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양동근 “‘존버’하니 새로운 철학이 보인다”

영화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닥터 장 役…“배우 인생은 마흔 살부터”

기사승인 2020-09-30 08: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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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인터뷰] 양동근 “‘존버’하니 새로운 철학이 보인다”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와, 이건, 너무, 저도, (박수 짝짝) 저도 기대돼요. 와, 이런 순간이 나에게도 오다니….” 폭탄을 맞은 듯 뽀글거리는 머리카락을 한 사내가 느릿한 말투로, 하지막 고조된 억양으로 말했다.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킥킥 나는 이 사내의 이름은 양동근. 영화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감독 신정원) 개봉을 앞두고 최근 서울 삼청로2길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양동근은 ‘영화가 재미있다’는 기자들의 말에 “(반응이) 심상치 않고 예사롭지 않다”며 기뻐했다. “와, 끝났다! ‘찐’으로 재밌다는 말을 들어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날 정도니까…. 와, 큰일이네.”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은 여고 동창 소희(이정현)·세라(서영희)·양선(이미도)과 외계에서 온 ‘언브레이커블’ 만길(김성오)의 하룻밤 사투를 그린 작품이다. 양동근은 극중 미스터리 연구소 소장 닥터 장을 연기했다. 어늘한 듯 리드미컬한 어투부터 괴상하지만 확신에 찬 행동거지까지, 닥터 장은 많은 부분 양동근의 매력에 기댄 인물이다. 그가 화면에 등장하는 순간, 범상치 않은 무언가를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가 관객들의 입꼬리를 간질인다.

[쿠키인터뷰] 양동근 “‘존버’하니 새로운 철학이 보인다”
양동근은 닥터 장을 연기하며 ‘영화의 미장센이 되자’고 마음 먹었다. 자신 뜻대로 캐릭터를 해석하지 않고, 감독의 의도를 재현하는 데 충실했다는 의미다. “대사 외우고, 지묵 숙지하고, 헤어·메이크업을 하면 준비는 끝이었어요.” 양동근은 최대한 머리를 비우려고 했다. ‘이 캐릭터는 왜 그럴까’ 의문을 갖지 않으려고도 했다. 마침 현장에서의 앙상블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 감독과 합이 잘 맞았다. 신 감독은 양동근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도 “현장에서…(맞춰 보자)”고 했을뿐, 구체적인 요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데뷔 34년차인 양동근에게도 이런 접근은 처음이었다. 한때 그는 “혼을 불태우는” 연기로 캐릭터 안에 자신을 갈아넣었다. 종영한지 18년이나 됐는데도 많은 이들의 ‘인생 드라마’로 손 꼽히는 ‘네 멋대로 해라’ 속 고복수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양동근은 “나 혼자 살면 그런 소모전을 계속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처자식이 있지 않느냐”라며 “그렇게 나를 처절하게 버려가면서 연기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다른 재미를 찾아가는 거예요. 혼신을 다해야 제 연기에 만족하던 때도 있었죠. 하지만 그런 에너지로는 오랫동안 일할 수 없겠더라고요. 언젠간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하는 작품을 만날 수도 있겠죠. 다만 지금은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는 걸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감독님이 만드는 하모니의 일부가 되기로 한 거예요.”

[쿠키인터뷰] 양동근 “‘존버’하니 새로운 철학이 보인다”
흔히 가수와 배우를 ‘아티스트’라고 표현하지만, 양동근은 자신의 직업을 “기술직”이라고 부른다. 가정을 꾸리면서 생긴 변화다. 3년 전 MBC 드라마 ‘보그맘’ 종영 이후 만났던 그를 기억한다. 당시 그는 “양동근을 죽이는 시간이 길었다”고 했다. 배우로서 자아 실현을 이루기보단 아빠/남편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땐 아빠가 되기 전의 모습을 거부하던, 날이 서 있던 시기였나 봐요. 그런데, 지금은 괜찮아요. 더 편안해졌어요.” 한 때 꼬리표처럼 느껴졌던 과거의 작품들도 이젠 편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됐다. 예전 작품을 ‘뛰어넘어야 할 무언가’로 여기지 않게 된 덕분이다.

TV에 나오는 사람들이 마냥 신기했다. 어머니를 졸라 연기학원에 등록했다. 아홉 살에 드라마 ‘탑 리’로 데뷔해 30년 넘게 연기를 하고 있다. 어린 시절엔 낯선 어른들의 친한 체를 견디며 말수가 적어졌고, 20대 땐 자신의 말이 왜곡되는 게 싫어 인터뷰를 꺼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양동근은 세상과 화음을 쌓는다. “남자 배우는 마흔 살부터”라는 그에게,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그가 답했다.

“존.버.(끝까지 버티기). 저도 우여곡절이 많았고 위기도 많았고 때려치고 싶은 순간도 있었어요.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다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아쉽게도 저는 (연기가 아닌) 다른 걸 할 능력이 없었어요. 그럴 의지도 없었고요. 결국엔…이유가 바뀌더라고요.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10년차 때 다르고 20년차, 30년차 때도 달라져요. 그게 재밌는 것 같아요. 하는 일이 똑같아서 권태롭긴 한데, 그 안에서 새로운 철학을 찾게 돼요.”

wild37@kukinews.com / 사진=TCO(주)콘텐츠온 제공 기사모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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