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접종 중단 사태, 품귀현상·물백신 우려 증폭

사업 관리 부처 제각각, 선정 업체 재하청 ‘책임 소재 불분명’

기사승인 2020-09-26 03: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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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 접종 중단 사태, 품귀현상·물백신 우려 증폭
22일 오전 세종시에 있는 한 대형병원이 독감 백신 무료접종 연기를 안내하고 있다./연합뉴스 제공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독감 국가예방접종 일시 중단으로 인한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백신 부족 사태에 대한 우려와 함께 백신의 품질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현행 백신 유통 체계가 책임 소재를 규명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백신 ‘상온 노출’ 신고 접수돼 접종 중단

만 13~18세 대상 독감 국가예방접종이 중단됐다. 올해 처음으로 국가예방접종 사업에 참여한 신성약품이 백신을 상온에 노출한 상태로 의료 기관에 배송하면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백신 보관 및 수송 관리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백신 보관 적정 온도는 2~8℃, 평균 5℃다.

21일 오후 질병관리청(질병청)은 독감 백신을 운반하는 냉장 배송차량이 백신 보관 온도를 제대로 유지하지 않았으며, 백신 일부는 냉장용기가 아닌 종이 박스에 담겨 의료기관으로 전달됐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신고자는 신성약품의 경쟁 업체 관계자로 알려졌다.

이튿날인 22일 질병청은 접종 중단을 발표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와 백신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질병청은 신성약품이 배송한 독감 백신 500만명분 가운데 어느 정도의 물량이 상온에 노출됐는지, 백신의 안전성과 효능이 저하됐는지 2주간 조사해 후속 조치를 마련할 계획이다.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만 13~18세에 대한 접종은 연기될 수밖에 없다. 다만, 다음달 13일부터 순차적으로 실시할 예정인 62세 이상 어르신 대상 접종은 기존 일정대로 진행할 방침이다.

23일 질병청은 식약처와 각 지방자치단체와 공동으로 신성약품에 대한 현장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업체의 백신 보관 냉장창고는 기준온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배송에 사용된 냉장차량에도 자동온도기록장치가 부착돼 있었다. 모든 배송차량의 냉장 온도 유지와 유통품질관리 기준 준수 여부는 아직까지 확인 중이다.

25일 접종이 중단된 백신 일부가 이미 접종된 것으로 드러나자 혼란이 가중됐다. 이날 질병청은 무료 접종 대상인 만 13~18세와 일부 유료 접종 대상 105명이 상온에 노출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백신을 접종받았다고 밝혔다. 특히 질병청은 조사 과정에서 국가 조달 백신과 유료 접종 백신을 구분해 관리하지 않은 국가예방접종 위탁 의료기관도 적발했다.  

백신 부족 사태 우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의 여파로 독감 예방접종 수요가 높아진 상황에서 이 같은 사태의 타격은 크다. 독감 백신이 대량 폐기된다면, 백신 품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다.

독감 백신은 예비 물량을 비축할 수 없다. 매년 세계보건기구(WHO)는 그 해에 어떤 독감 바이러스가 유행할지 예측해 공표한다. 전 세계의 백신 제조 기업들은 WHO가 공표한 바이러스 유형을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을 제조한다. 즉, 지난해에 제조된 백신은 올해 유행할 독감을 예방할 수 없다.

독감 백신은 갑작스럽게 추가 물량을 생산하기 어렵다. 독감 백신 생산 방식 중 유정란 배양은 6개월, 세포 배양은 4개월이 소요된다. 백신 제조 기업은 매년 3월에 백신 생산에 돌입해 8월에 공정을 마무리하고 식약처로부터 출하 승인을 얻는다. 이후 독감이 유행하는 9~10월에 앞서 백신을 시중에 유통한다. 9월 말 독감 백신을 추가 생산한다고 가정하면, 이미 독감 유행철이 지난 이듬해 1월말에 시중에 유통될 수 있다.

올해 출하된 독감 백신은 총 2964만명분이다. 이 가운데 유료접종분이 1120만명분을 제외한 1844만명분이 국가예방접종 사업에 활용될 무료접종분이다. 신성약품이 공급하는 물량은 1259만명분, 이 가운데 상온에 노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백신 500만명분은 21일까지 유통된 물량이다.

독감 접종 중단 사태, 품귀현상·물백신 우려 증폭
국가예방접종 사업 수행 기업으로 선정된 신성약품의 운반차량/연합뉴스 제공

‘물백신’ 효능 불신에 유료 접종 찾기도

폐기되는 백신이 없어도 문제다. 백신의 효능에 대한 불신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문은희 식약처 바이오의약품품질관리과장은 사백신이 상온에 노출될 시 품질에 이상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22일 브리핑을 통해 밝혔다. 독감 백신은 불활성화된 바이러스로 제조하는 ‘사백신’으로, 차광된 상태로 동결되지 않은 냉장 상태가 유지돼야 한다.

문 과장은 “백신 효능과 관련된 단백질의 함량이 (온도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며 “단백질 함량 검사를 비롯해 광범위한 검사를 통해 최종적으로 (상온에 노출된) 백신들 전반의 품질을 확인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즉, 사백신이 상온에 방치되면 함유된 단백질의 함량이 떨어져 접종을 받아도 독감 예방 효과를 얻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온라인 육아 커뮤니티에는 ‘언제 다시 시작될지 모르는 무료 접종을 기다리느니 내 돈 내고 접종 시키는 게 낫겠다’, ‘아이가 6살이라 무료 접종 대상이지만, 마음 편하게 주말에 유료 백신으로 접종시키려고 한다’ 등의 의견이 공유되고 있다.

국가예방접종 백신 유통 쳬계 정비해야

국가 조달 백신의 유통 체계가 원흉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사업을 관리하는 정부 부처와 실제로 사업을 수행하는 업체가 여러 곳이라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현재 국가예방접종 사업의 계획은 질병관리청이 주관한다. 사업 참여 업체 모집 공고와 선정은 조달청이 맡는다. 선정된 업체를 감독하고 물류를 관리하는 곳은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다. 업체 선정부터 백신 유통까지 전 과정을 관리할 수 있는 주체가 없는 실정이다.

선정된 업체도 하청 업체를 고용한다. 전국에 유통망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올해 신성약품도 여러 하청 업체와 계약을 맺고 전국에 백신을 전달했다. 때문에 백신을 상온에 노출시킨 일선 배송 차량은 신성약품 소속이 아닌, 하청 업체 소속이다. 이 같은 재하청 구조 속에서는 유통 과정상 문제가 발생해도 신속히 경위를 파악하기 어렵다. 

김진문 신성약품 대표는 일부 언론 인터뷰를 통해 “큰 (배송)차량에서 작은 (배송)차량으로 독감 백신을 옮겨 싣는 과정에서 (차량의) 문을 열어놓고 땅바닥에 뒀는데, 그런 부분이 제보된 것으로 안다”며 “용역을 준 백신 유통 업체들이 일부 문이 열려있거나 하는 실수를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사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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