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CCTV’ 재점화…의료법상 ‘유령수술’ 처벌 없어

형사상 사기죄에 해당…'수술실 출입명단 의무화' 조치로 보완

기사승인 2020-07-25 05: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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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 CCTV’ 재점화…의료법상 ‘유령수술’ 처벌 없어
보건복지부는 ‘대리수술’이 형사상 사기죄에 해당되기 때문에 의료법으로 처벌을 내리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이미지= 이희정 쿠키뉴스 디자이너

[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울산지역의 한 대형 산부인과 병원 의사들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요실금 수술, 제왕절개 등 700여건에 달하는 수술을 간호조무사에게 지시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또 지난 19일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의료사고 방지 및 대응 법안을 만들어 달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는데, 편도 제거 수술을 받은 뒤 사망한 5세 아이의 아버지라고 밝힌 청원자는 수술실에 폐쇄회로(CCTV)가 없어 수술 과정을 확인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환자의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집도의사를 교체하는 대리수술. 일명 ‘유령수술’로 인한 피해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성형외과 의사라고 밝힌 사람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대리수술(유령수술)살인마들을 처벌해 달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현재 수사 중이거나 재판에 계류 중인 대리수술 등의 현황을 파악해 가해자들을 보편적인 형사규정인 상해, 중상해, 상해치사, 살인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요청이다.

현행 의료법상에서는 무자격 의료행위에 대해서만 처벌 규정이 있다. 전신마취가 필요한 수술시 집도의를 알리고 환자 동의를 받는 ‘설명의무’에 위반됐다고 보더라도 6개월간 면허 정지 및 과태료 처벌만 받게 된다.

연관해서 환자단체 등은 병원 수술실 내 CCTV 설치 법제화도 주장하고 있다. 대리수술 뿐 아니라 의료사고 발생 시 증거자료가 될 수 있다는 이유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수술실 CCTV 설치를 내용으로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의료단체의 반대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논의되지 못한 채 임기만료로 자동 폐기된 바 있다.

지자체 중에서는 경기도가 ‘병원 수술실 CCTV 설치’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난 18일 법제화를 요청하는 내용의 편지를 여야 국회의원 300명에게 보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 등에 “환자가 마취돼 무방비 상태로 수술대에 누워 있는 사이 대리수술, 추행 등 온갖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며 “선량한 의료인들은 수술실 CCTV를 반대할 이유가 없고, 오히려 무너진 의료인에 대한 신뢰를 제고할 것”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CCTV 설치만으로는 실효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대리수술에 대한 처벌도 함께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성형외과 의사는 CCTV 설치만으로 대리수술을 근절할 수 없다고 말한다. 대리수술 행위에 대한 처벌 수위를 함께 높이지 않으면 오히려 CCTV를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리수술’ 실태를 고발하는 유튜브 채널 ‘닥터 벤데타’를 운영하는 김선웅 전 대한성형외과의사회 법제이사는 “CCTV 설치는 범죄 예방 효과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찬성한다”면서도 “그보다 중요한 것은 대리수술에 대한 처벌이다. 범죄를 처벌하지 않으면 CCTV도 무용지물이다”라고 꼬집었다.

김 전 이사는 “어린이집은 학대하는 모습이 CCTV에 찍히면 바로 처벌할 수 있지만 수술실은 그렇지 않다. 몸에 칼을 대고 장기를 적출하는 게 정상인 수술실에서 의료과실을 밝혀내긴 어렵다”며 “특히 수술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서 될 문제도 아니다. 환자의 동의 없이 수술을 집도한 것 자체가 범죄이지만 피해사례는 집계조차 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뉴스에 나오는 대리수술 피해 사례는 실제의 5분의 1, 10분의 1도 안 된다. 보통 성형외과에서는 바로 합의를 보기 때문”이라면서 “그런데 피해사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대리수술’이 형사상 사기죄에 해당되기 때문에 의료법으로 처벌을 내릴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하고 체계가 맞지 않다고 설명한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관계자는 “이미 형사상 사기죄에 해당되고 강력한 처벌규정이 있어서 복지부가 관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설명의무 부분을 강화할 필요성은 있지만 법률 개정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신 복지부는 대리수술 근절 방안으로 수술실에 출입하는 모든 의료인에 대한 명단과 출입 시간, 목적 등을 작성한 서류를 작성해 1년간 보관하도록 하는 것을 지난해 10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그는 “대부분의 수술이 문제없이 끝나는 경우가 많고, CCTV가 있더라도 마스크 등을 착용하면 집도의를 추정만 할 수 있기 때문에 수술실 출입 명단이 도움이 될 거라고 본다”며 CCTV 설치 의무화에 대해서는 “정책이라는 게 한 번 결정되면 되돌리기 어렵고, 효과와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을 염두하고 접근하는 중이다”라고 전했다. 

지난 2016년 서울 신사역 인근 성형외과에서 안면윤곽수술을 받고 과다출혈로 49일 동안 뇌사상태로 연명치료를 받던 중 사망한 故 권대희씨 어머니는 수술실 CCTV 설치 논의가 한창이던 당시 “수술실에 CCTV가 없었더라면 아들의 억울한 죽음은 밝힐 수 없었을 것이다. 환자의 안전과 예방을 위해서, 의료사고가 났을 때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수술실에 CCTV가 꼭 있어야 한다”며 수술실 CCTV 설치를 골자로 한 ‘권대희법’ 통과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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