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오달수 “제가 무슨 얘길 하겠습니까, 다 제 부덕의 소치죠”

이준범 / 기사승인 : 2020-11-20 06:4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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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배우 오달수가 돌아왔다. 오달수는 지난 11일 무기한 연기 끝에 오는 25일 개봉을 확정지은 영화 ‘이웃사촌’(감독 이환경)의 언론 시사회에 나타났다. 2018년 2월 성폭력 논란에 휘말린 이후 2년 9개월 만에 처음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시사회 직후 간담회에서 오달수는 “거제도에서 가족과 농사를 짓고 살았다”며 “개봉 날짜가 정해져 감사하다. 평생 짊어지고 갈 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 것 같다”고 심경을 털어놨다.

‘이웃사촌’의 개봉을 앞두고 진행된 언론 매체 인터뷰에서 오달수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19일 오전 서울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오달수는 같은 테이블에서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눴다. 오달수는 3년 전 ‘이웃사촌’을 촬영하면서 겪고 느낀 이야기부터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등 여러 질문에 차분한 말투로 답했다. 인터뷰 중반을 지나며 조금 긴장이 풀렸는지 웃음을 드러내기도 했고, 사건에 관한 입장을 지금 밝히는 게 의미 없다는 얘기도 했다. 돌아온 오달수의 심경을 중심으로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 오랜만에 공식적인 자리에 나선 소회가 어떤가요.

“‘이웃사촌’의 개봉 날짜가 정해졌지 않습니까. 우리가 고생해서 찍은 영화가 드디어 소개된다는 부분에 있어선 너무나 뜻깊고 감사하게 생각하죠. 그러나 시간이 너무 흘러서 제작사나 감독님에게 미안한 마음입니다. 요즘 시기가 좋은 편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냥 좋지 않은 게 아니라 아주 안 좋죠. 마음이 좋다가도 이럴 때 또 무한한 책임감과 무거운 마음이 듭니다. 특히나 제작사의 손실이 너무 커서 송구스러울 따름이죠. 관객분들이 영화를 좋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공식 석상에 나오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쉽지 않았죠. TV에서 케이블 채널을 보면 명절이나 주말에 한 번씩 제가 출연했던 영화들이 나옵니다. 전 관객분들에게 크게 낯설진 않으시겠죠. 근데 전 이 자리가 너무 떨립니다. 슬기롭게 귀양살이를 하자고 해서 혼자 거제도 있다가 사람들 앞에 나선다는 건…. 거의 3년이 다 되어갑니다. 겪어보니까 굉장히 무섭습니다. ‘떨린다’는 말은 사치스러운 말 같고, ‘무섭다’는 말이 적합할 것 같아요.”

 
□ 무서운데도 이렇게 나온 이유가 있을까요.

“무섭다고 자꾸 도망가면 그 무서움이 점점 커지겠죠. 언젠가는 한 번쯤 직접 얼굴을 보고 만나 뵙고 어떻게 살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제 솔직한 마음을 얘기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오랜만에 갖는 인터뷰입니다. 어제 있었던 일 같기도 해서 익숙하고 어쨌든 좋네요.”

 

▲ 영화 '이웃사촌' 스틸컷

□ 그동안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하셨나요.

“가능하면 잊고 싶었지만, 영화가 개봉이 되잖아요. 아직은 계획이 전혀 없습니다만, 어떤 식으로든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가 있습니다. 늘 하고 싶었죠. 기회가 된다면 너무 하고 싶습니다. 지금 제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좋은 시나리오가 들어온다면 꼭 할 겁니다.”

 
□ 쉬는 동안 마음의 변화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그동안 너무 참 행복하게 살았구나. 그렇다고 제가 ‘슬기로운 귀양살이’라고 말씀드린 활동이 중단된 그 기간이 불행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막상 농사짓고 뭘 해봐도 항상 내가 있을 자리가 어디인가 생각하게 됐어요.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니까요. 뻥 뚫린 마음이랄까요. 늑골 한구석엔 항상 연기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내가 참 많은 사랑을 받고 행복했구나 싶고 앞으로 또 열심히 하면 언젠가 인정해주시겠지 하는 마음이랄까요. 연기에 관한 생각은 특별히 변한 건 없습니다.”

 
□ 거제도에서의 일상은 어땠나요.

“저한테는 그 사건이 덤프트럭에 부딪혔다고 할까요. 한 번 큰 쇼크가 오면 주변 사람들이 걱정이 되잖아요. 혹시 하는 마음에 항상 가족들이 옆에 있었어요. 형님과 형수님에게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거제도 생활은 해뜨기 전 한 시간 반 정도에 일어나서 텃밭에 물을 주고 아침에 노동주도 한 잔씩 하고요. 낮에는 잡풀도 뽑고 모기에게도 많이 물리고요. 그러다가 해가 저물면, 하루를 마친 기념으로 막걸리 한 잔 하는 단순한 생활의 반복이었습니다. 가족들이 저를 생각해준 만큼 저도 가족들을 생각해야죠. 농한기에는 부산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 사건 당시 처음의 충격이 크셨나봐요.

“일이 그 정도로 커져 있을 줄 전 상상도 못했습니다. 충청도에서 촬영 중이었는데 서울 쪽에 신경을 쓸 겨를이 전혀 없었습니다. 집에선 애가 타서 ‘왜 가만히 있냐’고 하는데 ‘나 지금 촬영해야 하니까’라고 했죠.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오니까 마치 제가 변호사들을 모여서 작전을 짜고 회의하는 걸로 곡해가 되어 있더라고요. 전 그런 것 없이 아침부터 촬영 인원이 많기 때문에 가능하면 해가 뜨자마자 찍으려고 했거든요. 피곤하기도 하고 힘들게 촬영 중이었습니다. 그러다 덤프트럭 같은 게 오니까 충격이 더 컸죠. 차라리 진짜 회의를 하거나 그랬으면 충격이 좀 덜 했겠죠.”

▲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 사건 당시에 적극적으로 표현했을 수 있지 않나요.

“너무 충격이 커서 두어 달 동안 정신을 못 차렸어요. 연극을 했던, 현재 연극배우를 하는 후배들인데 그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제작사나 영화와 관계된 쪽의 피해를 합치면 돈이 얼마인데 그들에게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다 제 부덕의 소치죠. 남에게 왜 그랬냐는 얘기하는 것도 조금 저어하더라고요.

 
□ 폭로 당사자와 해결이 잘 된 건가요.

“한 번도 그 이후로 만나거나 통화한 적이 없어요. 그 이전에도 본 적 없지만요. 서로 기억이 다르기 때문에…. 저는 충격으로 병원에 두 번 입원해서 그거 치료하면서 조용하게 살았어요. 그 분도 일상을 잘 사시길 바랍니다.”

 
□ 사건 이전엔 ‘천만요정’이란 별명도 있었잖아요.

“허망한 거죠. 그런 수식어나 명예와 부, 한순간에 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거라고 느꼈어요. 두 번 다시는 그런 요정이란 얘기는 안 나오겠죠. 이제 요정은 드디어 벗어났습니다. 저도 사람이었구나. 사람 대접 받으면서 살고 싶어요.”

 
여전히 복귀하시는 것에 반감을 가진 대중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대중들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그분들의 생각을 바꾸는 건) 물리적으론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관객들이 작품을 어떻게 봐주시냐에 따라 달려 있는 거죠. 반감이 있으신 분들에게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지 않습니까. 영화를 보시고 평가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지금 제가 말해서 뭘 하겠나요. 얘기를 하려면 그때 했어야죠. 지금 얘기하는 게 그렇게 큰 의미는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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