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유아인이 ‘소리도 없이’ 느낀 자유로움

기사승인 2020-10-21 06:3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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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인터뷰] 유아인이 ‘소리도 없이’ 느낀 자유로움
▲ 사진=UAA 제공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너무 자유로웠어요. 대사 없는 것, 머리카락 없는 것, 메이크업 하지 않는 것.”

영화 ‘소리도 없이’에서 태인의 찌푸린 인상은 좀처럼 펴지지 않는다. 삭발한 짧은 머리에 후줄근한 티셔츠를 입고 차 안에서 침을 흘리며 자는 태인은 대체 어떤 사연을 가진 인물일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영화는 끝까지 태인의 과거를 드러내지도, 태인의 입을 열지도 않는다. 말을 못 하는지, 안 하는지도 불분명한 이 인물을 연기한 건 배가 나올 정도로 살을 찌운 배우 유아인이다.

최근 서울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유아인은 지난 6월 개봉한 ‘#살아있다’에 이어 ‘소리도 없이’가 코로나19를 겪는 지금 연이어 개봉한 것에 “아쉽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라고 말하며 웃음을 보였다. 이어 “더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있는 위기와 기회가 될 수도 있는 지금이라고 생각한다”며 “개인적으로 코로나19의 핑계를 댈 수 있어서 좋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엔 너무 루저 같으니까”라고 유아인 특유의 솔직한 화법이 이어졌다. 유아인은 ‘소리도 없이’에 대해 “‘#살아있다’보다 먼저 찍은 작품”이라며 두 명의 신인감독과 연이어 작업한 소감을 밝혔다.

“신인 감독님들과의 작업에 기대감이 있던 시기였어요. 비교적 어린 나이에 유명 감독님들과 작업을 많이 했어요. 유아인의 이미지를 관객들에게 심어드리고 형성하게 되면서 제 몸이 다르게 쓰일 수 있는 현장, 다른 반응을 할 수 있는 현장에 대한 갈증이 있었죠. 도발적이고 신선한 자극을 주는 작품을 기다리고 있었고, ‘소리도 없이’가 그 점에 정확히 부합하는 작업이었어요. 새로운 걸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겼고 영화를 찍으며 그 기대를 채워갈 수 있었어요.”

[쿠키인터뷰] 유아인이 ‘소리도 없이’ 느낀 자유로움
▲ 영화 '소리도 없이' 스틸컷

유아인은 모든 걸 포기하고 살아가는 태인을 “무기력함 속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인물 같지만, 그 또래 인물이 가질 수 있는 열등감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설명했다. 더 번듯하게 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열등감을 불러왔고, 그 열등감이 조직의 실장이 입었던 검은 수트로 드러났다는 설명이었다. 어쩌면 초라한 수트가 태인에게 슈퍼히어로 같은 영웅 심리를 불러왔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유아인은 태인이 입을 열지 않는 것에 대해 “표현을 거부하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태인이 표현하지 않는 정신적 상태에 놓여있는 인물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상징적으로 보면 표현의 무의미함을 느낀 거죠. 표현이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고, 아무것도 전달하지 못하고, 어떤 표현으로 깊은 상처를 받은 인간이라면 이렇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평범한 사람들도 때로는 표현의 무의미함이나 상처를 느끼는 순간이 있으리라 생각해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지점들을 포착해내고 극대화하는 인물이 될 수 있겠다 싶었죠. 저에게도 그런 면들이 있을 수 있고요.”

‘#살아있다’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 유아인은 “현장에서 다른 배우들과 이번보다 훨씬 많이 소통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보다 먼저 촬영에 들어간 ‘소리도 없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타일리스트의 도움을 받아 의상, 분장, 헤어를 꾸미지 않아도 됐던 현장도 편하게 촬영에 집중할 수 있게 도움을 줬다.

[쿠키인터뷰] 유아인이 ‘소리도 없이’ 느낀 자유로움
▲ 사진=UAA 제공

“많은 설정이나 의식적으로 가공하지 않아도 되는 인물을 연기할 때 편안해져요. 공간과 나 사이에 차이가 줄어드는 느낌이 있죠. 현장에 도착해서 메이크업을 받는 순간 달라지는 몸의 태도나 마음가짐이 있거든요. 그걸 하지 않으니 달라지는 측면이 있더라고요. 이전에 사람들 앞에 서는 게 아주 불편했어요. 친하지 않은 수십 명의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불편하고 힘든 시기도 있었어요. 눈치가 보이고 잘 보이고 싶고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들이 있었죠. 지금은 그런 것들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는 것 같아요. 좀 더 무의식의 상태로 나를 놓아주는 트레이닝을 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영화 ‘베테랑’과 ‘사도’, ‘버닝’을 찍던 당시의 유아인과 ‘#살아있다’, ‘소리도 없이’를 찍은 유아인은 조금 다르다. 과거의 유아인이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 대중이 유아인에게 기대하는 것에 조금 더 초점을 맞췄다면, 지금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이전에 하지 않았던 것에 시선이 쏠려있다. 대중이 유아인에게 무엇을 기대하는 것 같은지 묻자 “그게 어떤 것이든지”라는 말을 덧붙였다.

“저에 대한 대중의 보편적인 인식을 판단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기자들이 저에 대해 써준 것과 제가 맡은 배역들이 만들어낸 이미지, 유명작들로 활성화된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출연한 단 몇 개의 작품만으로 너무 강하게 만들어진 이미지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고정되는 걸 벗어나서 배우 유아인의 이미지를 더 입체적으로 만들고 싶어요. 관객분들의 기대를 배신한다는 게 자칫 위험한 얘기로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제 스스로 지루하지 않은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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