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방망이 처벌·오락가락 신상공개…‘디지털 교도소’가 등장한 이유

이소연 / 기사승인 : 2020-07-09 06: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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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자 등의 신상을 온라인에 공개하는 디지털 교도소 / 사진=온라인 캡처  

[쿠키뉴스] 이소연 기자 =성범죄자 등의 신상을 온라인에 공개하는 ‘디지털 교도소’가 등장해 논란이다. 외려 일각에서는 ‘솜방망이 처벌’을 질타하며 디지털 교도소 사이트 운영자에게 지지를 보내고 있다. 

8일 기준 디지털 교도소 홈페이지 범죄자 목록에는 75건의 게시글이 게재됐다. ‘웰컴투비디오’ 운영자인 손정우를 비롯해 ‘n번방·박사방 사건’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과 아동 대상 성범죄자 등의 신상이 공개됐다. 게재된 신상은 사진과 이름을 포함해 범죄 혐의, 출신 학교와 직장, 주소, 전화번호 등이다. 형이 확정된 이들뿐만 아니라 ‘추정’되는 이들의 신상 또한 올라와 있다. 

성범죄뿐만이 아니다. 고(故) 최숙현 선수를 죽음으로 몰았다는 의혹을 받는 철인3종 경기 관계자,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 가해자, 동거남의 아들을 여행용 가방에 가둬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는 여성의 신상도 게재됐다. 

성범죄 등에서 낮은 형량을 선고했다고 비판받는 판사들의 신상도 공개 대상이다. 운영자는 판사 신상공개 게시글에 꽃 사진을 올려 두고 ‘솜방망이’라는 식물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솜방망이는 판사를 공범으로 만드는 향정신성 식물”이라며 “솜방망이 처벌을 일으키게 하는 정신조종의 최대 피해자로 의심되는 분들을 모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운영자는 사이트 개설 이유에 대해 “대한민국의 악성범죄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에 한계를 느꼈다”며 “이들의 신상정보를 직접 공개해 사회적 심판을 받게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사이트에 게재된 ‘범죄자’의 신상공개 기간은 30년으로 전해졌다. 근황은 수시로 갱신된다. 

일부 네티즌들은 운영자에 대한 지지를 표했다. 게시글에는 “이런 내용을 알려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 “좋은 사이트를 만들어주셔서 고맙다” “진짜 의인이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지난 3월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검찰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 박태현 기자 

자의적 판단에 따른 온라인상의 신상공개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에 해당된다. 공익성이 인정된다면 처벌을 피할 수 있으나 입증은 쉽지 않다. 또한 성범죄자의 신상정보 공개는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이다.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다만 운영자는 해당 사이트에 대해 “동유럽권 국가 벙커에 설치된 방탄서버에서 강력히 암호화돼 운영되고 있다”며 “대한민국의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모욕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위법임에도 불구하고 지지를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그동안 사법부의 판단이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됐다는 방증이다. 세계 최대의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를 운영한 손정우는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사는 것에 그쳤다. 웰컴투비디오에 성착취 영상이 게재된 피해자 중에는 4~5세의 아동과 생후 6개월의 영아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7년 기준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제작으로 76명이 기소됐다. 이 중 27명만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평균 형량은 2년이다. 나머지 43명에게는 집행유예, 6명에게는 벌금형이 선고됐다.  

우리나라의 범죄자 신상공개가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성범죄자 알림e’를 통해 성범죄자의 신상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 성범죄자의 이름과 나이, 사진, 등록 주소 및 실제 거주지 등이 확인 가능하다. 그러나 열람을 위해서는 프로그램 설치와 실명 인증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또한 현행법상 개인 용도의 정보 확인 외에 이를 유포하거나 공개할 경우, 처벌 받는다. 

반면 미국 일부 주에서는 성범죄자의 신상을 자동으로 거주지 이웃에게 공개하고 있다. 미국 텍사스주에서는 성범죄자의 집 앞에 성범죄를 저지른 전력이 있다는 팻말을 부착해야 한다. 차량에도 동일한 스티커를 부착할 의무를 지닌다.  

텔레그램 '박사방'에서 운영자 조주빈(24)을 도와 대화방 운영·관리에 관여한 공범 '부따' 강훈(18)이 지난4월17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 박태현 기자 

신상공개 기준이 모호한 점도 문제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사건일 경우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증거가 있을 경우 ▲국민의 알 권리 보장과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피의자가 청소년이 아닌 경우에 모두 해당할 경우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믿을 충분한 근거가 있는 경우, 공공의 이익을 위해 신상을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에 결국 ‘여론’에 떠밀려 신상공개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공유한 ‘박사방’ 사건의 피의자 중 조주빈과 강훈의 신상은 공개됐으나 수원 영통 사회복무요원 강모씨(24), 거제시청 공무원 천모(29)씨의 신상은 공개되지 않았다. 

서울지방법원·서울고등법원 

전문가는 디지털 교도소의 등장과 관련해 사법부의 반성을 촉구했다. 윤해성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세상이 달라졌지만 판사들은 과거의 판례만 답습하고 있다. 사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며 “이로 인해 디지털 교도소와 같은 ‘사적 단죄’가 호응을 얻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상공개 제도 변화도 주문됐다. 윤 선임연구위원은 “범죄자 신상공개를 논의할 전문적인 상시위원회를 꾸려야 한다”며 “현재는 사건이 논란이 될 때마다 임시 위원회를 꾸려 논의한다. 비슷한 사건에 대해서도 각각 다른 판단이 나오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이어 “소극적인 신상공개 방법에서 벗어나 잡지 게재, 온라인·오프라인상 공개 등 다양한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soyeon@kukinews.com / 사진=박태현 기자 pt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