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지구에 K팝은 없다” [지속가능한 K팝을 향해②]

기사승인 2021-08-07 07:00:47
- + 인쇄
“죽은 지구에 K팝은 없다” [지속가능한 K팝을 향해②]
케이팝포플래닛이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캠페인 ‘죽은 지구에 K팝은 없다’(No K-pop on a Dead Planet)를 시작했다.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이상기후가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캐나다와 미국 서부는 50도 폭염에 산이 불타고, 독일과 벨기에 등 서유럽과 중국 곳곳이 기록적인 폭우로 물에 잠겼다. 한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 5일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에 따르면 한국에서 여름철 지표면 온도가 30도 이상 올라가는 고온 지역이 9년 간 2배 이상 늘었고, 무더위가 도래하는 시점도 앞당겨졌다. 지난해엔 54일간 폭우가 쏟아지면서 곳곳에서 피해가 속출했다.

홍수·가뭄·폭염 등 초유의 기상 위기 속에서 K팝 팬덤이 한 데 뭉쳤다. 지난 3월 문을 연 ‘케이팝포플래닛’(Kpop4Planet)은 전 세계 K팝 팬들이 주도하는 기후행동 모임이다. 인도네시아 대학생 누룰 사리파가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각국 활동가들이 계정 운영에 참여한다. 이들은 음악 업계에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캠페인 ‘죽은 지구에 K팝은 없다’(No K-pop on a Dead Planet)를 지난달 24일 시작했다. ▲음반 및 굿즈 생산 시 플라스틱 사용 최소화 ▲탄소배출이 적은 방식으로 공연 기획 ▲아티스트와 기후위기를 적극 알리고 행동 ▲환경 메시지 담은 K팝 노래하기 등을 통해 환경 친화적인 K팝 문화를 만들자는 운동이다. 쿠키뉴스는 케이팝포플래닛 이다연 활동가를 서면으로 만나 기후위기 속 K팝 팬덤과 기획사, 아티스트의 역할은 무엇인지 자세히 들어봤다.

Q. 케이팝포플래닛 활동가들이 활동하는 방식이 궁금하다.

“글로벌 계정을 중심으로 전 세계 K팝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K팝 팬들이 밀집한 동남아시아와 한국을 중심으로 온라인에서 느슨하게 연대하는 방식으로 활동한다. 블랙핑크 글로벌 팬덤인 블링크 글로벌, 블링크 인도네시아, 포르투갈 스테이(그룹 스트레이 키즈 팬덤) 등 다양한 팬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아시아뿐 아니라 유럽, 남미 등 각지에서 여러 팬덤이 자발적으로 도움을 줘서 참여 인원이 계속 늘고 있다.”

Q. 케이팝포프래닛에 관심 갖고 활동에 참여한 계기는 무엇인가.

“K팝 팬덤은 흑인 인권 운동, 태국·미얀마 민주주의 운동을 지지하는 등 사회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왔다. 기후위기도 마찬가지다. 가수의 이름을 딴 숲을 조성하고, 호주 거대 산불로 인한 피해 회복에 기부하는 등 환경 보호 운동에 동참했다. 이런 사실을 널리 알리고, 나아가 K팝 팬덤과 더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들이 가진 ‘화력’(집단행동 능력)을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팬덤과 소속사가 함께 기후행동에 나서서 선한 영향력을 보여준다면, K팝 산업과 우리 사회가 더 건강해질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케이팝포플래닛 활동을 시작했다.”

“죽은 지구에 K팝은 없다” [지속가능한 K팝을 향해②]
케이팝포플래닛이 진행한 친환경 K팝 인식도 조사.
Q. 음악 산업이 어떤 방식으로 기후위기를 촉발한다고 보는가.

“얼마 전 K팝 팬 367명에게 설문한 결과, 응답자 절반 이상이 음반과 굿즈가 환경 문제와 관련 있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플라스틱 문제는 기후위기의 일부에 불과하다. 해외 투어나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사용되는 에너지 등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곳에서 많은 에너지가 사용된다. K팝은 한국을 넘어 세계에서 인기를 끄는 문화가 됐다. K팝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사랑받으려면 높아진 위상에 맞게 사회적인 책임의식을 갖고 환경 문제에 관심을 두고 행동해야 한다.”

Q.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팬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K팝 팬들은 이미 기후행동을 해오고 있고, 앞으로도 지속할 거라고 본다. 만약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케이팝포플래닛 캠페인에 동참해 달라. 케이팝포플래닛은 친환경 캠페인을 하는 팬덤을 지원하고, K팝 팬들을 위한 기후 캠페인을 기획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도네시아 최대 상거래 기업인 토코피디아에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사용 100%를 요구하는 캠페인이다. 기후 취약 지역에 사는 팬들이 어떤 일을 겪는지 관심을 기울이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보는 것 역시 기후행동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케이팝포플래닛에 캠페인 아이디어를 제안하거나 함께 기획하는 길은 늘 열려 있다.”

Q. 앞서 언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95.4%가 ‘친환경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변화해야 할 주체’로 기획사를 꼽았다. 환경 보호를 위해 K팝 기획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기획사와 아티스트들이 가진 영향력을 이용해 기후위기에 적극 목소리를 내면 좋겠다. 예를 들어 블랙핑크는 유엔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6) 홍보대사에 임명돼 기후행동을 촉구하는 영상을 공식 유튜브에 올렸다. 이 영상은 250만 뷰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는데, 기후위기 관련 영상이 이렇게 많이 시청된 경우는 그레타 툰베리의 유엔 연설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 이런 공식 영상 외에 아티스트들이 일상에서 어떻게 친환경 행동을 하는지 자주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NCT 제노가 자전거를 애용하는 모습을, RM은 업사이클링 가방을 메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이렇듯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기후행동을 보여주면 K팝 팬들도 동참할 거라고 본다.”

“죽은 지구에 K팝은 없다” [지속가능한 K팝을 향해②]
(왼쪽부터 시계방향) 업사이클링 백팩을 사용하는 RM, 자전거를 즐겨 타는 제노, 텀블러 사용을 제안하는 폴킴.
Q. K팝 아티스트가 환경 보호 운동에 동참한 사례를 소개해 달라.

“RM의 업사이클링 백팩 착용, 폴킴의 텀블러 사용, 제노의 자전거 애용 등이 있다. 또 그룹 이달의 소녀 멤버 츄는 환경 보호를 주제로 제작한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모두들 자신이 가진 영향력을 알고 이를 기후위기 해결에 사용했다는 점이 대단하다. 앞으로도 많은 아티스트들이 나서주면 좋겠다. K팝 팬덤과 아티스트들이 힘을 합치면, 기후 운동에서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Q. 활동가들이 꿈꾸는 친환경적인 미래 K팝 산업은 어떤 모습인가.

“기후위기가 가속화하면 우리가 K팝을 즐기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이다. 더욱 많은 팬들이 오랫동안 안전한 지구에서 K팝을 즐기려면 지금 함께 행동해야 한다. K팝 팬덤은 국적과 나이에 관계없이 다른 팬덤이 곤경에 처했을 때 자발적으로 서로를 돕고자 하는 성향이 강하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기후위기도 다 같이 힘을 모아서 극복해나가길 바란다. 앞으로 ‘K팝’ 하면 ‘기후행동’이라는 단어가 바로 연상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주도하고 싶다.” 

wild37@kukinews.com / 사진=케이팝포플래닛, KBS 제공. RM SNS, NCT 유튜브 캡처.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