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운의 영화 속 경제 이야기] ‘넘버 23(The Number 23, 2007)’과 숫자마케팅

정동운(전 대전과학기술대학교 교수)

입력 2021-09-08 19: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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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운의 영화 속 경제 이야기] ‘넘버 23(The Number 23, 2007)’과 숫자마케팅
정동운 전 대전과기대 교수
고대부터 서양에서는 ‘수(數)’를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여겼다. 반면에 동양에서는 숫자를 세상의 진리에 이르는 길로 생각해왔다. 피타고라스는 자연의 모든 것은 수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으며, “수는 만물을 지배한다”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수를 연구하여 도형수를 발견하였다. 그의 말대로, 숫자는 모든 만물의 형성과 작용에 관여하므로, 인간이 숫자의 영향을 받는 건 당연하다.

영화에도 제목이 숫자인 영화가 많지만, <넘버 23(The Number 23, 2007)>이란 영화를 선정하였다. 이 영화는 숫자 23이 자신의 운명마저도 지배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남자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영화 속 주인공이 23이라는 숫자 속으로 빠져드는 장면만 살펴보자.

“온 세상과 자신의 삶이 모두 숫자 23의 법칙에 의해 지배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즉, 23쌍의 염색체로 이루어진 인간의 체세포, 적혈구가 인간의 몸 한 바퀴를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23초, 유클리드 기하학의 정의 23개, 중세 템플기사단 역대 수장 23명, 악마의 연회일 6월 23일, 시저 황제 23번 찔림, 주요 테러사건 발생일(2001년 9월 11일)의 합 23, 타이타닉 침몰일(1912년 4월 15일)의 합 23, 일본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된 시간(오전 8시 15분)의 합 23, 체르노빌 원전폭발 사고가 새벽 1시 23분에 발생하고, 지구 자전축은 23.5도 기울어져 있고, 마야 문명은 2012년 12월 23일을 종말로 예견했다. 그 역시 예외는 아니다. 자신이 태어난 시간(11시 12분)의 합 23, 부인과 처음 만난 나이 23(소설 속 핑거링이 파브리지아를 만난 나이 32), 만난 날짜(9월 14일)의 합 23, 결혼한 날(10월 13일)의 합 23 등등…. 게다가 2를 3으로 나누면 0.666(악마의 숫자)이 된다.

[정동운의 영화 속 경제 이야기] ‘넘버 23(The Number 23, 2007)’과 숫자마케팅

이와 같이 영화 속 월터(짐 캐리)는 수도 없이 많은 23의 조합에 집착함으로써 점점 과대망상에 빠진다. PC를 비롯한 현대문명의 많은 이기들은 숫자의 배열을 토대로 하는 과학의 산물임에 틀림없다. 숫자는 그 자체의 명확함뿐만 아니라 각 숫자의 상징성 때문에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숫자의 이러한 특징을 이용하여 제품명을 숫자로 나타내는 ‘숫자마케팅’(Number Marketing)이 붐을 이루고 있다. 예를 들어, 2080치약(20개의 건강한 치아를 80세까지 보존), 배스킨라빈스31(31가지의 다양한 맛의 아이스크림), 오뚜기 3분 시리즈(3분 만에 한 끼 식사를 만들 수 있는 편의성), 비타 500(100ml 한 병에 비타민C 500mg 함유) 등과 같이, 상품 특성을 나타내는 숫자를 통하여 브랜드와 상품의 인지도를 높이는 마케팅 기법이다.

갈릴레이는 “자연이라는 커다란 책은 그 책에 씌어 있는 언어를 아는 사람만이 읽을 수 있다. 그 언어는 수학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숫자는 인류가 시작하면서부터 문자 언어와 함께 사용된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고, 전 세계적으로 가장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간단한 언어이며 별다른 학습 없이도 알 수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 브랜드를 통하여 자사의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가장 적당한 언어체계이며, 소통의 도구이다. 더구나 컴퓨터 세대와 약어에 익숙하며 신조어를 선호하는 현대인들에게는, 기억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편리한 도구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상품 특성을 숫자로 표현함으로써 소비자에게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브랜드 신뢰감도 구축할 수 있으므로, 실제로 숫자마케팅을 채택한 상품의 경우에는 매출이 탁월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숫자를 넣은 브랜드가 너무 많아 자칫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대한 무역진흥공사, '고유상표개발전략', 대한 무역진흥공사, 1991, pp.47〜66. 참조)

영화에서의 집착과는 달리, 운명이란 것은 없다. 선택만이 존재한다. 숫자의 의미를 간과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보다는 이를 어떻게 의미부여하고 선택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