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프레스] 슬프도록 시린 첫 눈

재판부의 강력한 판결로 제2, 제3의 정인이 막아야

기사승인 2021-01-15 17: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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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프레스] 슬프도록 시린 첫 눈
[쿠키뉴스 유니프레스] 정예은 국민대신문 편집장 = 나에게 첫 눈은 유독 시리다. 사랑하는 이와 첫 눈을 맞으면 오래간다는 속설에 배신당한 기억 때문에 첫눈이 올 때면 늘 아픈 기억에 괴로워하곤 한다. 이번 겨울도 역시 그렇겠거니 했는데 올해는 그 기억이 생각날 틈조차 없이 매섭고 차가운 첫 눈이 왔다. 

2021년 새 해 첫 눈이 오던 날, 정인이를 처음 알게 됐다. 햇살이 쨍쨍한 여름에 태어난 정인이는 고작 492일을 살다 갔다. 위탁모 손에 자라다 새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에 입양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 하얗고 포동포동하던 정인이의 몸은 까맣게 말라갔다. 밥을 잘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심하게 떼를 쓴다는 이유로 정인이의 몸에 붉은색과 검은색의 멍이 새겨졌다. 

정인이를 도우려던 손길들은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무관심 속에 묻혔다. 각각 다른 신고자에게서 접수된 세 차례의 아동학대 의심 신고는 정황을 포착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무시됐다. 정인이를 구할 수 있었던 기회를 모두 놓쳐버린 가을, 정인이는 땅에 묻혔다. 그리고 겨울이 됐다. 새하얀 눈이 내리던 그 날, 271일의 진실을 전한 방송 덕에 세상은 첫 눈 소식 대신 정인이에 대한 미안함으로 가득 채워졌다. 

세상을 가득채운 미안함은 눈이 되어 내렸다. 1월 6일, 대설주의보가 내려질 만큼 눈이 많이 오던 날, 사건을 방관한 이들이 사과했다. 경찰청장도, 아동보호전문기관도, 홀트도 모두 사과했지만 그 사과의 대가를 치르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서로 에게 책임을 떠넘겼고 홀트는 입양 절차상의 문제는 없었다며 발 빼기에 급급했다. 

형식적인 사과만 남발하는 책임자들에 분노한 시민들이 움직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린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 정인이들을 대신해 엄벌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보내고 정인이를 애도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세상은 사과와 애도만으로는 바뀌지 않는다. 재판부의 강력한 판결만이 제2, 제3의 정인이 사건을 막을 수 있다. 검찰은 양모를 살인죄로 기소했다. 이제 재판부가 나서야 한다. 정인이를 대신해 가해자를 엄벌하고 수많은 정인이들의 ‘첫 눈’은 따뜻할 수 있게 지켜줘야 한다. 

지난 밤 내린 눈이 정인이 나무를 감싸고 있다. 눈이 쌓일수록 땅속 온도는 높아진다고 한다. 눈이 쌓인 땅 속에서라도 차가운 세상을 살다 간 정인이가 따뜻하길 바란다. 나에겐 시렸던 첫 눈이 정인이에겐 포근했길 바라며 참담한 심정으로 아직 빌지 않은 새해 소원을 빌어본다. 차가운 세상에 살다 눈 속에서나 위로 받는 아이들이 더는 없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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