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보다 담배가 우선?"...야외 흡연부스, 코로나 사각지대 우려

흡연 시 면역 억제로 감염에 더 취약
원주시 누적 확진자 중 '깜깜이' 확진자 10% 차지

입력 2021-01-22 14: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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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강원 원주시 단계택지 시외버스터미널 야외 흡연부스.

[원주=쿠키뉴스] 박하림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식당 내 5인 이상 모임이 금지될 정도로 방역수칙이 강화됐다. 그러나 정작 흡연부스에 대한 구체적인 방역지침이 없어 방역 사각지대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20일 오후 방문한 강원 원주시 단계택지 시외버스터미널 야외 흡연부스.

5평 남짓의 야외 흡연부스 안에는 3~5명이 명의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마스크를 벗은 채 담소를 나누면서 담배 연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흡연부스의 바닥 일부는 몇몇 이용객들이 뱉은 가래침과 버려진 꽁초로 범벅이 된 상태였다.

이곳은 원주시가 직접 운영하는 관내 유일한 흡연구역이다. 흡연부스는 인도와 구분 짓는 벽만 설치됐을 뿐 앞뒤와 천장은 뚫려 있어 담배연기가 그대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보행자들은 연신 손부채질을 하고 담배 연기를 맡으며 길을 지나가기도 했다.

앞서 정부는 코로나19 3차 대유행으로 5인 이상 집합금지와 오후 9시 이후 모든 음식점 실내 영업 중단 등 방역수칙을 강화했지만, 흡연부스에 대해서는 실내흡연부스 이용을 자제하고 실외 흡연부스 이용을 권고하는 데 그치고 있다. 

정작 흡연부스 이용 시 거리두기나 이용 인원을 제한하는 등의 지침은 마련되지 않아 ‘방역 사각지대’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0일 강원 원주시 단계택지 시외버스터미널 야외 흡연부스.

흡연자는 코로나19 환자 중 고위험군에 해당한다.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병원서 격리 치료를 받도록 규정됐다. 이들의 바이러스 감염, 증상 악화 위험이 크다는 연구 결과들이 이어져서다. 

중국의학저널(Chinese Medical Journal)에 따르면 흡연한 적 있는 코로나19 환자의 폐렴 악화 위험이 14배로 뛴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중국 코로나19 환자 1099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흡연자가 심각한 감염 증상을 보일 가능성은 비흡연자보다 1.4배 더 높았다. 중증 치료를 받거나 사망할 확률은 2.4배 더 높았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바이러스와 담배라는 '최악의 조합'을 경고하는 연구가 속속 나오는 것이다.
 
실제로 흡연자는 호흡기 감염병이 유행할 때마다 가장 위험한 대상으로 꼽혀왔다. 2015년 국내에서 유행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도 현재 흡연자이거나 과거 담배를 피운 적 있는 메르스 환자는 비흡연 환자와 비교했을 때 치명률이 2.6배 높았다.

2009년 발생한 신종플루 당시에도 흡연자의 감염 비율이 1.5배 높고, 중증으로 진행될 위험도 2배 가까이 차이 난다는 이스라엘 분석결과가 공개됐다. 
 
리원연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흡연 행위는 손가락 및 오염된 담배와 입술이 접촉하기에 손에서 입으로 바이러스가 전염될 가능성을 증가시키므로 코로나19에 더 취약할 수 있다”며 “시가, 액상 전자담배 등 담배의 종류에 관계없이 흡연은 감염에 대한 신체반응과 면역을 억제해 감염의 가능성을 증가 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감염 시 폐렴으로 악화되는 걸 막으려면 손 위생, 마스크 착용, 만성질환 관리와 더불어 금연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흡연부스는 밀폐된 공간이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무증상 확진자들이 흡연부스를 이용하면 주변 사람들이 감염될 가능성이 크다. 

시민 윤모씨(32)는 “비흡연자들뿐만 아니라 흡연자들끼리도 코로나 감염에 노출될 확률이 상당히 높을 것 같다”면서 “서로의 안전을 위해 가급적 거리두기 등 방역수칙을 준수하면서 흡연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지적했다.

원주시 관계자는 “야외 흡연부스는 흡연자들을 한곳으로 모이게 해 비흡연자들에게 2차 피해를 방지하는 게 원래 목적”이라면서 “만약 야외 흡연부스를 폐쇄하게 되면 오히려 인도에서 담배를 태우는 흡연자들로 인해 비흡연자에게 엄청난 피해를 안겨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야외흡연부스 내부에 가벽을 세워 흡연자들 사이에서도 방역수칙을 지켜야 하지 않겠냐는 기자의 질문엔 “흡연부스에 1인1실을 조성하게 되면 소방법상 두 시간씩 환기시키고 소독 후 다시 개방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사실상 현 행정력으로 볼 땐 불가능에 가깝다”고 답했다. 

이어 “보건소는 긴급출동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 행정처분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기에 현장 단속에 대한 애로점이 상시 있어 힘들다”고 호소했다. 

한편 22일 오전 10시를 기준으로 원주지역 누적 확진자 439명 중 감염경로가 불분명한 ‘깜깜이’ 확진자의 비율은 10.47%(46명)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20일 강원 원주시 단계택지 시외버스터미널 야외 흡연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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