더듬는 상사의 얼굴에 파채를 집어던져 계약 연장에 실패했고, 출판사에선 상사의 불법적인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고발해 그만둬야 했다. 드라마는 구씨가 짤막하고 많은 경력을 보유하게 된 사연을 코믹하게 그리며 정상적인 회사가 아닌 다른 길(구의원 출마)로 이끈다.

→ 한국 드라마에선 비정규직 노동자가 옳은 일을 해서 상을 받는 것이, 오히려 해고 사유가 될 수 있다. 그의 ‘옳은 일’은 지인들에게도 ‘괜한 일’로 취급받기 쉬우니 위로나 도움을 기대하는 건 금물. 그보단 잘리지 않을 단단한 ‘끈’을 찾아서 꼭 붙잡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정규직 되려는 비정규직… 드라마 속에도 있다
정샛별(김유정)씨가 점장 최대현(지창욱)씨에게 계약 조건을 듣는 장면 / 사진=SBS '편의점 샛별이' 1회 캡쳐
◇ SBS ‘편의점 샛별이’ (2020년 6월19일 ~ 방영 중)

‘알바 구함’이란 글을 보고 종로구 신성동 편의점에 아르바이트로 지원한 정샛별(22)(김유정)씨는 황당한 일을 겪는다. 심야 시간대 아르바이트를 구하지 못해 40시간 연속 근무한 점장 최대현(29)(지창욱)씨가 눈앞에서 잠들어 버린 것. 정씨는 당황하지 않고 최씨가 깨어날 동안 편의점 근무를 하는 것으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한다. 텅 비어 있던 편의점은 정씨의 친절한 응대와 추천 메뉴로 손님이 가득해졌다. 하지만 채용이 결정된 이후에도 최씨의 태도는 차가웠다. “임시직이야 임시직. 인턴, 수습, 비정규직!”

최씨의 말은 진심이었다. “아르바이트는 임시직이나 인턴 제도가 없지 않냐”는 정씨의 지극히 당연한 물음에 점장 최씨는 “네가 몰라서 그렇다”는 고압적인 꼰대 말투로 “하는 거 봐서 잘릴 수도 있고 정식 알바가 될 수도 있다”며 ‘기본 수습 3개월’의 조건을 내걸었다. 그동안 매출 증가는 물론 서비스 정신과 올바른 근무태도, 정리정돈 습관과 단골 확보 등 임시직 아르바이트를 평가할 요소는 많다고도 했다. 드라마는 3년 전 두 사람의 악연을 먼저 보여주는 것으로 최씨의 매몰찬 태도에 이유를 부여한다. 하지만 고용인(갑)의 개인적인 감정이 고용자(을)의 계약과 근로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점에 대해선 별다른 설명 없이 넘어간다.

→ 한국 드라마에선 비정규직의 비정규화가 가능하다. 임시직 아르바이트를 해고하기 위해 노력하는 점장의 이야기로 드라마 전체 서사가 진행되는 것 역시 가능하다. 정식 아르바이트를 위해 몇 개월 동안 임시직 아르바이트로 근무하도록 하는 점장은 아무리 잘생겼어도 피해야 한다는 걸 명심하자.

정규직 되려는 비정규직… 드라마 속에도 있다
김은희(한예리)씨가 동생 김지우(신재하)씨의 직장을 처음 알게 되는 장면 / 사진=tvN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1회 캡쳐
◇ tvN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2020년 6월1일 ~ 방영 중)

아침에 등산을 떠나는 아버지 김상식(정진영)씨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던 김지우(20대)(신재하)씨는 차가운 눈초리를 받는다. 눈빛의 의미를 눈치 챈 김씨는 “거의 정규직을 앞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며 항변할 뿐이다. 김씨는 군에서 제대한 후부터 박찬혁(김지석)씨가 운영하는 영상 제작 업체 황금거위 미디어에서 정규직 전환을 전제로 아르바이트하는 중이다. 박씨는 김씨의 친누나 김은희(한예리)씨의 대학교 시절 친구로 김씨에겐 친형과 다름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김은희씨와 박씨가 4년 전 절교하면서 김씨는 가족들에게 근무지를 비밀로 하고 있다.

김씨는 여러모로 신경 쓸 일이 많다. 친누나와 회사 대표의 미묘한 관계 때문이다. 가족을 통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고, 대표 역시 자신의 가족 일을 모두 알 만큼 가까운 사이다.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지만 정확한 시기를 듣지 못했다. 돈은 짠내나게 주면서 SNS에 올릴 광고를 찍으며 갑질하는 조그만 업체들을 느물느물하게 상대하는 건 김씨의 몫이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배우고 경력을 쌓기 위해선 대표와 누나의 눈치를 끊임없이 봐야 한다.

→ 한국 드라마에선 가족의 지인을 통해 취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가족의 ‘끈’만큼 튼튼한 것도 없지만, 그만큼 느슨한 계약 조건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건 단점이다. 또 ‘가족 같은’ 회사 대표가 ‘진짜 가족’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주의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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