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안해서합니다] MBTI ‘최악궁합’과 하루종일 붙어있기

김희란 / 기사승인 : 2020-08-03 05:30:02
- + 인쇄


사진=MBTI 궁합표 및 기자와 권씨의 MBTI 결과/ 인스타그램 계정 mbti_lab 및 16personalities 사이트
[쿠키뉴스] 김희란 기자 = 젊은 세대 사이에서 최근 ‘MBTI’가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MBTI란 사람의 성격을 ▲외향-내향(E-I )▲감각-직관(S-N) ▲사고-감정(T-F) ▲판단-인식(J-P)이라는 4가지 선호 지표를 조합해 16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여 설명하는 자기 보고식 성격 유형 검사 도구입니다.

온라인상에서 MBTI를 무료로 검사할 수 있는 사이트가 유행하면서 MBTI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급격히 증가했는데요. 요즘 SNS와 유튜브를 살펴보면 온통 ‘MBTI' 이야기입니다. 'MBTI별 이상형‘, ’MBTI별 자가격리 대처법‘ 등 온갖 종류의 MBTI ‘짤’들과 상황극이 넘쳐납니다. 

오프라인 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에도 상대의 MBTI를 고려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자신을 MBTI ’맹신론자’라고 소개한 박모(23·여)씨는 얼마 전 소개팅을 했습니다. 박씨는 자신이 외향적, 즉흥적인 ENFP 유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말이 없는 내향형보단 함께 떠들 수 있는 외향형이면서 즉흥적인 날 이끌어줄 수 있는 계획형이 소개팅에 나오길 바랐다”고 말했습니다. 기대했던 소개팅 결과는 실패. 박씨는 “상대는 말이 적어서 대화를 이어나가기 힘들었다. 아무런 계획도 없어서 실망스러웠다”면서 “앞으로 소개팅을 할 때 무조건 상대에게 MBTI를 물어볼 계획이다. 미리 파악하면 소개팅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남모(24·여)씨 역시 ‘MBTI 광팬’입니다. SNS상에서 MBTI 채널 대여섯 개를 구독하고 있는 남씨는 “MBTI 궁합표를 보면 나와 남자친구는 각각 ESFJ와 ENFP로 ‘최악의 궁합’”이라며 “교제 초반부터 우려하긴 했는데 사귀다보니 차이가 더욱 느껴지고 안 맞을 때가 종종 있다”고 고민을 토로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그들은 MBTI를 통해 상대를 파악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또 누군가와 관계를 맺기 전에 MBTI를 통해 추후 관계의 수월성을 예측할 수 있다고도 봅니다. MBTI는 미리 누군가를 판단해 불필요한 관계 형성에 시간을 쏟지 않게 하는 효율적인 판단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상극 중 상극 ENFP와 ISTJ, 하루종일 함께한다면?

사진=ENFP인 기자와 상극 ISTJ 권모씨의 하루/ 김희란 기자
정말 MBTI로 미리 사람을 판단하고 관계를 예측할 수 있을까요? MBTI가 ‘최악 궁합’인 사람과는 잘 맞지 않는 불편한 사이일 수밖에 없을까요?

기자는 궁금해졌습니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기자는 본인과의 ‘최악 궁합’과 하루종일 함께 시간을 보내며 하루를 관찰해보기로 했습니다. 기자의 성격유형은 ENFP입니다. 기자는 본인과의 ‘최악 궁합’ 중에서도 최악, 정반대인 ISTJ 유형의 지인을 만나 하루를 함께 보내보기로 했습니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ENFP는 외향적, 직관적(창의적), 감정적, 즉흥적인 유형인 반면 ISTJ는 내향적, 감각적(현실적), 이성적, 계획적인 유형입니다. 

기자는 ISTJ 지인 권모씨와 지난 30일 만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전날인 29일 저녁, 권씨에게 메시지가 왔습니다. 맛집 목록입니다. 음식점을 정하고 나니 권씨는 심지어 식당 메뉴까지 보내줍니다. 평소 즉흥적인 기자는 한 번도 식사 메뉴를 미리, 그것도 한 시간 전도 아닌 전날 정한 적이 없습니다. 만나기도 전에 벌써부터 차이가 느껴집니다.

사진=약속 전날 맛집 리스트와 메뉴를 보내는 권씨/ 카카오톡 캡처
약속 당일. 오후 12시30분에 점심을 먹고자 식당 앞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아슬아슬 딱 제시간에 도착해 안도의 한숨을 내쉰 기자를 권씨는 여유로운 미소로 맞이합니다. 권씨는 “식당에 줄이 길 수도 있을까봐 5분 미리 도착했다”며 싱긋 웃습니다. 역시 계획적인 유형은 다르군요. 기자는 감탄합니다.

식사를 마친 후 기자와 권씨는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으로 전시회를 보러 갔습니다. 이날 관람할 전시는 ‘퓰리처상 사진전’.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극적인 순간들을 포착한 사진들을 한 데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전쟁 현장을 담은 사진들이 많았는데요. 기자는 극한 상황에 놓여있는 사진 속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감정이 북받쳐 올랐습니다. ‘나만 이런가’하고 눈물이 맺힌 채 옆을 본 기자. 정말 ‘나만 이렇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권씨의 표정은 무표정 그 자체였습니다. 권씨는 기자가 감정에 사로잡힌 모습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습니다.

사진=퓰리처상 사진전에서 기자가 보고 눈물을 글썽인 작품의 엽서/ 김희란 기자
관람을 마치고 전시회장을 나온 기자와 권씨는 의자에 앉아 각자가 전시에 대해 느낀점을 나눴습니다. 기자는 “사진 속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감정들이 공감돼 깊은 감동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권씨는 “역사책에서 배운 사건들을 사진을 통해 실제로 볼 수 있어서 재밌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유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말했습니다. “정말 좋았다.”

관람을 마치고 바로 함께 가기로 한 카페로 이동하려던 찰나. 기자는 전시회장 야외에서 오페라 공연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신이 난 기자는 권씨에게 공연을 보러가자고 제안합니다. 권씨의 표정이 살짝 굳어지며 되묻습니다. “갑자기?” 공연 초반 권씨의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지나자 표정은 밝아졌습니다.
사진=미술관 앞 야외공연/ 김희란 기자
공연이 끝난 후 어느 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습니다. 권씨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가득합니다. 아직 에너지가 넘치는 기자는 권씨에 “같이 한강 가자”고 제안합니다. 권씨는 “오래 집 밖에 나와있으면 현기증이 난다”며 단칼에 거절합니다. 기자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권씨의 얼굴에 웃음꽃이 폈습니다. 이날 하루 중 가장 밝은 모습입니다.

결국 기자는 혼자 한강에 가 자연의 경의로움에 감동을 느낀 뒤 집에 돌아왔습니다.

사진=홀로 감상한 한강 전경/ 김희란 기자

“인간은 MBTI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기자와 권씨의 MBTI는 상극 중 상극, 최악 궁합으로 알려졌지만 권씨와 함께한 하루는 매우 즐거웠습니다. MBTI 궁합표 대로라면 이 하루는 ‘파국’이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함께 간 전시회나 예상치 못한 공연에 반응은 달랐지만 서로에 대해서 더 많이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권씨는 “나랑 반대 성향인 기자와 얘기하다보니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라며 새로운 관점을 배울 수 있었던 동시에 나와 다른 부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전문가들은 ‘MBTI 궁합’에 대해 “근거가 없다”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한국 MBTI 연구소 김재형 연구부장은 “누구나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면 불확실함에서 오는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에 간단한 답을 주는 MBTI를 신봉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인간은 MBTI보다 훨씬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에 고작 네 글자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관계를 예측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했습니다.

서강대 심리학과 나진경 교수 역시 “‘MBTI 궁합’은 전혀 관련 연구 결과가 없는 근거없는 이야기”라며 “MBTI는 유머로만 받아들이고 상대를 성격 유형을 떠나 편견 없이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heeran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