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박지완 감독 “‘내가 죽던 날’, 보는 사람마다 달라지는 이야기”

기사승인 2020-11-19 06: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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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인터뷰] 박지완 감독 “‘내가 죽던 날’, 보는 사람마다 달라지는 이야기”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주)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지난 12일 개봉한 영화 ‘내가 죽던 날’(감독 박지완)을 두고 관객들 사이에 다양한 평이 나오고 있다. 언뜻 한 소녀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다루는 것 같기도 하고, 인물들의 사연으로 옮겨가는 것 같기도 하다. 정확하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설명하지 않고 공백으로 남겨두는 장면들도 있다. 전형성에 갇히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걷는 영화에 열광하는 관객도, 지루하고 어렵게 느끼는 관객도 나타나는 이유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서울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박지완 감독은 영화에 관한 질문에 막힘없이 답변을 내놓고 어떤 지점을 고민했는지 이야기했다. 관객들에게 익숙한 영화가 될 수 있었던 ‘내가 죽던 날’이 어떻게 지금처럼 처음 의도를 그대로 담을 수 있었는지, 배우 김혜수의 캐스팅은 어떻게 이뤄졌는지도 설명했다. 인터뷰는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영화를 아직 보지 못한 관객을 위한 인터뷰를 먼저 소개하고, 영화를 보고 궁금증이 생긴 관객들을 위해 스포일러를 포함한 인터뷰를 뒤에 배치했다.

 

<영화 내용 미포함 일문일답>

□ ‘내가 죽던 날’이란 제목이 묘한 느낌이에요. 영화를 보기 전에도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는데, 보고 난 후에도 정확히 알 수 없더라고요.

“누군가에게 다시 태어난 어떤 날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스스로는 몰랐지만 어떤 시점에 죽었다고 느낄만한 일들, 그 이후에 다시 태어나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되는 날들이 있는 사람들의 느낌이 들었죠. ‘죽은 날’과 ‘죽던 날’, 모두 모순된 얘기잖아요. 그래도 그 표현이 다시 태어났다는 느낌으로 쓰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 직접 쓴 대본으로 연출까지 하셨어요. 대본은 언제 어떻게 처음 쓰게 됐나요.

“2012년~2013년 정도 쓴 얘기였어요. 제가 잊을만하면 다시 불러일으켜지는 얘기였죠. 2017년 말에 제작사 대표님과 만나서 이 작품을 해보자고 하셨어요. 돌이켜보면 ‘내가 죽던 날’ 대본은 읽는 사람들의 욕망이 투영되는 얘기였던 것 같아요. 범죄물을 하고 사람이 싶으면 세진이의 아버지 얘기에 집중하게 되고, 성장물을 하고 싶은 사람이면 현수나 세진의 극복기에 눈길을 보냈죠. 각자 본인들이 바라는 시점에서 작품을 봐줬지만, 전 그게 아니었어요. 범죄물이나 수사물, 미스터리를 따라서 끝까지 가다 보면 조금 다른 곳에 도착해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거든요. 다행히 제작자 분들이 그걸 봐주셨고, 이 분들이라면 함께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쿠키인터뷰] 박지완 감독 “‘내가 죽던 날’, 보는 사람마다 달라지는 이야기”
▲ 영화 '내가 죽던 날' 스틸컷

□ 김혜수 배우의 캐스팅도 제작에 영향이 컸을 것 같아요.

“처음엔 거절하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그분이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죠. 읽어주시길 바란다고 말씀드렸는데 제가 생각한 것보다 답이 빨리 왔어요. 거절하시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만나면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신다는 소문을 들었거든요. 피드백이라도 받으려는 생각으로 갔다가 출연하신다고 했는데 엄청 놀랐죠. 다른 이유가 아니라 제가 이 작품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그 지점 때문에 하고 싶다고 해주셨어요. 이 이야기가 임자를 만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래도 좋아했지만, 2019년의 배우 김혜수를 영화에 담는 것도 개인적인 목표 중 하나였어요.”

 

□ 이정은 배우와 노정의 배우의 캐스팅 과정도 궁금했어요.

“이정은 배우도 일찍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어요. 그 와중에 영화 ‘기생충’이 빵하고 떴죠. 사실 정은 배우의 얼굴이 너무 알려져서 걱정하기도 했어요. 관객들이 순천댁(이정은)이 허투루 나올 리가 없다고 생각하게 될 것 같아서요. 대본을 쓸 때는 순천댁이 더 어둡고 무서운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았어요. 섬에 혼자 있고 말도 안 하니까요. 정은 배우가 그 역할을 맡으면서 귀여운 인간미가 더 들어갔어요. 순천댁에 대한 질문이 많았는데 배우가 그걸 얼굴과 연기로 메워줬다고 생각해요. 정은 배우가 해주셔서 다행이었어요.”

“세진이는 그 또래의 얼굴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오디션에서도 나이대를 주로 봤어요. 요즘 아역들이 다 정말 잘하거든요. 노정의 배우의 인상이 제일 세진이 같았어요. 가만히 있으면 냉정한 얼굴이 됐다가 웃으면 엄청 화사하게 웃고 애기 같아지거든요. 그 격차가 정말 좋더라고요. 결과적으로 정말 잘 맞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 보도 자료에서 감독님이 후일담을 좋아한다는 내용을 읽었어요. ‘내가 죽던 날’도 완전한 후일담 서사잖아요.

“개인적인 관심사예요. 사건 중앙에 있으면 정신이 없으니까 후루룩 지나가버리잖아요. 하지만 사건을 겪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모두 달라요. 그 다름이 재밌고 관심이 많아요. 각자 개인이 겪은 같은 일이 정말 어떤 일이었을까 하는 얘기를 좋아하죠. ‘내가 죽던 날’도 세진이가 겪은 일, 현수가 바라보는 것, 새 엄마가 얘기하는 것이 모두 달라요. 진실은 세진이만 아는 거잖아요. 세진이와 가까워질수록 진실에 가까워지는 것도 아니고, 현수가 아니면 아무도 알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진실에 다가가서 새로운 것을 보게 되고 느끼게 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게 중요했어요.”

 
[쿠키인터뷰] 박지완 감독 “‘내가 죽던 날’, 보는 사람마다 달라지는 이야기”
▲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주)

□ 영화의 메시지도, 전달하는 방식도 독특했던 것 같아요. 이 영화를 연출하면서 목표로 했던 건 무엇이었나요.

“표면적 이야기와 진짜 있었던 이야기의 차이를 다루는 작품을 하고 싶었어요.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 연결되는 얘기를 하고 싶었거든요. 가족이나 자식, 사랑하는 사람에 관한 얘기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반대의 이야기가 끌렸죠. 나와 진짜 상관없는 사람인데, 저 사람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 내가 왜 힘이 나지 하는 이야기가 더 필요하지 않나 생각했어요. 형사가 늘 하던 수사 대신 감정을 이입해서 하는 수사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경찰과 검찰의 시스템 때문에 외롭게 된 여자아이를 지켜보는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엔딩은 처음 쓴 것과 거의 달라지지 않았어요.”

 

□ 시나리오를 쓸 때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구상하시나요.

“저한테 계속 생각나는 몇 장면들이 있어요. 제가 직접 봤거나 떠올린 장면이 있고, 그 장면의 앞과 뒤를 만들거나, 엔딩이 되거나, 첫 장면이 되는 식이에요. ‘내가 죽던 날’은 엔딩 장면이었어요.”

 

□ 차기작은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으신가요.

“저도 궁금해요. 2020년의 박지완이 관심 있는 게 뭔지에 따라서 달라질 거 같아요. 제가 어떤 포인트가 마음에 들어서 해야겠다고 생각하는지를 아는 게 중요하거든요. 기본적으로 모든 이야기는 미스터리라고 생각해요. 세고 약함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 감독으로서 관객들이 ‘내가 죽던 날’을 어떻게 봐줬으면 하는 점이 있으신가요.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계속 느꼈던 점이 보는 사람마다 이야기를 찾아가는 길이 달라요. 어느 장면이 좋았다는 것도 다르고요. 관객 분들이 어떻게 보실지 궁금해요. 영화의 장르가 미스터리나 스릴러가 아니라 드라마인데 오해하기 쉽잖아요. 관객 분들이 저를 잘 모르시니까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느낌으로 ‘내가 죽던 날’을 봐주시면 좀 더 이야기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또 김혜수 배우가 연기하는 현수라는 사람이 궁금해서 따라가는 느낌으로 봐주셔도 이야기를 잘 즐길 수 있지 않을까요.

 
[쿠키인터뷰] 박지완 감독 “‘내가 죽던 날’, 보는 사람마다 달라지는 이야기”
▲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주)

<영화 내용 포함 일문일답>

□ 순천댁의 목소리는 어떤 설정이었는지 궁금해요. 말을 완전히 못하는 건 아니잖아요.

“순천댁은 입을 닫고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켜서 사는 사람에 가깝다고 생각했어요. 나이가 많은 설정은 아니었죠. 혼자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라는 인물의 배경만 줬어요. 이정은 배우와 인물의 감정에 관한 얘긴 많이 안 했고, 평범한 상황들에 관해 계속 얘기했어요. 글씨는 어떨까요, 평소에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일과는 어떨까요 하는 얘기였죠. 따로 엄청난 설정을 했다기 보다, 이정은 배우가 워낙 준비를 잘 해오셔서 서로 질문하고 답을 찾으면서 만들어나간 것 같아요. 메이크업팀과 의상팀에선 순천댁이 돌보는 조카가 잘못된 그 순간에 시간이 멈춰있을 것 같다는 얘기를 했어요. 그때 쯤 헤어스타일에서 벗어나지 않고 유지했을 거란 식으로 설정을 만들어 갔어요.

 

□ 직장 사람들이 뒤에서 현수를 욕하는 장면이 나와요. 그 정도로 현수가 잘못한 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현수는 잘 알던 사람에게 모욕을 당하면 그 얘기는 언급조차 하고 싶지 않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현수가 자신이 겪은 일을 언급도 하지 않고 해명도 하지 않은 상태예요. 그렇지 않았으면 남편이 현수를 공격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현수가 변호사에게도 부탁을 하지도 않겠죠. 그 상태로 교통사고를 냈기 때문에 경찰서에 소문이 무성한 거예요. 현수는 직장에서도 잘나가는 사람이었고, 변호사와 결혼도 하고 다들 대단하다고 생각했겠죠. 현수로는 그들에게 나가서 해명할 기운조차 없었던 거예요. 민정(김선영)은 그런 현수를 보고 답답해서 도대체 뭐하냐고 하지만, 현수는 그것조차 생각하고 싶지 않고 말하고 싶지도 않은 상태라는 설정이에요.”

 

□ 형준(이상엽)과 세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명확히 그려지지 않았어요.

“그것도 형준이가 잘못해서 세진이가 그런 선택을 했다는 식의 단순한 결과를 내지 않으려고 지도를 그린 거예요. 세진이는 아마 형준을 좋아했을 것 같아요. 마음을 주고, 자기를 봐주는 유일한 사람이 형준이지 않았을까요. 형준에게 많이 기댔지만 어떤 일 때문에 다신 찾아오지 않고 연락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거예요. ‘내가 죽던 날’의 악인은 세진이의 오빠 정도예요. 나머지는 각자의 일을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한 사람들이죠. 그 때문에 세진이는 점점 더 외로워져요. 세진이가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건 악인의 행동 때문이 아니라, 각자가 처한 상황으로 혼자 남겨지게 된 것 때문이지 않을까요. 현수 입장에선 누구 하나만이라도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세진이를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요. 왜 구하지 않았냐는 형사로선 하면 안 되는 질문을 자기도 모르게 하다가, 마지막에 형준에게 가서 하게 되죠. 사실 현수가 형준을 의심하게 되는 것도 평면적인 추측이에요. 반대로 그건 현수가 받은 상처의 원인이기도 하죠. 현수도 자신이 누군가를 얄팍하게 봤고 그를 탓하고 싶어서 찾아왔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장면이에요.”

 
[쿠키인터뷰] 박지완 감독 “‘내가 죽던 날’, 보는 사람마다 달라지는 이야기”
▲ 영화 '내가 죽던 날' 스틸컷

□ 각자의 사연을 보여주기보다 대사를 통해 상상하는 장면이 많았던 것 같아요.

“현수가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듣는 게 중요했어요. 현수에게는 CCTV 영상도 있고, 자료도 있고, 직접 사람들을 찾아가서 듣는 얘기도 있지만 다 다르거든요. 현수 버전의 세진이가 완성됐어야 했죠. 세진이에 관한 의문점들이 현수에게 생겨서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예를 들면 평범한 형사였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이 많아요. 현수 자신의 상황으로 인한 고통스러운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세진이 사건을 바라보고 새로운 질문을 하죠. 아이가 살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이렇게 했으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 생겨요. 형사에겐 들면 안 되는 의문인데 말이죠. 그것 때문에 지루하고 느리다고 느끼실 수 있어요. 현수의 마음은 현수밖에 모르는 거라는 걸 관객도 같이 느끼게 만드는 것이 어려웠어요. 그래도 전 이 길이 맞지 않을까 싶었죠.”

 

□ 서로 연관성이 없었던 세 사람이 연대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요.

“이 아이가 살아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아닐까요. 현수는 표면적으로는 믿지 않지만, 아이를 살릴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마음이 있어요. 순천댁과 세진이도 고통스러운 상황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거지 살기 싫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모든 걸 경험한 순천댁이 세진이에게 알려주고 싶던 거라고 생각해요. 네가 제일 중요하고, 네가 다음날을 살게 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지 않았을까요. 남들이 몰라도 누군가 알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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