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얼렸다'...국내 첫 냉동인간, 그 이후는?

'부활' 믿음 전제한 냉동인간...'효사상' 한국선 대부분 50~60대 남성의 부모사랑

기사승인 2020-10-01 04:2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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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얼렸다'...국내 첫 냉동인간, 그 이후는?
▲냉동보존된 시신을 화물항공기를 통해 러시아로 보내기 전 조의를 표하는 모습. 크리오아시아 제공

[쿠키뉴스] 전미옥 기자 =“살아날 확률이 낮다는 걸 인지하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희박한 가능성이라도 남겨두고 싶은 마음인거죠.”

냉동인간 보존 기업 크리오아시아의 한형태 대표는 “갑작스러운 죽음, 받아들이기 힘든 죽음을 경험한 분들이 냉동인간 서비스를 찾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크리오아시아는 냉동인간 보존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기업이다. 올해 국내 첫 냉동인간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냉동인간은 사망선고를 받은 사람을 얼려 보관해두었다가 기술이 발전한 미래에 녹여 소생시키려는 기술을 말한다. 이를테면 암과 같은 질병의 치료법과 해동기술이 발견되면 훗날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 있다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마치 영화 속에나 나오는 이야기 같지만 우리나라에도 냉동인간이 나왔다. 올해 4월 경기도 분당에 사는 50대 남성이 돌아가신 80대 어머니에 대해 냉동인간 보존을 의뢰한 건이다. 독신으로 살던 이 남성은 암투병 중이던 어머니와 유독 각별했다고 알려진다. 

냉동인간 서비스에 관심을 갖던 의뢰인은 투병 중이던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크리오아시아 측에 연락을 해왔다. 한 대표는 “새벽 4시쯤 의뢰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머니 발인을 앞두고 고민하다 연락했다고 하셨다”며 “보통 유가족끼리 의견이 안 맞아 무산되는 건이 많은데 1호 고객 분은 워낙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확고했다”고 전했다. 국내 1호 냉동인간이 된 80대 여성은 현재 크리오아시아와 제휴를 맺은 러시아 업체 크리오러스사를 통해 모스크바에 냉동 보존됐다. 이곳에는 냉동인간이 130여명이 보관돼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냉동인간 보존을 위해서는 일련의 전처리 과정이 필요하다. 크리오아시아에 따르면, 사망 선고(심정지) 후 혈액 응고와 뇌 손상 방지를 위해 항응고제, 활성산소 제거제, 진정제 등 약물을 투여하고, 인공 폐호흡 등 순환시스템을 가동한다. 이후 사망 24시간 내에 체내 혈액을 빼내고 보존액을 채우는 관류작업을 진행한 뒤 서서히 얼려 영하 196℃의 액체질소 냉동챔버에 보관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국내 첫 냉동인간은 이처럼 온전한 과정을 밟지는 못한 케이스다. 사망 후 하루가 지난 다음 의뢰된 탓에 혈액을 보존액으로 치환하는 작업이 불가능했다. 이미 혈액응고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러시아까지 옮겨지는 과정에서 시간지연도 있었다. 만약 가까운 미래에 얼렸던 신체를 멀끔하게 녹이는 ‘해동기술’이 개발되더라도, 응고된 혈액까지 정상화하는 미지의 기술이 나올 때를 더 기다려야하는 셈이다.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지극히 낮음에도 냉동보존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대표는 “유가족들도 부활 가능성이 낮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다만 미래에는 그조차도 되살릴 수 있는 기술적 진보가 있지 않겠느냐고 기대를 거는 것”이라며 “러시아업체(크리오러스)에서도 온전한 프로세스를 밟지 못한 케이스가 80%에 달한다. 현실적으로 사망 직후 바로 냉동인간 절차로 이어지려면 사전 준비가 철저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어머니를 얼렸다'...국내 첫 냉동인간, 그 이후는?
▲항공기 수송 전 냉동 창고에 보관돼있는 모습. 계약상 러시아 냉동챔버에 100년 동안 보존된다. 크리오아시아 제공.

온가족이 모이는 추석 명절이지만 올해는 효심이 깊은 아들도 러시아 타국에 모신 어머니를 찾아가지는 못할 전망이다. 한 대표는 “러시아로 처음 보내드릴 때도 코로나19로 항공로가 끊겨 항공화물기를 통해 모셔드렸다. 비행기로 왕래가 수월해지면 유가족들도 냉동고를 찾을 수 있다. 납골당에서처럼 꽃 한 송이 조문하는 정도는 가능하다”고 했다. 
      
첫 냉동인간 소식이 알려진 뒤 상담문의도 잇따랐다. 한 대표는 “기존의 3~4배 정도의 냉동인간 서비스 상담문의가 왔다”며 “진행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기하는 건이 4건 정도 있다”고 전했다. 대부분 자녀가 노부모를 냉동보존하고 싶다는 사연이다. 주로 부모가 사망한 자녀를 냉동보존하는 경우가 많은 해외사례들과 확연히 비교되는 지점이다. 

한 대표는 "독신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사시는 분들, 특히 50~60대 남성분이 나이 드신 부모님을 냉동보존 하고 싶다며 문의하시는 경우가 많다. 효를 중시하는 우리나라만의 특이한 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럽, 미국 등 서구국가에서는 대부분 자녀가 사고나 병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부모가 냉동보존을 의뢰하다. 노환으로 돌아가신 부모님을 자녀가 냉동보존으로 모시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서 외국인들은 이해 못한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 대표는 앞으로 국내에서도 냉동인간을 보존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의 김시윤 교수(크리오아시아 CTO)와 조직 및 장기 단위의 해동 연구도 함께 진행한다. 다만, 세계적으로 인체 해동 관련 연구 성과는 미진한 상황이다. 

그는 “냉동인간 보존은 인간의 생명연장의 길목에 서있는 중요한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프로세스를 온전하게 밟아서 보존된다면 향후 소생 가능성이 아주 없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며 “궁극적인 목표는 냉동인간과 해동 관련 연구를 널리 전파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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