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안망] 성폭력 신고를 고민하는 당신에게

이소연 / 기사승인 : 2020-11-21 06: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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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흰 장미를 달고 검찰 내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편집자 주> 입버릇처럼 ‘이생망’을 외치며 이번 생은 망했다고 자조하는 2030세대. 그러나 사람의 일생을 하루로 환산하면 30세는 고작 오전 8시30분. 점심도 먹기 전에 하루를 망하게 둘 수 없다. 삶이 힘든 순간 꺼내 볼 치트키를 쿠키뉴스 2030 기자들이 모아봤다.


[쿠키뉴스] 이소연 기자 =신고를 할까, 그냥 덮어 버릴까. 당신이 이 글을 읽기까지 어쩌면 수백번 더 했을 고민입니다. 주저하는 게 당연합니다. 가해자를 처벌하고 싶고, 또 다른 피해를 막고 싶다는 생각도 들겠죠. 피해자가 된 현실을 믿고 싶지도 않고, 주변에 알려질까 걱정될 수도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것도 매우 힘든 일일 겁니다. 만약 신고 이후 펼쳐질 미래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면, 당신의 선택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성폭력 상담 또는 신고를 하면 경찰 조사, 재판까지 당신에게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지 알려드릴까 합니다.

일반적으로 범죄 신고는 112를 통해 이뤄집니다. 성폭력 신고도 마찬가지죠. 다만 경찰에 신고할지 말지 아직 결심이 서지 않았다면 성폭력 피해 지원 기관을 통해 상담을 먼저 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여성긴급상담전화’ 1366 또는 성희롱성폭력근절종합지원센터,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해바라기센터 등에 연락하면 각자의 상황에 맞는 조언과 신고·조력 절차, 의료지원 등을 안내받을 수 있습니다. 불법촬영물 등의 피해를 입었다면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센터와 상담, 삭제지원을 받을 수도 있죠. 상담 및 지원 비용은 모두 무료입니다. 상담과 신고는 별개이니 편하게 연락해도 됩니다. 

▲여성의날을 기념해 미투와 위드유 손팻말을 든 사람들. 연합뉴스 

신고할 결심이 섰다면 증거를 확보해야 합니다. 성폭행 사건의 경우, 빠른 증거 확보가 관건이거든요. 몸을 씻지 않은 상태로 의료기관으로 가서 증거를 채취해야 합니다. 경찰에 신고하면 각 지역의 해바라기센터 등 성폭력 피해자 전담의료기관으로 안내해줄 거예요. 의료기관에서는 응급키트를 이용해 겉옷을 수집하고 몸에 남은 증거 등을 채취,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로 보냅니다. 성추행 등 다른 성범죄도 가해자와의 대화 내역 등 증거를 확보할 수 있으면 좋습니다. 특히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사진과 동영상 등을 ‘캡처’해 증거로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증거 형식은 꼭 PDF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가해자의 아이디, 닉네임, 아이피 주소 등을 확보하면 수월하게 수사가 진행될 수 있습니다.

주의할 점도 있습니다. 경찰 신고 후 즉시 조사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인데요.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조사를 받으면 원하는 만큼 진술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신고하기 전, 사건 내용을 스스로 정리해보면 추후 진술에 도움이 될 거예요. 신뢰 관계가 있는 지인, 변호인, 상담 기관 관계자 등과 동석해 조사받는 것도 가능하다는 걸 기억해두세요.

▲서울 노원구의 한 여고 교실 창문이 졸업생들의 미투 고발을 응원하기 위해 재학생들이 만들어 붙인 ‘위드유’ 등의 문구로 뒤덮여 있다. 연합뉴스 

첫 진술은 매우 떨리는 일일 겁니다. 준비를 충분히 했어도 긴장감에 말이 헛나올 수 있죠. 경찰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에겐 녹음할 권리, 진술서 사본을 요청할 권리, 진술서를 수정할 권리가 있습니다. 경찰이 사건 당시 옷차림을 물을 때는 ‘내 탓을 하는 건가’ 싶어 기분이 상할 수도 있어요. 납득할 수 없는 질문을 받으면 경찰에게 이유를 물어도 괜찮습니다. 동성 경찰에게 조사를 받거나 수사관 교체를 요구할 수도 있고요. 불편한 점이 있다면 당당하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신고 후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될까 여전히 마음에 걸릴까요. 진술조서나 고소장을 작성할 때 피해자의 인적사항 기재를 생략하거나 가명으로 기재할 수 있습니다. 재판 관련 서류를 받는 주소도 변호사 사무실, 상담기관 등으로 변경할 수 있고요. 신변보호 조치도 마련돼 있습니다. 보복을 당할 우려가 있는 경우, 일정 기간 특정시설에서 거주하며 보호를 받거나 주거지를 주기적으로 순찰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습니다.

▲지난 3월8일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열린 ‘제1회 페미 퍼레이드’ 참가자들이 ‘미투(METOO)&위드유(WITHYOU)’운동을 지지하는 흰색 장미를 들고서 참가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당신 혼자서 싸우게 두지 않을 것입니다. 현행법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조력 제도가 존재합니다. 성폭력 피해자는 국선변호인 또는 여성가족부 무료법률구조사업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상담 기관 등에 요청하면 한국성폭력위기센터 등 무료법률구조사업 수행기관으로 연결해줍니다. 해당 기관에서 구조 여부를 심사한 후, 변호사를 연결해 법률 구조를 진행하는 방식이죠. 경찰 조사 과정은 물론 검찰 조사, 성폭력 관련 형사사건, 민사사건, 역고소 사건까지 모두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형사 재판 과정은 어떻게 진행될까요. 당신은 가해자의 재판에 증인으로서 참석할 권리가 있습니다. 당신의 증언이 유·무죄, 합당한 양형을 위해 매우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다수의 사람이 있는 재판정에 서는 것이 부담된다면, 피고인의 측근 및 다른 방청객의 퇴정을 명하는 비공개 재판을 신청할 수도 있습니다. 피고인에게 퇴정을 요청하거나 가림막을 치는 등 가해자를 보지 않고 증언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증언을 하고 싶지만 재판에 나서는 것 자체가 꺼려질 수도 있을 거예요. 증언 과정을 영상물로 촬영하고 이를 증거로 제출하거나 탄원서를 작성해 판사에게 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니 참고하세요.

합의를 할지 말지도 당신의 권리입니다. 합의가 가능하다면 해도 괜찮습니다. 가해자가 합의를 목적으로 전화하거나 찾아올 경우, 합의강요죄로 고소할 수 있습니다.

▲여성단체 회원 및 시민 150여명이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 앞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관련 직권조사를 촉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적 대응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습니다. 성희롱·성추행 등 직장 내 성범죄 등에 대해 고용노동부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직장 또는 학교 내의 성폭력 관련 기구에 진정을 넣어 가해자를 징계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쉽지 않은 길입니다. 힘들기도 하고 후회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 옆에는 당신을 지지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이용할 수 있는 제도들이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해주세요.

취재도움=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서울 해바라기센터, 한국성폭력위기센터, 한국여성인권진흥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