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조대식 재판과 경영 판단의 원칙

윤은식 / 기사승인 : 2021-09-06 06: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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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윤은식 기자 =기업 경영은 잠재적으로 위험이 내재해 있다. 기업인이 뛰어난 '경영 선구안'을 지녔어도 그 예측이 빗나가 기업에 손해를 끼치는 경우가 있고, 그 반대 경우도 있는 것이 경영이다. 그래서 경영판단은 기업인이 충분한 정보를 얻고 회사에 손해를 최소화한 후 신중한 검토를 거쳐 이뤄지는 게 일반적이다. 기업 경영을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도 이 정도쯤은 충분히 알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경영자의 이런 판단을 이론적으로는 '경영판단의 원칙'이라 한다. 경영판단의 원칙은 경영자가 선의로 선량한 관리자 주의를 다하고 그 권한 내의 행위를 다했다면, 이 행위로 인해 비록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 해도 회사에 개인적인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이런 원칙에 반하는 재판이 최근 진행되고 있다.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의장 재판 건이다. 조 의장이 SKC 이사회 의장이던 2015년 4월 22일 계열사 SK텔레시스 유상증자 과정에서 부실자료를 이사회에 제공해 자금 지원을 승인받은 혐의와 SK(주)의 재무팀장겸 자율책임경영지원단장이던 2012년 SK텔레시스 유상증자에 SKC가 199억원 상당을 투자하도록 도왔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SK텔레시스는 2014년 126억원 적자를 내며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상태였고 모기업인 SKC는 2015년 700억 원대 유상증자를 결정했는데 성공적이었다. SK텔레시스는 유상증자 이듬해인 2016년 이후 4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며 기사회생했다. 결과적으로 경영자의 경영판단으로 이 계열사는 완벽히 기사회생했지만, 검찰은 유상증자로 인해 모회사가 피해를 봤다며 망해가는 회사를 살린 조 의장을 법정에 세웠다.

현행 형법상 배임죄 구성요건에서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라고 규정하는데 경영자의 경영판단은 미래에 대한 판단이어서 항상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장래의 위험까지 업무상 배임죄 영역에 포함하면 결국 모든 경영자들은 업무상 배임죄로 처벌 받아야 하는 가혹한 환경에 놓일 수밖에 없다. 손해발생 위험만으로 배임죄를 적용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는 행위며 형벌과잉이다.

"유상증자를 실시하라!" 2019년 9월 금융감독원이 쿠팡에 건넨 경고다. 당시 금감원은 전년도 1조원 이상 적자를 낸 쿠팡에 경영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유상증자를 하라고 주문했다. 유상증자를 거듭한 쿠팡은 올해 3월 미국 증시에 데뷔하며 환골탈태했다. 지난해 누적 적자 4조원이 넘는 쿠팡은 올해만 62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받았다. 

해외기업도 유상증자를 기회의 사다리로 삼고 있다. 미국의 영화관 체인 AMC는 코로나 상황에 파산직전에 몰렸으나 2조5000억원에 달하는 유상증자에 성공하며 재무건전성 확보는 물론 주가도 폭등했다. 

이 사례들 모두 경영자가 장래 손해발생 위험을 안은 판단으로 유상증자를 실시, 화려하게 경영위기를 극복했다. 하지만 현실은 경영인의 이런 경영행위가 경영판단인지 배임행위인지를 검찰은 일단 기소해 놓고 혐의 입증을 위해 소환하는 증인을 잠정적 피고인으로 보고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회사가 성장하기 위해 경영자는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데 성공적인 경영판단임에도 법적으로 보호 받지 못하고 처벌의 대상이 된다면 경영자의 경영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회사의 성장은 기대할 수 없고, 전체적으로 국가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강고한 장벽만 만드는 꼴이다.

기업의 부당행위나 불공정행위에는 법의 엄격한 잣대를 대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배임죄와 같이 경영에 과도한 통제를 가하는 것은 결국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해치고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모회사가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자회사를 부도나게 방치하는 것이 합리적입니까." 법정에서 증인이 한 반문이 어쩌면 지금 진행 중인 경영과 관련한 배임 재판의 답안은 아닐까.

eunsik8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