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화의 티타임에 초대] 부엌기도

최문갑 / 기사승인 : 2020-10-26 11: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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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화 (주부/작가)

▲이정화 작가
요즘, 주부들에겐 집밥 걱정이 늘어났다. 매식과 외식을 피하다 보니, 코로나가 주부들을 현모양처로 만든다는 농담도 돈다. 야근이 잦은 가족들이 대부분 밖에서 식사를 하고 와서 저녁 걱정이 없던 나도 요즘은 고민이다. 한동안 안 하던 식사 준비를 하려니 새삼스럽고 메뉴부터가 생각나지 않는다. 결국엔 휴대폰으로 온갖 요리 사진을 찾아보기도 하지만 이건 재료가 너무 많이 들어가고, 저건 조리법이 복잡하고, 어떤 건 질리도록 뻔해, 이리저리 타박하며 넘기다 보면 벌써 식사시간이다. 본의는 아니었으나 또 급하게 대충 밥을 차리면, 나로선 굴비 한 마리를 천장에 걸어놓고 냄새를 반찬 삼아 밥을 먹는 느낌이다. 요리 사진을 너무 많이 봐서 이미 난 별다른 것 없이도 밥을 먹을 만큼 배가 고파져 있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생각이 다를 테니 슬그머니 숟가락을 내려놓고, 나는 도대체 남들은 뭐를 해 먹을까, 다시 머리를 짜낸다.

“주전자와 냄비의 주님
저는 굉장한 일을 하지도 않고, 밤늦도록 기도하지 못하고
새벽에도 당신을 찬미할 틈이 없습니다.
밥상을 차리거나 설거지를 하면서도 성인이 될 수 있나요?
그렇지만 저는 구두를 닦을 때마다 당신을 생각하고,
마루를 닦으면서 당신을 생각합니다. 차분히 앉아서 당신을 생각할 틈은 없지만
문득 문득 스쳐가는 생각들과 마음의 기도를 받아주십시오.
당신께서 이 부엌에 함께 하시어
제가 만든 음식으로 가족들이 사랑과 힘을 얻게 해주십시오.”
(부엌기도 중에서 / 작자 미상)

부엌기도를 처음 본 날은 친구 집에서 처음 밥을 먹은 날이었다. 계획이 되어있던 것도 아니고 그저 우연히 함께 집에서 밥을 먹게 된 거라 반찬은 평범했지만 친구가 차려주는 밥은 유난히 맛있었다. 깔끔한 밑반찬과 김치 맛에 감탄을 했더니 친구는 솔직하고 편안한 목소리로 전부 어디서 얻거나 식품점에서 사온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후에도, 나는 친구의 음식 맛엔 특별한 무엇이 있다고 생각했다. 친구의 냉장고에 붙어있던 부엌기도를 보며 그 상차림에서도 안주인의 각별한 기도가 느껴졌던 것 같다.

나도 오늘은 메뉴를 생각하며, 요리를 검색하는 대신 부엌기도를 올린다. 쌀을 씻으면서도 야채를 데치면서도 올리는 내 방식의 기도다.

“햅쌀의 주님, 현미의 주님, 올해도 햅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백미를 좋아하는 아들 입에 현미와 잡곡도 백미처럼 부드럽고 달게 느끼도록 해주세요.
당근의 주님, 시금치의 주님, 그렇게 우리 모든 것의 주님.
진리를 따르지 않은 채, 기도만 올려도 되나요?
주님의 말씀을 모른 채, 모두의 은혜를 구해도 되나요?
그래도 저는 햇볕만 쪼여도 주님을 떠올리고 바람만 불어도 주님을 생각합니다.
저희를 낳으신 마음으로 지금의 저희도 바라봐주시고
저희를 키우신 손으로 저희의 내일도 이끌어 주세요.
오늘도 저희에게 함께하시어 주님이 주신 건강한 하루를 지키게 해주십시오.”

천 사람이 천 가지 기도를 할 때, 만 사람이 만 가지 기도를 할 때, 그걸 듣는 주님도 참 힘드시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지금은 모두의 기도가 비슷해졌을 것도 같다. 어쩌면 코로나와 독감과 물가와 경기도 역시 주관하실, 그렇게 우리 모두의 주님, 이 땅에 불안을 거두시고 자비를 베푸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