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JP’ 이완구 전 총리 별세

혈액암 투병 끝 별세… 향년 71세

기사승인 2021-10-14 15: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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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JP’ 이완구 전 총리 별세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14일 별세했다. 향년 71세.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사진은 2015년 2월 국무총리 취임 후 간부회의를 주재하는 이 전 총리의 모습.   연합뉴스

[쿠키뉴스] 김은빈 기자 =충청권의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꼽혔던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14일 오전 7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이 전 총리는 2012년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골수증을 진단받은 후 골수이식을 받고 건강을 회복했다가 최근 혈액암이 재발하며 투병생활을 이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은 한때 ‘포스트 JP(김종필 전 국무총리)’로 불릴 만큼 충청권의 대표 정치인으로 통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여당 원내대표로 의정활동을 했다. 이후 국무총리직에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정치적 위기에 몰려 끝내 충청 대망론을 이루지 못했다.

충남 홍성 출신인 고인은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한 뒤 1974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경제기획원에서 잠시 근무했다. 이후 치안 분야로 옮겨 31세 나이로 최연소 경찰서장과 충남·북지방경찰청장도 지냈다.

1995년 민자당에 입당하며 정치권에 뛰어들었다. 이듬해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는 충남지역(청양·홍성)에서 유일하게 당선돼 주목을 받았다. 이어 16대 국회 재선도 성공해 신한국당 당대표 비서실장과 자민련 대변인, 원내총무, 사무총장 등 중책을 역임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충남지사에 당선됐으나 임기를 다 채우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가 2009년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하는 데 반발해 직에서 사퇴했기 때문이다. 그는 “충남도민의 소망을 지키지 못한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며 물러났다.

고인은 중원을 발판 삼아 중앙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했으나 결정적인 순간마다 건강이 나빠지거나 형사 사건에 휘말리는 등 아픔을 겪었다.

2012년 19대 총선으로 국회 입성을 노렸으나 그해 초 다발성 골수종 판정을 받았다. 이후 8개월간 골수이식과 항암치료 끝 병마를 극복했다. 

이듬해 재보선에서 80%에 가까운 몰표를 받아 재기에 성공했다.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선출돼 화려하게 복귀했다. ‘강성’인 새정치연합 박영선 원내대표의 카운터파트로 세월호 특별법의 여야 합의 처리 과정에서 협치의 새로운 모델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인은 박근혜 정부의 두 번째 국무총리로 임명됐다. ‘충청 대망론’의 주인공으로 부상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2015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극단적 선택으로 불거진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얽혀 70일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

2017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후 정치 활동은 원로로 현안 관련 조언을 하는 데 그쳤고 정계복귀는 이뤄지지 못했다.

고인은 지난해 총선 당시 자유한국당의 출마 제의에도 다음 세대에 자리를 내어줬다. 그는 “세대교체와 함께 인재 충원의 기회를 열어주는 데 기여하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선언하며 정계에서 사실상 은퇴했다.

eunbeen1123@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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