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읽기] 우리는 지금도 '삼국지'의 시대에 살고 있다

기사승인 2021-06-08 06: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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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읽기] 우리는 지금도 '삼국지'의 시대에 살고 있다
사진=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전략 삼국지’ 일러스트.

[쿠키뉴스] 강한결 기자 = 기자는 삼국지를 매우 좋아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일본 만화가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전략 삼국지’를 처음 본 후 삼국지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죠. 이 작품은 수많은 명장면을 만들어내기도 했는데요. 다섯 개의 관문을 지나며 6명의 장수를 쓰려뜨린 관우의 ‘오관육참장’은 커뮤니티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만화 삼국지의 정수로 평가받는 ‘전략 삼국지’는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됐는데요. 국내의 경우 1993년 KBS 2TV에서 풀 더빙으로 방송되기도 했습니다. ‘유비, 관우, 장비 아아아~’로 시작되는 오프닝 곡을 기억하고 있는 독자들도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삼국지는 2세기 말~3세기 초 후한(漢) 말기와 삼국시대 역사를 다룬 작품입니다. 정확히 구분하자면 삼국지는 서진의 저술가 진수가 쓴 역사서 ‘삼국지’와 이를 바탕으로 원 말~명 초의 소설가 나관중이 집필한 ‘삼국지연의’로 나뉩니다.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역사서 삼국지를 ‘정사’, 삼국지연의를 ‘연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번 자리에선 삼국지연의를 편의상 삼국지로 지칭하겠습니다.

14세기 집필된 삼국지는 현재까지도 꾸준하게 번역본이 출시되고 있습니다. 국내의 경우 ‘이문열 평역 삼국지’, ‘황석영 삼국지’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죠. 원문에 충실한 삼국지를 보고 싶다면 황석영 작가, 상황에 맞는 해설이 필요하다면 이문열 작가를 추천합니다. 만약 현대적인 관점에서 해석한 삼국지를 보고 싶다면 방송인 전유성의 ‘구라 삼국지’를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게임읽기] 우리는 지금도 '삼국지'의 시대에 살고 있다
사진= 사마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중국 드라마 '사마의 : 최후의 승자'.

삼국지는 한중일 동북아시아 삼국의 문화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삼고초려’, ‘읍참마속’, ‘도원결의’, ‘출사표‘ 등 무수한 고사성어가 삼국지로부터 유래됐는데요. 생각해보면 기자 역시 기사를 쓸 때 이러한 표현을 심심찮게 쓰고 있습니다.

삼국지의 파급력은 고사성어를 넘어 인터넷 밈(Meme)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소극적이고 위축됐지만 온라인에서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사람을 가리켜 ‘방구석 여포’라고 칭한다거나, 프로 스포츠에서 지장이라고 평가받는 감독에게는 제갈량의 이름을 따 ‘X갈량’, ‘제갈XX'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이처럼 삼국지는 단순한 문학작품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문화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지금도 삼국지를 소재로 한 만화, 영화,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미디어믹스(한 미디어를 통해 유통된 상품이 인기를 얻어 영화, 애니메이션, 소설 등 다른 미디어로 파생상품이 나오는 것)물이 제작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게임은 어떨까요? 잠깐만 생각해도 삼국지를 소재로 한 작품은 정말 무궁무진할 정도로 많습니다. 일본 게임사 코에이의 전략시뮬레이션 ‘삼국지’ 시리즈, 무쌍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진삼국무쌍’ 시리즈, 2019년 출시된 ‘토탈 워: 삼국’까지 수많은 명작 삼국지 게임이 출시됐죠.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는 아직도 회자되는 명작게임입니다. 1985년 첫 번째 작품을 시작으로 지난해 14번째 타이틀이 출시됐는데요. 역사와 소설을 적절하게 버무려 연의에는 나오지 않지만 정사에는 등장하는 인물들이 많아졌고, 연의에서 저평가 받던 인물을 재조명하는 사례도 있어 호평을 받았죠. 물론 12부터는 변화가 줄어 ‘또국지’라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삼국지의 영향력은 더욱 강력하게 드러나는데요, ‘그랑삼국’, ‘찐삼국’, ‘AFK 삼국지’ 등 삼국지를 소재로 삼은 게임이 수두룩합니다.

최근에는 중국의 쿠가 게임즈에서 출시한 모바일 게임 ‘삼국지 전략판’도 흥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2월 서비스를 시작한 이 게임은 현재까지도 꾸준히 구글 플레이스토어 매출 상위권을 유지중입니다. 삼국지 전략판을 열심히 하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이전에 코에이 삼국지를 하던 기억이 나서 재밌게 하고 있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게임업계에서 삼국지는 일종의 ‘마법의 조미료’로 통합니다. 어떠한 장르의 작품을 만들더라도 삼국지라는 보장된 조미료를 넣으면 일정 수준이상의 작품이 나온다는 것이죠.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요리를 못하는 사람이라도 MSG를 넣으면 맛이 나는 것처럼, 삼국지 베이스 게임은 일정 수준의 흥행이 보장된다”며 “원전 자체가 탄탄해서 특별하게 건들 부분이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내러티브적 관점에서 삼국지는 흠잡을 부분이 없는 작품입니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이들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은 하나의 큰 서사를 형성합니다. 물론 후반부에는 촉의 유비·위의 조조 관련 분량이 다른 세력에 비해 많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물·세력 간의 균형이 어느정도 잘 맞춰진 셈입니다. 

이같은 삼국지의 특성은 게임에서 매우 큰 강점으로 작용합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다양한 등장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울 수 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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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코에이 '삼국지 조조전' 조홍의 시그니처 대사.
 
삼국지 명가 코에이의 출시작에는 영걸전 시리즈가 있습니다. 이 게임은 자사의 삼국지 시리즈 스핀오프이자 턴제 역사 SRPG(턴제 전략 시뮬레이션 롤플레잉 게임) 시리즈입니다. 유비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걸전, 제갈량 중심의 공명전, 조조가 주인공인 조조전 등이 대표적인 작품인데요. 원작 삼국지 시리즈와 달리 주인공 한 명이 내러티브에 집중해 게임이 진행됩니다. 특히 기존의 역사를 재해석해 새로운 시나리오를 만들어냈다는 것도 매력적입니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 주목받지 못했던 장억(영걸전), 조홍(조조전) 등의 인물들이 재조명받기도 했는데요. 조홍의 경우 “좌절감이 사나이를 키우는 것이다”라는 대사 하나로 게이머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습니다. 이후 유저들은 조조전을 기반으로 '관우전', '여포전' 등 다양한 모드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여타 IP(지적재산권)와 비교해도 대중적 친숙도가 높다는 것도 삼국지의 강점입니다. 한국에는 “삼국지를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과는 친구를 맺지도 말고, 삼국지를 세 번 이상 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그만큼 한국인들에게 삼국지는 친근한 소재입니다.

한 인디게임 개발자는 "이전에 삼국지 내용을 기반으로 게임을 만든 적이 있는데, 생각보다 많은 게이머가 다운로드 받았다"며 "이전에도 몇몇 작품을 만들었지만, 확실히 제목에 삼국지가 들어가니 '한 번 가볍게 해볼까'라고 생각하는 유저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개발자는 "하루에도 수많은 게임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한 번이라도 눈길을 끌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큰 장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게임읽기] 우리는 지금도 '삼국지'의 시대에 살고 있다
사진=코에이 삼국지14.

실제로 현재 삼국지 IP를 기반으로 서비스 중인 모바일 게임은 100여 종이 넘습니다. 일각에서는 이제는 삼국지 IP가 과포화 상태로 들어섰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만, 이처럼 진입장벽이 낮고 마니아층이 탄탄한 IP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기에 삼국지의 영향력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실 삼국지의 주 무대인 위촉오 삼국시대는 중국 역사 전체에서 보면 매우 비중이 적은 시기입니다. 하지만 이 시기의 인물들은 그 어떤 시대의 인물보다 널리 알려진 유명 인사가 됐죠. 우리가 삼국지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천하를 쟁패하기 위한 영웅호걸들의 낭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문명6’와 ‘크루세이더 킹즈3’를 플레이하며 주말 새벽을 지세웠는데, 이번 주말에는 오랜만에 코에이 삼국지를 키고 유비로 삼국통일을 해봐야 겠습니다.

sh04khk@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