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쵸비’ 정지훈 “서머 8위의 기적, 롤드컵서 다시 한 번”

기사승인 2021-09-14 07: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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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인터뷰] ‘쵸비’ 정지훈 “서머 8위의 기적, 롤드컵서 다시 한 번”
'쵸비' 정지훈이 인터뷰에 임하고 있다.   라이엇 게임즈 제공

[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 ‘쵸비’ 정지훈(20·한화생명e스포츠)은 ‘LoL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 미드라이너들의 교본과도 같은 선수다. 지난해 ‘LoL 월드챔피언십(롤드컵)’ 정상에 올라 세계 최고의 미드라이너로 거듭난 ‘쇼메이커’ 허수(21·담원 게이밍 기아)도 정지훈의 플레이를 연구하고 배운다. 데뷔 4년 차, 아직까지 우승과는 연이 없는 선수이지만 리그 관계자 상당수가 정지훈을 리그 최고의 선수로 꼽곤 한다. 그가 가진 재능과 개인 기량만큼은 세계를 통틀어도 독보적이라는 평가다. 

‘2021 LCK 서머’는 정지훈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었던 시즌이었다. 팀이 부진에 허덕이며 8위까지 추락하는 상황에서도 묵묵히 제 몫을 다 해낸 정지훈은, 한국 선발전에서 맹활약하며 리그 당 4장까지 주어지는 롤드컵 진출 티켓을 팀에게 안겼다. 선발전 결승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은 ‘우승 트로피가 없다’며 정지훈을 평가 절하하던 일부 팬들의 시선도 바꿨다.

지난 10일 화상인터뷰를 통해 정지훈을 만났다.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다사다난했던 올 시즌을 치른 소회를 밝힌 정지훈은 오는 10월 열리는 롤드컵에서도 서머 시즌의 기적을 재현해보겠다고 각오했다. 

Q. 어제 숙소에 복귀했다고 들었다. 휴가는 잘 보냈는지?

게임 ‘로스트아크’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재미있게 하긴 했는데 시간을 너무 써서 다음부턴 안할 것 같다(웃음). 그래도 쉬다 보니까 롤드컵에 가서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Q. 올 시즌 한화생명의 성적이 안 좋았다. 롤드컵에 못 갈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나?

롤드컵을 못 가게 되면 잘 쉬고 다음 시즌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편한 마음으로 임했다. 그게 좋았던 건지 경기가 잘 돼 롤드컵에 나가게 됐다. 선발전 때는 게임 방향성을 우리 스타일에 맞게 찾은 것도 있고, 팀원들이 평소보다 더 잘해서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다.

Q. 어느 때보다 스트레스가 심했을 것 같다. 

밖에 걸어 다니면서 스트레스를 풀려고 노력했다. 걸어 다니다 보면 일상에서 조금 벗어난 것 같고, 시원하더라.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밖에 있는 순간 동안만은 편했다.

Q. 힘든 시즌이었던 만큼 배운 것도 있을 것 같다.

열심히 하는 것도 열심히 하는 건데,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내가 솔로랭크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인데 기분이 상한 게 그대로 드러나는 편이다. 동료들이 따로 지적을 한 건 아니지만 뒤돌아보니 이런 부분은 주의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Q. 언제쯤 롤드컵을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나?

리브 샌드박스전에서 이기고 나서는 대충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만 했다. 그런데 농심전 1세트를 이기고 나니까 ‘이거 롤드컵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Q. T1과의 선발전 결승이 정말 명승부였다. 2경기를 내리 지고 2경기를 내리 따냈다.

2대 0으로 우리가 밀린 상황에서 별 생각 없이 3세트에 임했다. 그러다 사일러스를 픽하게 됐는데 편한 마음으로 하니까 게임이 더 잘 됐다. 그래서 5세트까지 갈 수 있었다. 

Q. 올 시즌 좀처럼 웃지 않았는데 T1과의 선발전 결승이 끝난 뒤엔 환하게 웃더라.

아쉽게 졌지만 우리의 경기력을 모두 보여준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여태까지는 스크림(연습 경기)과 실제 경기에서 나오는 경기력이 달랐는데, 그날은 그대로 나와 만족스러웠다. 또 그날엔 마음이 아주 편했다. 평소에는 반드시 이겨야 되는 중압감 속에서 게임을 하다보니까 웃을 일이 많이 없었는데, 그날은 경기를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즐거웠다. 

Q. 결승전에서 ‘페이커’ 이상혁과 명승부를 펼쳐 화제가 됐다. 오랜만에 다전제에서 만난 소감은?

역시 뭔가 그냥 잘했다. 만날 때마다 느끼는 건데 다전제에서 항상 잘하시는 것 같다. 

Q. MSI가 치러진 아이슬란드에서 대회가 열린다. 아이슬란드에 대한 인상은?

유럽을 가 본 경험이 있어서 긴 비행시간은 크게 걱정 되진 않는다. 도착한다면 거기 생활을 느낄 것 같다. 사실 MSI는 경기만 보고 아이슬란드 배경을 안 봐서 어떤 곳인지는 잘 모른다(웃음).

Q. 플레이-인에서 롤드컵을 시작한다. 많은 관계자들이 정지훈의 활약을 기대한다.

많은 분들이 플레이-인에서 ‘미드 차이’를 기대하고 계시더라(웃음). 감사하지만 너무 들뜨면 안 될 것 같다. 방심하면 자만하게 되는 편이다. 긴장을 유지하고 있어야 될 것 같다.

Q. 옛 동료였던 ‘바이퍼’와 ‘타잔’을 적으로 만난다. 롤드컵 진출 확정 뒤에 따로 연락을 해봤나? 중국 리그 소속이라 그룹스테이지부터 상대할 가능성이 높은데 경계 되진 않나?

따로 얘길 나누진 않았다. 롤드컵에서 만난다는 게 참 웃기다. 옛날부터 잘 알고 있기도 하고, 최근에 경기를 몇 번 챙겨봤는데 둘 다 확실히 잘하더라. 잘하는 사람은 아무리 신경을 쓰고 경계해도 알아서 잘하기 때문에 막을 수가 없다. 내가 더 잘해야 될 것 같다.

Q. 롤드컵에 큰 메타 변화 두 개가 예고 됐다. 얼마나 달라질 거라고 보나?

패치를 확인 해 봤는데 미드 쪽 패치는 크지 않은 것 같다. 롤드컵은 메타를 빠르게 파악하는 게 중요한데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해서 큰일 났다(웃음).

Q. 메타 변화가 너무 잦다고 불만을 표하는 선수들도 있다.

체감은 못하겠다. 어찌됐든 그 메타에 적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잘하는 메타가 분명 있겠지만 그 메타를 기다리는 것보단 바뀐 메타에 최대한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Q. 메타와 상관없이 롤드컵에서 보여주고 싶은 챔피언이 있나?

개인적으로는 요네와 사일러스를 잘 다룬다고 생각해서 그런 챔피언을 꺼내서 캐리하고 싶다.

Q. 페이커가 한국 미드라이너가 세계 최고라고 하더라. 정지훈은 어떻게 생각하나?

다른 지역의 미드라이너와 붙어 본 데이터가 적어서 데이터로만 따지면 한국 미드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막상 붙었을 때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Q. 그런 쟁쟁한 미드라이너의 교본이 정지훈이라는 얘기가 있다. 앞서 다른 매체 인터뷰에선 ‘쇼메이커’가 선수들이 쵸비의 아이템 빌드 등을 보고 배운다고 하더라.

되게 인정받는 기분이 든다. 잘하는 사람들한테 인정받는 게 제일 좋다. 아이템 빌드 같은 건 머릿속에서 먼저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는 편이다. 이론상 좋은 건 플레이에도 적용시켜 본다.

Q. 그렇다면 정지훈이 쇼메이커로부터 배우는 것도 있나? 

쇼메이커 선수는 움직이는 플레이에서 남들보다 조금 더 뛰어난 것 같다. 게임 중후반에 텔레포트를 활용해서 교환 구도에서 속도를 빨리 낸다거나, 초중반에 상대방보다 먼저 도착해 있는 등 이 부분에서 굉장한 강점을 갖고 있다. 나도 그걸 보고 배워서 써먹을 수 있어야 될 것 같다. 

Q. 우승이 당연히 목표일테고, 개인적으로 이것만큼은 롤드컵에서 해내고 싶은 게 있을까.

롤드컵에서 만나는 미드라이너를 상대로 모두 이기고 싶다. 

Q. 출사표 듣고 인터뷰 마치겠다.

롤드컵에 가는 기회가 어렵게 왔으니까, 좋은 성적으로 보답할 수 있도록 잘 준비하겠다. 사람 앞길 정말 모른다. 서머 시즌처럼 기대를 안 하고 롤드컵에 임하면 잘 될 것 같기도 하다. 나 조차도 서머 시즌 8위가 롤드컵에 가게 될 줄은 몰랐다. 롤드컵에서도 그런 일이 또 벌어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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