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해부대 사태, 기름 부은 ‘과자 한 박스’

기사승인 2021-07-23 12:5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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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부대 사태, 기름 부은 ‘과자 한 박스’
서욱 국방부 장관이 20일 오전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 브리핑룸에서 청해부대 34진 집단감염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국방부가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4400t급) 집단감염 사태 관련 전방위 감사에 착수했다. ‘제 식구 감싸기’가 되지 않을지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국방부 감사관실은 22일부터 내달 6일까지 청해부대와 국방부 관련 부서, 합동참모본부, 국군의무사령부, 해군본부, 해군작전사령부 등을 대상으로 전방위 감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문제가 드러난 관계자에 대해서는 강도 높은 문책이 예상된다. 코로나19 발생 초기대응 적절성, 코로나19 방역 운영, 지휘 권한을 가진 합참과 해군작전사령부 대응이 적절했는지 등을 감사할 예정이다.

전날 귀국 후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은 뒤 격리 중이던 병사가 추가 확진 판정을 받으며 청해부대 관련 누적 감염자는 271명으로 늘었다. 장병 3명이 상태 악화로 병원에 입원하며 관련 입원 환자도 17명으로 늘었다. 지난해 2월 군내 첫 확진자 발생 이후 최대 규모다.

청해부대 집단감염 사태는 안이한 판단과 대응이 빚은 총체적인 인재라는 비판이 나온다. 국방부와 합참 등에 따르면 청해부대에서 최초 감기 환자가 발생한 것은 지난 2일이었다. 이후 유사한 증상을 호소하는 장병이 급속히 늘었지만 부대 내 의료진은 이를 단순 감기로 판단하고 감기약만 처방했다. 국방위원회 소속인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청해부대 소속 장병 아버지와 통화 내용을 공개하며 “고열이 40도까지 올라가는 데도 부대에서는 ‘외부인과 접촉을 안 했으니 코로나일리가 없다”며 간부들이 호소를 묵살했다고 주장했다.

또 청해부대는 지난 5일부터 일부 유증상자를 대상으로 ‘신속항체검사키트’를 활용, 코로나19 간이검사를 실시했지만 이것 역시 문제였다. 항체검사키트는 코로나19 면역반응만 확인할 수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감별할 수 있는 항원검사 키트보다 감별 능력이 떨어진다. 국방부가 지난 1월 군에 내려보낸 공문에 따르면 청해부대와 같은 ‘장기 출발 함정’에 항원검사 키트를 활용하라는 내용이 명시돼 있었다. 그러나 합참과 해군은 지난 2월8일 출항한 문무대왕함에 항원검사가 아닌 항체검사 키트 800개를 보급했다. 확진자를 보다 빨리 파악, 피해 규모를 줄일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셈이다.
청해부대 사태, 기름 부은 ‘과자 한 박스’
20일 오후 충북의 한 생활치료센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으로 귀국한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의 장병들을 태운 버스가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합참에 유증상자 다수 발생 사실이 처음으로 보고된 것은 지난 10일이었다. 최초 감기 증상자가 발생하고 8일이나 지난 시점이다. 당시는 이미 청해부대 내 유증상자가 95명에 달한 뒤였다. 지난 13일 부대는 유증상자 중 6명의 검체를 선별해 현지국가에 PCR검사를 요청했고 14~15일간 이들 모두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 다음날인 14일부터 국방부와 합참은 통합 상황관리 TF 가동을 시작했다. 이어 15일에는 청해부대 34진 전원 복귀 추진 결정이 내려졌다.

야당에서는 서욱 국방부 장관 경질을 거론하고 있다. 서 장관은 지난 20일 청해부대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서 장관이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은 지난해 9월 취임 이후 북한 귀순자 경계실패(2월17일), 부실급식.과잉방역 논란(4월28일), 공군 성추행 부사관 사망 사건(6월9일과 10일, 7월7일) 등에 이어 여섯 번째다. 국민의힘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사과와 군 수뇌부 경질 조치가 없으면 서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안을 제출하겠다고 경고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유체이탈 화법은 이제 그만하고 정중하게 국민 앞에 나와 머리 숙여 사과하는 게 책임 있는 대통령의 도리”라며 “국방부 장관, 합참의장 등 무능한 수뇌부 문책과 경질을 즉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국방부는 서 장관 이름으로 청해부대 장병들에게 과자를 격려품으로 보내 빈축을 사고 있다. 이날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승조원 A씨는 “지난 20일 국방부 측이 보내온 위문품”이라며 고래밥, 미쯔, 아이비 등 시중에 판매되는 과자 박스를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A씨는 “목이 너무 아파서 음식 삼키는 게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미각과 후각이 없어 맛도 못 느끼는데 이런 걸 주면 뭐하나 싶어 헛웃음만 나왔다”면서 “국가가 헌신한 대가가 이건가 싶었다”고 토로했다.

jjy4791@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