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에서 석 달 살기] 고창읍성 뒤 돌아 보기

전혜선 / 기사승인 : 2020-12-05 0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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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읍성 뒤 돌아 보기

노동저수지는 1950년대에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축조되었다. 매월정 건너편에 보이는 고창읍성 성벽 아래의 자연마당은 2020년 4월 준공되었는데 습지, 유아놀이터, 숲체험원, 야외학습장, 탐방로 작은 수목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12월 현재 자연마당에서 건너편의 매월정까지 부교가 설치되고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고창에 와서 걸었던 길 중 조용히 가슴이 충만했던 곳이 있다. 고창읍성 뒷길이다. 이곳의 남쪽 골짜기 끝에서부터 솟은 물이 실개천이 되고 다시 모인 곳이 노동저수지다. 고창읍성 뒷길 걷기는 노동저수지에서부터 시작된다.

매월정은 약 100여년 전에 지었으며 1950년대 중반 노동저수지공사가 마무리된 후 수해를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방을 설치하지 않은 마루형식의 정자인데 마루에서 바라보는 노동저수지의풍경과 주위의 솔숲이 특히 아름답다. 최근 진입로 주변에 주차장을 설치하는 등 주변 환경을 정비하고 있다. 고종 때 예조판서와 이조판서에 올랐던 석촌(石村) 윤용구(尹用求)가 쓴 梅月亭 (매월정) 현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매월정 현판은 고종 때 이조판서와 예조판서에 올랐던 석촌 윤용구의 글씨다. 석촌은 만년에 일제의 작위와 관직 등을 일체 거절하고 은거했다.

고창읍성의 남쪽, 그러니까, 정문인 북쪽의 공북루 반대편 성벽 너머에 고창 자연마당이 조성되어 있다. 이 자연마당은 아이들과 함께 오든 홀로 오든 누구나 와서 걷거나 앉아 한가롭고 편안한 시간을 즐길 수 있도록 조성된 자연공원이다. 여기서 바라보는 노동저수지 주변 풍경이 즐겁다. 최근 이 자연마당에서 노동저수지 건너편의 소박한 정자인 매월정까지 부교를 설치하고 있어 곧 물 위를 걷는 즐거움이 추가될 듯하다.

매월정은 노동저수지 동쪽에서 저수지 안쪽으로 돌출된 작은 숲에 앉아 있는데 특히 주변 솔숲의 아름다움이 고창읍성 안의 솔숲과 견줄만하다.

매월정에서 남쪽으로 700미터쯤 노동저수지 상류로 향해 가면 저수지 가까이에 느티나무 고목의 소담스러운 작은 숲이 보이는데 이 속에 취석정 (醉石亭)이 자리 잡고 있다. 멀리서 보면 작은 숲이지만 가까이 가면 정자 울타리 주변의 씩씩한 나무 여남은 그루가 만들어내고 있는 멋진 풍경이다.

매월정에서 남쪽으로 700m쯤 거리에 느티나무 고목에 둘러싸인 취석정이 있다. 무릉도원을 노래했던 시인 도연명이 술에 취하면 누웠던 돌을 취석이라 불렀는데, 술에 취해 취석 위에 누우면 신선조차 부럽지 않으니 세상에서의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따르고자 하는 의미를 담은 이름이다.
취석정은 노계(蘆溪) 김경희(金景熹 1515 ~ 1575)가 명종 1년(1546)가 건립한 정자다. 1545년에 있었던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게 되자 낙향해 이곳에 정자를 마련하고 학문을 논하며 후진을 양성했다.

취석정은 노계(蘆溪) 김경희(金景熹 1515 ~ 1575)가 명종 1년(1546)가 건립한 정자다. 1545년에 있었던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게 되자 낙향해 이곳에서 학문을 논하며 후진을 양성했다.

취석정의 특징은 그 주변에 고인돌이 여럿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울타리 안에 있는 고인돌 한곳에 醉石亭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그 오른쪽과 아래에 작은 글씨로 ‘蘆溪金先生遺阯 先生手筆 (노계김선생유지 선생수필)이 희미하다. 이곳이 노계 김 선생의 터였고 醉石亭 석 자는 노계 선생이 직접 썼다는 뜻이다. 

무릉도원을 노래했던 시인 도연명이 술에 취하면 바위 위에 누워 자곤 해서 파인 흔적이 남게 되었다는 이 바위를 ‘연명취석(淵明醉石)’이라 했는데 이를 줄여 취석(醉石)이라 불렀다고 한다. 술에 취해 취석 위에 누우면 신선을 부러워할 필요 없으니 욕심 없는 한가로운 삶을 의미하는 이름이라고 한다. 

고창읍성 뒤의 계곡을 남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다가 그 끝이 가까운 곳 서쪽 야산 기슭에 판소리 명창 김소희의 묘소가 있다. 고창에서 태어난 김소희는 춘향가, 흥보가, 심청가를 장기로 삼았다. 천부적인 목소리를 가졌다고 하며 그의 창법은 섬세하면서도 지나친 기교를 멀리한다. 묘소 옆에 세워진 돌북엔 제자들과 이들의 제자들 이름이 빼곡하다. 작은 정자는 이곳을 찾는 이들이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도록 제자 중의 한 사람이 기증했다.

정자의 울타리 안과 밖에 큼직한 바위가 여럿 자리 잡고 있어 정자 주인도 세상에 대한 욕심 내려놓은 도연명의 삶을 닮고자 취석정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근래에 고인돌로 판명이 나긴 했지만, 정자를 세울 당시엔 그저 가끔 술기운이라도 오르면 호기롭게 누울 수 있는 운치 있는 바위였을 것이다. 이 바위 중 하나에 醉石亭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그 오른쪽과 아래에 작은 글씨로 ‘蘆溪金先生遺阯 先生手筆 (노계김선생유지 선생수필)이 희미하다. 이곳이 노계 김 선생의 터였고 바위면의 醉石亭 석 자는 노계 선생이 직접 썼다는 뜻이겠다. 

고창읍성까지 북쪽으로 흘러내린 긴 골짜기를 남쪽으로 거슬러 올라 언덕 위에 서서 보면 그 너머에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작은 평지가 보이고 그 동쪽 기슭에 잘 지은 기와집이 ’김기서강학당‘이다.

취석정에서 나와 마을 안길로 접어들었다. 남쪽의 산자락 끝에서부터 북쪽의 고창읍성 근처까지 이어지는 4km가 채 되지 않는 얕은 골짜기 양편에 드문드문 집이 있다. 마을 앞을 흐르던 개천은 그 옆으로 자동차도로가 생기는 등 이런저런 이유로 잘 정비되어 옛날 굽이굽이 흐르던 모습을 잃었지만, 여전히 맑은 물을 노동저수지로 보내고 있었다. 취석정 근처를 벗어나면 집이 띄엄띄엄 보이며 산과 숲이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이 길을 계속 걸어 올라가 남쪽 끝의 언덕을 넘어가면 축령산 자락의 문수사까지 이어진다. 

김기서강학당의 솟을대문을 보면 전통적 사대부의 가옥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들어가면 집의 구조가 일반적인 양반 가옥과는 다르다. 김기서강학당의 대문 안 건물배치는 전형적인 양반가옥의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대문을 들어서서 마주하는 건물이 지나치게 가까울 뿐 아니라 반대편으로 돌아앉아 있어 일반적인 가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언덕에 오르기 전 작은 저수지를 지나면서 오른쪽 야트막한 산줄기의 양지바른 곳에 꽤 큰 묘지가 보인다. 국창 만정 김소희 (晩汀 金素姬)묘소 가는 길이라는 표지판을 따라 묘지 앞에 서니 왼쪽에 이름 석 자 새겨 넣은 비석이 눈에 거슬린다. 돌북에 그의 제자들 이름과 그 제자들의 제자들 이름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더러 눈에 익은 이름도 있다. 묘소 가장자리에 사포정 (沙浦亭) 정자가 하나 서 있다. 묘소를 찾는 이들이 잠시 쉬어가도록 후학 중 한 사람이 세웠다는 현판이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돌아앉은 건물을 만나는데 학생수업이 이루어지던 강학당이다. 

묘소에서 돌아 나와 긴 골짜기를 가로막고 있는 언덕 위에 서서 보니 그 아래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손바닥만한 땅이 보인다. 동쪽의 양지바른 언덕 가운데쯤 잘 지은 기와집이 보인다. 언젠가 문수사에 다녀오며 길가의 안내 표지판에서 보았던 ’김기서강학당‘이다. 

강학당은 그 앞의 마당보다 낮게 앉아 있고 마당 맞은편에 기단을 높여 세운 건물은 돈목재(敦睦齋) 김기서(金麒瑞) 선생이 머물던 곳이다. 이 건물 뒤쪽에 사당이 배치되어 있다.

돈목재(敦睦齋) 김기서(金麒瑞)는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이었다. 유교적 이상 정치를 구현하고자 급진적 개혁을 시도하던 정암이 중종 14년(1519) 죽임을 당하고 그 살육의 광풍 속에서 수많은 신진 사림들과 함께 김기서도 설 자리를 잃었다. 이후 김기서는 이곳에 와 은거하며 강학당을 짓고 후학을 양성했다. 27년 후에는 그의 아들 김경희가 취석정을 지었다.

김기서강학당에서 돌아 나와 다시 언덕 위에 서면 운동기구들이 설치된 전불길 입구가 보인다. 이곳에서 고창읍성까지 약 4km의 숲속 오솔길이 이어진다. 길을 더듬어 찾을 필요 없이 그저 좌우의 숲과 머리 위의 나무 그늘을 즐기며 걷기만 하면 되는 길이다.

김기서강학당을 돌아보고 다시 올라오면 걷기가 행복한 오솔길이 기다리고 있다. 오래전부터 있었던 야산 능선길인데 시작부터 끝까지 길 양쪽의 나무들이 가지를 뻗어 하늘을 덮고 있다. 길엔 야자매트를 깔아 걷기에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바람 소리 속에 새 소리가 섞여 다가오니 함께 걸으며 굳이 말하지 않으려 한다. 이 길 끝은 고창읍성 뒤 자연마당이다. 걷고 나면 짙은 여운이 남는 길이다.

전불길은 경사가 평지와 다름없이 완만할 뿐 아니라 야자매트, 휴식시설, 화장실까지 갖추고 있어서 아무런 부담감 없이 숲속을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오근식은 1958년에 태어났다.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청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직해 근무하던 중 27살에 대학에 진학했다. 졸업 후 두 곳의 영어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인제대학교 백병원 비서실장과 홍보실장, 건국대학교병원 홍보팀장을 지내고 2019년 2월 정년퇴직했다. 2019년 7월부터 1년 동안 제주여행을 하며 아내와 함께 800km를 걷고 돌아왔다. 9월부터 고창군과 공무원연금공단에서 마련한 은퇴자공동체마을에 입주해 3달 일정으로 고창을 여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