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지더라도 저 자리는…” 벌칙 좌석을 아십니까

기사승인 2021-07-14 06:2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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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지더라도 저 자리는…” 벌칙 좌석을 아십니까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지쳐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저 좌석만은 못 앉겠다”, “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 설계지”

역방향으로 배치된 시내버스 앞좌석이 ‘벌칙 좌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버스 앞좌석은 바퀴 위에 위치해 다른 좌석보다 높이가 높다. 벌칙 좌석은 버스 운전기사를 바라보고 있는 일반적인 앞좌석을 뒤로 돌려놓은 모습이다. 앉으면 다른 탑승객 얼굴을 마주한 채 높은 곳에서 내려보는 구도가 된다. 여기서 벌칙 좌석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좌석에 앉는 게 벌칙을 수행하는 것만큼이나 곤욕스럽다는 의미다. 

온라인상에는 “저 자리 앉으면 노래 한 곡이라도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부터 “한번 앉아봤는데 내내 다른 승객과 눈이 마주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는 경험담이 올라왔다. 치마 입은 여자 승객이 앉으면 불편할 것 같다는 의견도 나왔다.   

“쓰러지더라도 저 자리는…” 벌칙 좌석을 아십니까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벌칙 좌석 앉아보니…다른 승객 시선에 절로 숙여지는 고개

13일 오후 직접 시내버스에 탑승해 벌칙 좌석에 앉아봤다. 인천 검단~서울 영등포를 오가는 김포운수 60번 버스다. 오후 1시쯤 강서구에서 올라탄 60번 버스에는 이미 승객 5명이 앉아있었다. 60번 버스의 경우 앞좌석이 운전기사 뒤편에 2개씩 등을 맞댄 4개, 버스 탑승문 쪽에 2개 총 6개다. 양쪽에 하나씩 있는 것보다 민망함이 덜할 것 같았다. 앞좌석은 모두 비어있었다. 이 중 버스 운전기사 뒤편 창가 좌석에 앉았다. 

오산이었다. 벌칙 좌석에 앉자 얼떨결에 얼굴을 마주 보게 된 2명의 승객은 당황한 눈빛으로 기자를 쳐다봤다. ‘왜 굳이 이 자리에?’라고 말하는 듯했다. 고개만 들면 버스 안 모든 승객과 눈이 마주쳤다. 출퇴근 시간대에는 서 있는 승객과 비슷한 얼굴 높이로 앉아있을 생각을 하니 식은땀이 절로 났다. 

창밖을 보니 거꾸로 가는 풍경에 멀미가 났다. 결국 시선은 줄곧 휴대전화에 박혔다. 이날 버스에 탑승한 시간은 30분 내외. 장시간 이동할 경우 어지러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러지더라도 저 자리는…” 벌칙 좌석을 아십니까
13일 탑승한 한 시내버스에 앞좌석이 역방향으로 배치돼있다. 정진용 기자

업체에 직접 물어보니…“노약자 탑승 용이·운전자 승객과 눈 덜 마주쳐”

역방향 앞좌석은 저상 전기버스에서 볼 수 있다. 저상 전기버스는 내연기관 자동차와 비교해 높은 에너지 효율, 환경오염 방지 등 전기자동차 장점과 차체 바닥이 낮아 장애인·노약자가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저상버스의 장점을 결합했다.

저상 전기버스 중에서도 중국산일 확률이 높다. 중국 업체의 국내 전기버스 시장점유율은 증가 추세다. 지난해 중국산 전기버스의 시장점유율은 28%로 지난 2019년보다 5%p 늘었다. 국가보조금 자격을 획득한 17개 전기버스 브랜드 가운데 3개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중국 기업이다. 운송업체에서 중국 버스를 선호하는 이유는 저렴한 가격 때문이다. 48인승 이상 전기버스 생산 원가는 국산 3억원대, 중국산 1억7000만원대 수준이다. 

앞좌석을 역방향으로 배치한 이유는 뭘까. 중국산 전기버스 수입 업체 관계자는 승객과 운전자를 고려한 설계라는 입장이다. 관계자는 “역방향 좌석은 노약자가 편하게 탈 수 있고 좌석 뒤쪽에 입석 승객 짐을 놔둘 수도 있다”며 “운전자 관점에서는 바로 뒷좌석 승객과 눈이 덜 마주치는 장점이 있다. 주취자가 운전을 방해하는 돌발행동을 저감시키는 등 안전 확보 효과도 있다”고 했다. 유럽 국가 등 다른 나라에서는 역방향 좌석이 흔하다고도 덧붙였다. 

“쓰러지더라도 저 자리는…” 벌칙 좌석을 아십니까
탑승한 버스 내부 구조. 정진용 기자

안전 문제 간과할 수 없어…“저렴한 가격 때문에 선택한 구조” 지적도

이날 만난 버스 운전기사는 승객 안전을 우려했다. 운전기사는 “승객이 차량 앞쪽을 보고 있어야 급정거 등 변수가 있을 때 대처할 수 있다”면서 “승객이 어지러움을 호소하거나 앉아 있다가 넘어지는 등 사고가 있다”고 말했다.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고 승객이 웬만해서는 앞좌석에 앉으려 하지 않는다”고도 부연했다.

운송업체가 승객이 역방향 좌석에 불편을 느낀다는 점을 알면서도 저렴한 가격 때문에 해당 모델을 선택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전기버스 제조업체 관계자는 “국내 기업은 국민 정서에 역방향 좌석이 맞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있어서 이런 모델을 생산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특히 차체 후방에 배터리팩을 넣는 모델이 저렴하다. 대부분의 국산 전기버스는 차체 상부에 배터리팩을 배치한다”면서 “배터리팩을 버스 뒷편에 넣으면 좌석 넣을 공간은 줄어든다. 좁은 면적에 최대한 좌석을 배치하려다 보니 앞좌석을 역방향으로 돌리고 중간에 위치한 좌석도 측면으로 돌리는 방식으로 설계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jjy4791@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