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봤더니] 부자동네 성북동?…“기생충 반지하 집이 더 좋죠”

성북1구역 노후 주택 밀집지역 '슬럼화'
20년 가까이 지속된 재개발 '희망고문'
공공재개발에 마지막 기대거는 주민들

기사승인 2020-12-02 06:2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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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봤더니] 부자동네 성북동?…“기생충 반지하 집이 더 좋죠”
▲공공재개발 후보지인 성북1구역의 노후 주택 밀집 지역 /사진=조계원 기자 

[쿠키뉴스] 조계원 기자 =부자 동네로 알려진 성북동에는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반지하 집 보다 더 낙후된 집들이 모여 있는 지역이 있다. 정부의 공공재개발에 참여를 신청한 성북1동 179-68번지 일대 성북1구역이다. 빌라들에 가려진 성북1구역 뒤편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연탄이나 기름 배달을 걱정하고, 소방차가 들어올 수 없는 골목에서 화재를 걱정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 공공재건축 후보지 성북1구역 노후 지역 비좁은 골목길, 차량 진입이 불가능한 원인이다.

“마을버스도 없고, 손자·손녀도 무서워 안와요”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출발해 성북1구역 빌라들 사이 언덕길을 도보로 20분쯤 걸어 올라가면 성북동 일대가 한 눈에 보이는 곳에 집들이 모여 있다. 1일 이곳에서 만난 70대 주민 서모씨는 “이 곳에서 17년을 집사람과 같이 살고 있다”며 “서울에 올라오는 손자 손녀들에게 여기서 지내라고 하면 동네가 무섭고 걸어 다니기 어려워 싫어한다”고 한 숨을 내쉬었다.

실제 이곳은 굽이굽이 골목길에 현재는 빈집이 수두룩하다. 특히 차량의 진입이 불가능해 마을버스도 없는 만큼 라면이라도 하나 사려면 언덕길을 40분은 왕복해야 한다. 화재를 진압할 소방차 진입도 불가능해 궁여지책으로 소방서에서 골목 곳곳에 비치해 놓은 소화기를 볼 수 있다. 

비나 눈이 많이 와도 고민이다. 서모씨는 “젊었을 때는 걸어 다녔는데 이제는 비나 눈이 많이 오면 못 나간다”며 “근처에 가계도 없고 도시가스도 안 들어오고, 비어있는 집도 많아 귀신마을이 돼가고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골목길을 지나갈 때 갑자기 머리위에서 떨어지는 벽돌이나 기와에 대한 걱정도 컸다. 

또다른 50대 여성 주민은 물난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는 “산이 있어 흘러내리는 물에 빌라도 물난리를 겪는다”며 “요새 지은 빌라는 끄떡없겠지만 20년전에 지은 빌라는 막 지어서 방수가 안 된다”고 전했다. 이어 “정화조가 집 내부에 있어 물난리가 나면 오물이 집 내부로 넘치는 곳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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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기와가 떨어지려는 주택 모습, 기름 보일러, 소방차 진입이 어려워 골목에 설치된 소화기, 외벽이 허물어지는 주택.  

“20년간 외친 재개발 요청, 침묵한 정부”

이 곳 주민들이 마을이 황폐화될 정도로 낙후되는 동안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주민들은 차량의 접근이 어려워 집을 새로 짓기 불가능한 만큼 정부에 재개발을 꾸준히 요청해 왔다. 하지만 정부는 20년이 다 되도록 재개발을 허용하지 않았다.

성북1구역의 재개발은 2001년 시작돼 2004년 추진위원회가 설립되면서 본격화됐다. 한 때 재개발이 급물살을 타기도 했지만 2011년 박원순 전 시장이 취임하면서 사실상 중단됐다. 일부 주민들은 서울시의 재개발 반대가 박 전 시장의 도시재생 정책과 서울성곽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욕심 때문이라는 발언도 내놓았다. 

성북동에서 30~40대를 보냈다는 한 주민은 “서울시가 서울성곽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주변 경관을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서울성곽이 없는 성북1구역도 재개발이 어려워 졌다”며 “박 전 시장의 도시재생과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가 재개발의 걸림돌로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는 사이 2015년 일대 지역에 대한 건축행위 제한이 해제됐다. 이후 분양권을 노린 투자자들이 몰려들면서 지하철역 인근부터 신축 빌라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 이제는 재개발 요건인 노후도가 하락해 재개발을 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이날 만난 주민들은 신축 빌라가 계속해서 들어서 재개발이 무산될 경우 말 그대로 서울 한 복판에 귀신동네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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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1구역 대로변에서 한 블럭만 더 들어가도 좁은 골목길과 노후화된 주택들이 등장한다. 

“마지막 희망, 공공재개발에 기대 거는 주민들”

성북1구역 주민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재개발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임대아파트에 대한 거부감도 크지 않다. 동네를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 보자는 열망이 더 크다. 또한 공공재개발의 경우 용적률을 종전 182%에서 230%선까지 올려주는 만큼 신축 빌라 증가에 따른 사업수익성 악화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열망은 공공재개발 신청을 위한 주민동의율에 잘 드러나고 있다. 성북1구역은 이번 공공재개발 후보지 공모에서 70여 곳의 신청 지역 가운데 주민동의율이 76%로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이는 건설사들의 지원을 받아 투입되는 OS요원들 없이 지역 주민들이 직접 이뤄낸 동의율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앞서 성북동에서 30~40대를 보냈다고 밝힌 한 주민은 “지난 20년 동안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계속 낙후되고, 다른 지역은 개발되면서 편의시설이 더 좋아지는 것을 볼 때 정부시책에 대한 배신감이 들 때도 있었다”며 “20년간 방치된 이곳 주민들은 이번 공공재개발을 마지막 기회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공공재개발에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많이들 참여했다”며 “특히 그동안 재개발에 호의적이지 않던 이곳에서 나고 자란 어르신들도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재개발 추진에 많이들 동의해 주셨다”거 덧붙였다.

20년이 되도록 진행된 성북1구역의 재개발 운명은 내년 3월경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성북1구역의 공공재개발 추진 가능성이 비중 있게 거론되고 있지만 신청 지역이 많고 정부가 다각적인 검토를 통해 최종 대상지를 선정하겠다고 밝힌 만큼 장담할 수는 없는 상태다. 20년 가까이 흘러온 재개발의 결말이 어떻게 나올지 이목이 집중된다.

chokw@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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