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 지원 및 응급실 운영개선이 답
[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최근 코로나19 등의 이슈로 ‘감염관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응급실 근무 의료진은 감염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공의법 시행 이후 인력 부족 문제가 심화되고 있고, 비응급진료 환자 증가로 업무 부담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 보호구’ 착용 시간까지 줄여가며 응급환자를 돌보고 있지만 이마저도 역부족이다.
◇ 감염관리 지침 못 지킨다…보호구 착용 시간 없어
일례로 지난 10일 일선 병원 응급실에서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 환자를 대상으로 심폐소생술(CPR)을 시행한 의료진이 집단 감염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감염된 5명의 의료진은 20~30대의 인턴 및 간호사로, 심정지로 인한 기관 내 삽관, CPR 시행 및 앰부배깅(호흡을 유지하기 위해 기도 마스크백을 짜주는 행위)을 3~4시간 시행하면서 감염에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 드물지만 SFTS 환자의 혈액 및 체액에 접촉한 의료진이나 가족에서 2차 감염된 사례가 국내·외에서 보고된 바 있다.
질본의 2020년 진드기매개감염병관리지침에 따르면, 의료진은 병원감염관리 차원에서 중증 SFTS 환자 시술 시 KF94 동급의 호흡기보호구, 고글 또는 안면보호구, 이중 장갑, 전신 의료용 가운 등 적절한 개인보호 장비를 착용해야 한다. 하지만 응급실 특성상 환자가 예기치 않게 닥치는 경우가 많고, 치료 적정 시간인 ‘골든타임’을 사수하기 위해 ‘감염질환’ 여부도 확인하지 못한 채 처치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 지침을 지키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현장에서는 개인 보호구를 착용할 시간조차 없어 일부 의료진이 CPR 등 처치에 들어가고 그 시간동안 나머지 의료진이 보호구를 착용한 후 처치에 투입하는 식으로 운영되는 경우도 있다. 서울 소재 한 대학병원의 A응급의학과 교수는 “아무리 숙련된 사람이 (방호복을) 입어도 5분이다. 그럼 환자는 사망한다”면서 “적어도 2명 정도는 CPR을 하고 그 시간을 벌어서 나머지 사람들이 보호구를 착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그나마 혈액으로 감염되는 에이즈 같은 감염병은 환자의 피가 눈에 튀지 않고 주사바늘에 찔리지만 않으면 괜찮다. 지금은 코로나19 등의 호흡기 감염병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문제는 예측이 되지 않는 응급상황이 많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기정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도 “보호구 착용 등의 질본 지침을 100% 지키긴 어렵다. 환자 상태가 어떤지가 관건”이라면서 “진드기, 코로나 외에도 결핵, C형간염, B형간염 등의 감염병 노출위험은 늘 있었다. 출혈이 있는 외상환자, 심정지 환자, 호흡곤란 환자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전공의법 이후 인력 부족…‘과로’ 문제 심각
하지만 응급실 감염 관리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없는 인력에 업무 부담까지 늘면서 의료진들은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 A교수는 “응급실에 감염예방을 위한 격리 공간이 없는 것은 물론 인력도 부족하다”며 “특히 전공의법 시행 이후 타과 진료 영역까지 응급실이 맡아 업무 과중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전공의법(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향상법)은 전공의(인턴·레지던트) 수련시간을 주당 평균 80시간 이하로 제한하는 것이 골자다. 주당 80시간도 법적 근로시간인 주당 최대 52시간 대비 많은 시간이지만 과거 120시간 이상 근무하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줄었다고 볼 수 있다.
A교수는 전체 진료과에서 근무 가능한 전공의 수가 줄면서 응급실로 업무가 이전되고 있다고 말한다. ‘배후진료과’로도 불리는 응급실의 업무는 응급처치 및 진단이다. 수술이나 입원 등 이후 지속되는 처치는 해당 진료과에서 하기 때문에 최종 진료과로 환자를 넘기는 일을 한다. 하지만 근무 가능 인력이 줄어들자 내과 등 일부 진료과에서 응급실을 통해 내원한 환자 진료를 포기했다는 게 A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응급환자가 내과 질환으로 왔다면 내과에서 응급실에 내려와 진단하고 치료 절차를 진행해야 하는데 인력이 없다는 이유로 이러한 과정을 응급실에 맡기고 있다”며 “이미 응급실도 (인력을) 최대한 돌릴 수 있을 만큼 돌려서 더 이상 일을 못하는데 타과 업무까지 오는 거다. 새 환자를 받을 수도 없을 정도로 업무 부담이 늘어났는데 전공의 파업까지 이어지면 육체적 피로가 가중돼 번아웃(심신이 지친 상태)이 올 것”이라고 호소했다.
A교수는 “이러한 문제 때문에 정부가 의사 증원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그 방법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며 “전문인력을 확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어느 수준까지는 지원을 해줘야 한다. 지원 늘리고 수가를 올리면 병원에서 인력을 더 채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기정 교수는 전공의들의 집단 업무 중단이 1일 이상 넘어가면 응급실 운영 자체가 어려워질 정도로 인력이 부족한 상태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코로나19로 바쁜 와중에 전공의들을 꼭 자극했어야만 했나”라고 지적하면서 “지난 7일 파업 때는 전공의들이 미리 말해서 전임의 등으로 인력 공백을 막았는데 그것도 하루니까 가능했던 거다. 2~3일이면 응급실 운영 안 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번 14일 휴진 때는 응급실 등 필수진료과 의료진이 제외된다고 하지만 응급실 자체가 다른 진료과와 협진하는 부서이기 때문에 병실과 외래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으면 정상진료도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그는 ‘비응급환자’의 진료를 제한해 업무로딩을 줄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응급실 내 과로 이슈는 늘 있었다. 과밀화된 응급실에서 로딩이 많이 걸리는 상황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거기에 코로나 이슈까지 터지면서 의사는 물론 간호사들의 업무가 엄청 늘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로 인해 음압병실 추가 지정이 이뤄졌지만 건물만 지정하고 인력 지원은 없다. 코로나 상황만 놓고 봐도 인력은 더 필요한 상황이다”라면서 “우선 응급실 내 비응급환자부터 제한해야 한다. 우리 병원만 보더라도 70~80%는 비응급인데, 진짜 응급환자 위주의 진료가 이루어져야 의료진 과로나 감염 이슈가 일부 해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14일 대한의사협회 주도로 의원급 의료기관 및 전공의의 집단휴진이 예정된 가운데 전공의의 업무 중단이 1일 이상으로 넘어가면 응급실 운영에도 큰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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