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소] '국가대표' 임오경, 이제는 국민대표... 아테네의 감동을 국회에서

박효상 / 기사승인 : 2020-08-22 05: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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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박효상 기자 =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 결승전을 기억하는가. 강적 덴마크를 만나 두 번에 걸친 연장 접전 끝에 승부 던지기에서 아깝게 패하던 그 날. 그 경기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금메달보다 값진 은메달, 승리보다 값진 투혼을 제대로 보여준 스포츠 신화.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을 통해 다시 한번 살아났다.


메달 색은 중요치 않았다. 핸드볼 국가대표 선수들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투혼과 열정으로 강호 덴마크를 위협했고, 그 사실만으로도 국민에게 큰 희망과 감동을 주었다. 그 중심에 ‘우생순’의 실제 주인공인 임오경이 있었다.

그녀가 국민대표가 되어 돌아왔다. ‘왜? 여자 핸드볼 간판스타가 굳이 왜?’ 자꾸만 의문이 들었다. 사실 기자의 세대에서 임오경은 타 종목의 박찬호와 박세리, 홍명보만큼 유명인이다. 스포츠 스타에, 한국 최초 여성 핸드볼팀 지도자까지 한 분이 무엇 때문에 의원이 됐을까? 국회의원이라는 자리는 ‘잘해봐야 본전’인 곳이다. 그동안 많은 문화체육인이 국회에 입성했지만, 본전도 못 찾고 이미지만 나빠진 경우가 허다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핸드볼 현장에서 ‘존경받는 레전드’로 남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묻고 싶었다. 듣고 싶었다. 여러 번의 일정 조율 끝에 7월 어느 날 오전,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임 의원과 마주했다.

옅은 미소로 인사하는 임 의원의 눈빛에서 날카로움이 느껴졌다. 선수 시절 ‘독종’으로 불리던 임 의원의 카리스마는 여전했다. 그리고 기자의 눈에 들어온 의외의 모습 하나. 세련된 헤어스타일과 패션, 메이크업이었다. 정돈된 쇼트커트에 단정한 정장 차림, 과하지 않은 화장이 잘 어우러져 경기장 속 임오경 감독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아침에 일찍 준비하셨나요” 질문하자, 본인이 모두 스타일링 했다는 답이 돌아왔고, 꾸미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왜 그 대답이 의외였을까. 나도 모르게 체육인은 훈련이나 자신의 스포츠 종목만 생각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던 것 같다. 임 의원에게 조금 미안하다.

인터뷰하며 느낀 의외의 모습 둘. 정말 솔직했다. 표현 방식이 조금은 투박하지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옳다고 말하는 사람이라고 할까. 적어도 남의 마음을 얻으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물었다. 왜 국회의원이 되었냐고. “2016년 국정농단 때 많이 힘들었어요. 체육계 전체가 비리의 온상처럼 보여져서. 음지에서 진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싶었어요.” 뻔한 답처럼 들릴 수 있지만, 진정성이 느껴졌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동을 옮길 줄 아는 추진력을 지닌 사람. 불의를 참지 못하는 정의감 넘치는 여장부. 기자가 인터뷰 후 느낀 임 의원의 모습이다. 핸드볼 코트 안 만큼 편안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신념대로 한 걸음 두 걸음 내딛는 지금, 행복해 보였다. 임 의원은 희망으로 벅차다. 국민에게 ‘우리 정치 최고의 순간’을 선사하기 위해 할 일이 많아 보였다. 그래서 임오경 의원의 최고의 순간은 이제 시작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딸과 둘이 지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당선 후 딸이 어떤 이야기를 해주었나?
▶당선 후 ‘고생했다, 수고했다’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딸은 출마를 반대했었는데 유세현장도 함께 해주고 정말 고마웠어요. 그런데 요즘 딸이 제 눈치를 많이 봐요. 엄마 표정이 어떤가. TV도 못 켜게 하고 기사도 못 보게 해요. 그러면서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나는 엄마 진심을 알아’ 이 얘기를 들으니까 울컥하더라고요.

 
-체육인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지금까지 아주 좋은 이미지를 갖고 계셨는데, 사실 국회의원을 지낸 후 이미지가 나빠진 경우도 있다. 왜 국회의원에 도전?
▶일단 국회의원이 되면 잘 해도 본전이라고 하더라고요. 잘해도 욕먹고 못해도 욕먹는 게 이 자리라고 하더라고요. 국회의원은 제 계획에 없었어요. 어떤 사람에게는 기회도 오지 않는데 정치권에서 계속 제안이 들어왔고 운명인가 보다 생각하고 도전했어요. 성격이 혼자보다는 함께하는 것, 누군가를 웃게 하는 것을 좋아해요. 그런데 최근 故 최숙현 선수 사건이 제 생각과는 다르게 보도가 되면서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아 사람을 한순간에 이런 식으로 매도할 수 있구나. 하지만 제 진심은 누군가의 아픔을 더 아프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 아픔처럼 하나하나 모든 상황을 파악해서 진실을 밝히는 거였어요. 앞으로도 비슷한 사안이 생기면 똑같지는 않겠지만 반드시 그 누구보다 현장 상황을 깊숙이 파악해서 모든 사람에게 정확히 전달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 15호, 사실 비례대표를 예상하지 않았나?
▶비례대표인 줄 알았어요. 갑자기 지역에 출마하라고 했을 때 ‘국회의원이고 정치고 아무것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죠. 분명히 저를 지지하는 유권자들도 이런 말을 할 것이다. ‘운동했던 사람이 뭘 할 줄 알겠어’ 저라도 그 말을 할 거 같아요. 때문에 ‘지역에는 출마하지 않겠다’라고 말했죠.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라고 2주간의 시간을 주더라고요. 2주간 당에서 많은 설득을 했죠. 저의 성격이라면 충분히 그 지역 주민하고도 상생하며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제 성격이 부정보다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스타일인데. 제가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으니 당의 말을 존중해야겠다. 그래서 결정한 이유는 ‘그래, 더불어민주당에서 나를 영입했고 지역구로 보낼 때는 분명 전략과 전술이 있겠지, 믿고 해보자’라는 결단을 내렸죠.

-광명시갑에 출마해 47%를 넘는 득표율로 당선됐다. 자신 있었는가?
▶자신 없었어요. 저의 부족함을 제가 아는데 ‘감히 어떻게 할 수 있나’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죠. 입당 결심은 제가 살아온 스토리와 혼자 배부른 것보다 함께 배부른 것을 좋아하고 아파하는 사람이 있으면 제가 먼저 가서 도움을 주려는 제 성격이 맞았어요.
가장 큰 이유는 지난 2016년 국정농단 사건이 터졌을 때, 그때 누구보다 많이 울었죠. (비인기 종목이지만)한 계단씩 위를 향해서 걸어가고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제가 쌓아둔 공든 탑이 무너지고, 일부의 부정이 체육계 전체의 비리처럼 매도되는 모습에 제 마음이 아팠어요. 음지에서 진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데 앞장서고 싶었어요.


-인생을 관통하는 세 가지 키워드가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 되려면 무수한 연습이 필요하다/ 인생은 기본적으로 나를 위해서 살아가잖아요. 선수 시절 지옥훈련을 하면서 ‘죽고 싶다, 포기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어요. 그런데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동료들과 울면서 버티니 정상에 올라가 있더라고요. 아, 내가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지옥훈련을 거쳐야 하는구나.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치르면서 두 번 다시는 국가대표를 안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시상대에 올라서 눈물을 흘리면서 뒤돌아서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 이 고생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구나. 지옥훈련은 과정일 뿐이구나. 과정을 거치면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구나. 그때부터 연습을 했죠. 제가 중간에 출산도 하면서 국가대표를 오랜 시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힘든 지옥훈련을 즐기는 사람이 됐던 거 같아요.

▶좋은 사람과 함께하는 식사는 행복하다/ 제가 혼자 식사할 때가 많아요. 코치 시절 훈련을 마치고 집에 와서 라면으로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기분이 우울해 지면서 눈물이 흐르는 거예요. 열심히 살았는데 라면 한 그릇 먹으면서 눈물을 흘려야 하나? 내 자신이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날 제가 지인과 밥을 먹는데 많이 웃고 즐거워하고 있더라고요. 좋은 사람과 함께하는 식사가 얼마나 행복한지 깨달았어요. 비록 김밥 한 줄, 라면 한 그릇을 먹더라도요.

▶세상은 혼자 힘으로 살 수 없다/ 세상은 혼자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단계별로 살아오면서 알았죠. 제가 힘들 때마다 가족들은 제 편이잖아요. 가족이 있어서 행복했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도 있지만, 항상 내 손을 잡아주는 팬들이 있어서 좋아요.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 더불어 살면 참 좋아요.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결혼과 출산이 가장 힘들었죠. 운동선수는 코트에서 뛸 때 돈을 벌 수 있는데. 임신 후 코트에서 뛸 수 없어서 내 운동 인생은 끝났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플레잉감독을 하면서 그 시기를 버텼는데 출산을 하고 돈을 벌기위해 몸도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코트에 복귀했을 때 왜 많고 많은 직업 중 운동선수를 택했을까 후회했죠. 극단적인 생각을 가장 많이 했던 시기였어요. 외국 생활을 해서 기댈 곳도 없는데 몸도 힘들고, 훈련장에 아이를 데려와 쉬는시간에 우유 먹이는 제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어요. 내 자식이 운동한다고 하면 절대적으로 말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운동선수의 모습이 화려하게 보이지만 선수 생명이 짧고 결혼과 출산으로 인해 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던 그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그 순간을 어떻게 극복했나?
▶극단적인 생각을 두세 번 하고 ‘죽는 것도 내 맘대로 안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거울을 보면서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행복해. 그럼 제가 답해요. '임오경', 상대가 없으니 거울하고 대화하는 거예요.
그때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이 많을텐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겨내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 거리를 나갔어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 목발을 짚고 다니는 사람, 노인들 등 이런 분들을 보면서 내 몸은 이렇게 건강한데 무엇을 못 하겠느냐. 저분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면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다짐했죠. 나는 건강한 육체가 있구나. 임오경.

-국민의 대표로서 어떻게 국민을 미소 짓게 하겠는가?
▶국회의원이 되고 힘든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가려운 사람의 등을 긁어주겠다는 목표가 생겼어요. 힘든 분들을 위해 법안을 내고 통과되어 그분들이 웃어준다면 제가 행복할 거 같아요. ‘임오경으로 인해 터닝포인트가 되어 내 인생이 달라졌어’ 이런 표현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같이 웃으며 밥 먹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런 분들 보면 제가 행복해요. 제가 안 먹어도 배불러요.


tina@kukinews.com 영상제작=우동열 쿠키건강TV PD/ 사진=박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