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협박 환자에도 대책없어..."정신과 의사도 악몽을 꾼다"

'강제입원' 막았더니 환자들은 '치료 거부'...가족과 의료진이 고통 떠안아

기사승인 2020-09-23 04:3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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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협박 환자에도 대책없어...
▲정찬영 원장이 실제 겪었다고 밝힌 진료실 위험상황 12가지. 6년 경력의 문정윤 전임의는 이중 8가지 상황을 경험했다고 전했다. 

[쿠키뉴스] 전미옥 기자 =故임세원 교수 사건에 이어 올해도 부산의 정신과 의사도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은 가운데 정신의료현장의 의료인들의 '안전한 진료환경'을 요구하고 나섰다. 폭력·협박 행동을 보이는 중증 정신질환 환자를 치료할 의료현장의 안전장치가 태부족하다는 것이다. 

정찬영 새미래병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22일 '안전한 진료환경과 정신건강치료지원체계를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환자가 흉기를 들고 휘두르는 일, 휘발유 통을 들고 병원에 와 협박하는 일 등 진료현장에는 영화와 같은 위험한 일들이 실제로 벌어진다"며 진료현장의 현실을 알렸다.

정 원장이 실제 겪은 위험상황은 ▲병원 앞 주유소 주유기와 라이터를 들고 대치 ▲흉기를 들고 휘두르는 일 ▲몰래 흉기를 소지하다 들킨 피해망상환자 ▲휴지토에 불을 질러 건물 전체에 화재가 발생할 뻔한 일 ▲맞거나 흉기에 다친 직원들 ▲찢어진 가운 ,부서진 병원시설과 집기류 ▲환자로부터 당한 성추행과 성희롱 ▲폭행을 차마 신고하지 못했던 일 ▲환자끼리 몸싸움 ▲야간 음주를 위해 창문으로 도주하려다 추락해 마비된 환자 ▲낙상 후 뇌출혈로 후송된 일 등 가지각색이었다.

이는 비단 일부 정신의료현장만의 모습은 아니다. 실제 안전한 진료환경 및 문화정착TF가 의료기관 내 폭력실태를 조사한 결과,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서의 폭력 경험이 월등히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신건강의학과의원에서는 8.2%가 폭력 경험이 있다고 응답해 1.2%에 그친 타과에 비해 6배가량 많았다.

또한 정신건강의학과가 설치된 병원급 의료기관의 폭력 경험률도 여타 병원급 평균의 3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및 전공의들에게 조사한 결과에서는 전체 33%가 '흉기 등 위협물로 위협' 경험이 있다고 답했고, 흉기로 위협당한 장소로는 외래가 68.4%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외에 보호병동이 23.5%, 응급실이 17.6%, 개방병동이 5.9% 순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폭력 환자의 진단명으로는 성격장애가 28.8%, 조울증이 27.7%, 조현병이 27.2%로 확인됐다. 

그는 "정신과 의료진들은 위험상황을 겪더라도 도움을 청하거나 받을 곳이 없다"며 "개원 초 퇴원을 요구하며 건물 모서리에 머리를 수차례 부딪히는 자해 환자가 있었는데, 이 환자의 두피 상처를 봉합할 다른 의료기관을 찾기 어려워 직접 환자 머리를 꿰멘 일도 있었을 정도"라며 "환자로부터 협박받는 의료진은 경찰의 도움을 받기도 요원하고, 경찰과 의료진이 폭력적인 환자 앞에서 전문성을 발휘하고 협력할만한 체계도 부실하다"고 했다.

또한 국내 정신의료기관이 특별히 어려운 이유로 그는 고위험 환자를 맡길 수 없는 정신응급체계, 턱없이 낮은 정신보건 예산, 고위험응급환자에도 차등없는 진료수가, 정신과 의료급여 환자 차별, 안전요원 부족, 강력범죄 전과자와 보호관찰 정신과 환자들에 대한 정신보건서비스 부재 등을 지목했다. 

그러면서 정 원장은 "만성 정신질환자의 전체 범죄율은 낮지만, 알코올 의존이 있거나 일찍 폭력 전과가 시작됐거나 피해망상이나 환청이 위협적인 환자 등은 높은 폭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많은 연구를 통해 알려진다"며 "정신질환자 중 폭력 전과가 있는 사람들에 대해 경찰, 공무원, 경찰, 준법지원센터 등이 지역사회 민간의료기관과 협력해서 미리 위험도 평가와 재활, 하우징 서비스 등을 연계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젊은 정신과 의사들도 공감하는 문제였다. 문정윤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전공의 4년, 전문의로 2년 반을 지내고 있다. 총 6년 반 동안 정찬영 원장님이 제시한 '영화같은 위험' 12가지 중 벌써 8가지를 겪었다. 정신과 전문의가 3~5명으로 많고, 안전요원이 충분히 있는 병원에서 9개월가량 근무했을 때에도 이같은 위험상황은 피할 수 없었다"고 했다.

여성 의사로서의 고충도 적지 않았다. 문 전문의는 "환자나 보호자들이 젊은 여의사를 쉽게 보시는 경향이 있다. 약물용량을 임의로 조절해달라거나 부적절한 진단서 발급을 요구받기도 한다. 남성 환자들이 의료진을 이성으로 보면서 사적인 질문을 반복하거나 성희롱, 만남을 요구하기도 한다. 남성 환자가 의도 또는 망상을 가지고 접근할 경우 대개 1인 의원의 경우 긴급하거나 강력한 제재가 어려워 두려움에 떨며 진료하는 경우도 있다"며 토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강제입원을 막기위해 지난 2017년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의 부작용에 대한 지적도 잇따랐다.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연구원은 "조현병 환자인 친형을 돌보고 있는 가족 입장에서 환자 가족이 겪는 고통과 불안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유독 정신질환자의 경우 응급상황 시에도 '국가의 공적이송 시스템'이 부재하다. 출동현장에서 소방과 경찰은 민원발생 및 소송을 우려해 소극적 대처가 나오고, 사설이송단을 통하면 결국 가족이 입원을 강행한 것으로 되어 불법논란 및 환자 보복심리를 자극한다는 문제가 있다"고 호소했다. 

김 연구원은 "조현병 환자가 부모를 살해할 확률은 비조현병 환자보다 최소 50배 이상이다. 또 조현병 환자의 강력범죄율은 비조현병환자보다 유의하게 높다. 모든 조현병 환자가 잠재적 범죄자는 아니지만 일부 급성기, 치료순응도가 낮은 조현병환자는 위험할 수 있다"며 "명백한 자타해 위험이 없더라도 재발경고징후가 나타나면 준정신과적 응급으로 판단해 환자 동의 없이 전문의 판단으로 '공적 이송을 위한 비자의 치료'가 시행될 수 있어야 조현병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문 전문의도 "환자들도 자의입원을 하면 내가 언제든지 원하면 퇴원할수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다보니 하루 이틀 입원했다가 치료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퇴원을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의사의 입장에서는 치룍 필요하다고 판단되어도 강제할 방법이 없다"며 "환자가 점차 악화되어 폭력, 법적 문제 발생 등 가족들이 감당하지 못할 수준이 되어서야 내원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근본적인 진료실 안전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홍정익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입원 필요성이 낮아 환자에게 퇴원을 요청했으나 퇴원을 거부하는 환자에 대해서는 지역의 정신건강심의위원회에서 퇴원심사를 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 의료진의 지시에 따르지 않거나 난동을 피우는 행위에 대해서도 예방조치를 할 수 있도록 치안당국과 검토하겠다"며 "중장기적으로 정신질환자가 지역사회에 정착해 치료와 재활을 꾸준히 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정책도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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