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알던 EPL이 아냐

김찬홍 / 기사승인 : 2020-10-20 07: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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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로고. 사진=EPL 공식 홈페이지 캡쳐
[쿠키뉴스] 김찬홍 기자 = 2010년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는 바야흐로 ‘빅6’의 시대였다. ‘빅6’라 불린 리버풀, 맨체스터 시티(맨시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아스날, 첼시, 토트넘이 2010년대 상위권을 독식했다. 레스터시티가 우승한 2015~2016시즌을 제외한 나머지 시즌의 우승팀은 모두 ‘빅6’에서 나왔다. 

하지만 올 시즌은 기존과 다른 그림이 펼쳐지고 있다. 시즌 초반이지만 강팀들이 연달아 패배하면서 순위권에서 밀려났고 예상치 못한 팀들이 상위권을 점령하는 등, EPL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에버턴 공격수 도미닉 칼버트-르윈. 사진=EPA 연합

▲ ‘닥공’ 에버턴, ‘선수비-후역공’ 아스톤 빌라
현재 EPL 순위표에는 낯선 이름들이 보인다. 20일 기준 EPL 1위는 에버턴(4승 1무·승점 13점)이며, 2위는 아스톤 빌라(4승·승점 12점)다.

두 팀은 지난 시즌 10위권 밖에 있었다. 에버턴은 초반 강등권에서 허덕이다 감독 교체 후 12위로 리그를 마감했고, 아스톤 빌라는 18위 AFC 본머스에 다득점에서 한 골차로 앞선 17위로 간신히 EPL에 잔류했다.

최악의 시즌을 보낸 두 팀은 단 한 시즌 만에 환골탈태에 성공했다. 어떻게 지난 시즌이 끝난 지 두 달만에 이렇게 팀이 바뀔 수 있었을까.

1위 에버턴은 지난 시즌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이적 시장에서 거금을 풀었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받던 중원을 개편하는 데 집중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잉여 자원이었던 하메스 로드리게스와 ‘나폴리 특급’ 알랑, 왓포드 에이스 압둘라예 두쿠레 등 정상급 미드필더를 영입하면서 전력이 상승했다.

중원이 안정되면서 에버턴은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공격진도 덩달아 살아났다. 중원에서 결정적인 패스를 연달아 뿌리면서 공격 기회가 크게 늘었다. 현재 에버턴의 팀 득점은 14골로 토트넘에 이은 전체 2위다.

이 중 최전방 공격수 도미닉 칼버트-르윈의 활약이 돋보인다. 지난 시즌 36경기에 출전해 13골에 그쳤던 칼버트-르윈은 벌써 7골을 넣으면서 손흥민(토트넘)과 득점 공동 선두에 올랐다.

지난 시즌 우승팀이자 지역 라이벌인 리버풀을 상대로도 에버턴은 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지난 17일 5라운드 맞대결에서 에버턴은 리버풀을 상대로 2대 2 무승부를 거뒀다. 이날 VAR 판독으로 조던 헨더슨의 득점이 취소되는 등 석연찮은 판정이 있었지만, 에버턴은 리그 최고의 팀인 리버풀을 상대로 인상적인 경기력을 선보였다. 

아스톤 빌라의 골키퍼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 사진=AP 연합

에버턴에 이은 리그 2위 아스톤 빌라는 이적시장에서 잭 그릴리쉬, 에즈라 콘사 등 주요 선수를 잔류시키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골키퍼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 미드필더 로스 바클리 등, 가성비가 좋은 선수를 영입하는 데 집중했다.

지난 시즌 노리치에 이은 최다실점팀 2위(67실점)였던 아스톤 빌라는 올 시즌 ‘선수비 후역공’ 컨셉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4경기 중 3경기가 무실점 경기일 정도로 수비가 안정됐다. 4경기 동안 평균 3골을 기록하는 등 공격도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탄탄한 수비의 핵심은 골키퍼 마르티네스다. 아스날의 서브 골키퍼였던 그는 이적 후 4경기에서 14번의 세이브, 1번의 페널티킥 선방을 선보이는 등 수호신으로 자리잡았다.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버질 반다이크. 사진=로이터 연합

▲ 굴욕 겪은 리버풀-토트넘
지난 시즌 우승팀인 리버풀은 현재 3승 1무 1패로 리그 3위에 있다. 표면적인 성적만 보면 그리 나빠 보이지 않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팀의 주전 골키퍼인 알리송 베이커가 어깨 부상으로 이탈한 동시에 사디오 마네, 나비 케이타, 제르단 샤키리, 티아고 알칸타라 등 주전 선수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아 경기에 뛰지 못하고 있어 선수단 가동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일정도 만만치 않아 고전이 예상됐다.

우려가 곧 현실이 됐다. 지난 5일 아스톤 빌라 원정 경기에서 2대 7로 패배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57년 만에 한 경기 7실점 헌납이라는 굴욕을 경험했다. 당시 위르겐 클롭 감독은 “오늘밤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다. 이 한 경기에서 모든 실수를 쏟아내고 앞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선수단을 독려했다.

클롭 감독의 바람과 달리 팀의 상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지난 17일 에버턴 원정 경기에서 2대 2로 비겼는데, 팀의 핵심 수비수인 버질 반다이크가 십자인대 파열로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다. 코로나19 완치 판정을 받은 티아고도 이날 복귀했지만 상대의 거친 태클에 부상을 입어 당분간 경기에 나서지 못할 전망이다. EPL 2연패에 적신호가 들어왔다.

손흥민(좌)와 해리 케인(우). 사진=로이터 연합

조제 무리뉴 감독을 선임한지 2번째 시즌을 맞이한 토트넘은 이번 여름 이적시장에서 막대한 자금을 사용해 선수 보강에 힘을 썼다. 짠돌이 이미지가 강했던 토트넘은 세르히오 레길론, 피에르에밀 호이비에르, 맷 도허티, 조 하트, 가레스 베일 등을 영입했다. 총 900억원을 지출하며 우승에 대한 열망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토트넘은 시즌 초 4경기에서 2승 1무 1패로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다. 특히 손흥민과 해리 케인의 콤비가 빛났다. 두 선수는 4경기 동안 공격 포인트 16개(손흥민 6골 1도움, 케인 3골 9도움)를 기록했다. 베일까지 복귀를 앞두면서 축구팬들의 기대감이 고조됐다.

베일의 복귀전이 된 19일 웨스트 유나이티드전, 토트넘에겐 최악의 경기로 남았다. 3대 0으로 앞서고 있던 토트넘은 후반 35분 이후 3골을 허용하며 3대 3으로 비겼다. 10분 만에 무려 3골을 허용했다. EPL 역사상 처음으로 경기 종료 10분 전 3골 동점을 허용한 팀이란 불명예를 안게 됐다.

손흥민은 경기 후 현지 매체와 인터뷰에서 “경기 결과에 충격을 먹었다. 우리는 승점 3점을 얻기에 충분했고 마지막 10분 전에는 잘하고 있었다”며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 집중을 유지해야 한다. 이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아쉬워했다.

아스날의 공격수 피에르 오바메양. 사진=로이터 연합

▲ 이적시장서 대박친 아스날-첼시, 효과는 아직
지난 시즌 중반 미켈 아르테타 감독을 선임하면서 FA컵에서 우승한 아스날은 이번 이적시장에서도 성공적인 영입을 이뤄냈다. 윙어 윌리안을 자유계약으로 영입했고, 레알 마드리드 미드필더 다니 세바요스를 재임대했다. 여기에 이적시장 종료 1분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미드필더 토마스 파티를 682억원에 품에 안았다.

알짜배기 자원들을 영입하면서 이적시장의 승자로 떠오른 아스날은 개막 2경기에서 모두 승리하며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기쁨도 잠시 3라운드 리버풀전에서 1대 3으로 패배했고, 5라운드 맨시티전에서도 0대 1로 패배해 리그 5위로 쳐졌다.

이적생들의 활약이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수비수 가브리에우 마갈량이스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활약을 하는 선수가 없다. 특히 첫 경기에서 활약했던 윌리안은 시간이 지나면서 계륵 같은 존재가 됐다.

현재 아스날은 약팀에겐 강하고, 강팀에겐 약한 모습을 노출 중이다. 이후 레스터시티, 맨유, 아스톤 빌라, 리즈 유나이티드 등 강팀과 일정이 있어 쉽지 않은 시즌이 될 전망이다.

아스널의 라이벌팀 첼시는 EPL 팀 중 여름 이적시장에서 가장 많은 돈을 쓴 팀이다. 하킴 지예흐, 카이 하베르츠, 티아고 실바, 벤 칠웰, 티모 베르너 등을 영입하는 데 무려 3400억원을 소모했다. 올 시즌 가장 기대되는 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첼시의 골키퍼 케파 아리사발라가. 사진=EPA 연합
팬들과 기대와 달리 첼시는 2승 2무 1패로 리그 7위에 자리했다.

공격은 기대 이상이다. 5경기 동안 13골을 터뜨렸다. 이적 후 4경기 동안 무득점에 그친 베르너마저 지난 17일 사우스햄턴전에서 2골 1도움을 기록하면서 침묵을 깼다.

문제는 수비다. 5경기에서 9골을 내줬다. 골키퍼 케파 아리사발라가가 여전히 골칫거리다. 골키퍼 세계 이적료 최고 기록을 갈아치운 그였지만 첼시에서는 명성을 잇지 못했다. 올 시즌에도 그의 활약상(?)은 이어지고 있다. 패배한 리버풀전과 무승부를 기록한 사우스햄턴전에선 케파가 원흉이었다. 

문제는 새로 영입된 주전 골키퍼 에두아르 멘디가 국가대표 차출 도중 허벅지 부상을 입어 당분간 케파가 계속 골키퍼 장갑을 낄 예정이다. 첼시 팬들의 속이 까맣게 타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맨체스터 시티에 입단한 후벵 디아스. 사진=AP 연합

▲ 맨체스터 형제, 구멍난 수비진에 울상
EPL을 대표하는 맨체스터 형제(맨시티, 맨유)는 수비진 때문에 고된 시즌 초를 보내고 있다.

지난 시즌 준우승팀 맨시티는 개막 4경기에서 2승 1무 1패로 리그 10위(승점 7점)에 쳐졌다.

울버햄튼 원더러스과 개막전에서 3대 1로 승리한 맨시티는 2라운드에서 레스터시티에게 2대 5로 패배하는 굴욕을 당했다. 기존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수비진이 여전히 구멍이었다. 3라운드 리즈전마저 1대 1로 비기면서 수비진 보강이 대두됐다. 

결국 맨시티는 지난달 30일 이적시장 종료 마감을 앞두고 포르투로부터 중앙 수비수 후벵 디아스를 무려 980억원에 데려왔다. 과르디올라 감독 부임 이후 수비수들을 꾸준히 영입해왔던 맨시티는 다시 거액으로 로스터를 충원했다.

효과는 바로 드러났다. 디아스와 니단 아케를 앞세운 맨시티는 지난 18일 ‘난적’ 아스날을 상대로 1대 0 승리를 거뒀다. 펩 과르디올라 감독도 “지난 시즌 우리는 실수로 큰 고통을 받았다”며 “이번 경기에서 디아스와 아케 둘 다 실수하지 않았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장 해리 맥과이어(5번). 사진=로이터 연합
맨유는 이번 이적시장에서 최악의 평가를 받았다. 중앙 미드필더 도니 판더비크 윙백 알렉스 텔리스를 영입했지만, 이적설이 돌던 제이든 산초를 영입하지 못하면서 구상한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가장 중요했던 중앙 수비수 영입에 실패한 맨유는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개막 첫 3경기에서 무려 11점을 실점했다. 개막전부터 크리스탈 펠리스전에게 1대 3으로 패했다. 2라운드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을 상대로는 졸전 끝에 3대 2 승리를 거뒀지만, 3라운드에서는 토트넘을 상대로는 무려 1대 6으로 패배했다. 현재 ‘빅6’팀 중 유일하게 득실 마진이 마이너스(-3)다.

다행히 지난 18일 뉴캐슬 유나이티드전에서 4대 1로 승리를 거두며 한숨을 돌린 맨유지만 아직 안심하기엔 이르다. 첼시, 아스날, 에버턴으로 이어지는 ‘죽음의 3연전’이 남아있다. 

kch094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