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널스’ 지금까지 마블은 잊어라… 존재 의의 고뇌하는 영웅담 [쿡리뷰]

이준범 / 기사승인 : 2021-10-29 06:5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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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터널스’ 포스터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새 영역에 발을 들였다. ‘히어로가 빌런을 무찌르고 지구를 지킨다’는 한 줄만 남기고 모든 걸 바꿨다. 지금까지 반복한 마블 스튜디오 영화의 공식은 더 이상 없다. 영화 ‘어벤저스: 엔드 게임’ 이후 새 페이즈에 접어든 마블 스튜디오가 얼마나 과감하게 새로운 옷을 입으려는지, 그 의지를 보여줬다. 지금까지 보여준 마블 영화와 거리가 먼 마블의 새 영화 ‘이터널스’(감독 클로이 자오)다.

‘이터널스’는 기원전 5000년 우주를 창조한 셀레스티얼의 지시로 지구에 온 불멸의 히어로 이터널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10명의 이터널스 멤버들을 7000년 동안 지구에 머물며 포식자 데비안츠로부터 인류를 지킨다. 수 세기 전 멸종시킨 데비안츠가 더 강해진 모습으로 다시 런던 한복판에 나타나자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은 세르시(젬마 찬)와 이카리스(리차드 매든)는 자신들의 리더 에이잭(셀마 헤이엑)을 찾아간 다음, 흩어진 멤버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인류와 지구를 지키려는 히어로의 고민이 한층 진화했다.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나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처럼 인간에서 히어로로 정체성이 바뀌는 과정에서 인류를 어떤 관점으로 보고 대해야 할지 고뇌했던 게 지금까지 이야기라면, ‘이터널스’는 제3자에 가까운 불멸의 외계인을 주인공으로 더 먼 위치에서 인류와 관계 설정을 고뇌한다. 10명의 이터널스 멤버들은 지구에서 수천년을 살며 인간에게 애정을 느끼고, 실망하는 일을 반복한다. 데비안츠를 무찌르는 것 외에 인간의 일에 개입하지 말라는 에이잭의 방침은 자신들의 역할과 정체성을 고민하게 한다. 마치 신처럼 인간에게 더 기회를 줘야 할지 고민하는 과정이 지금까지 인류 역사를 훑으며 그려진다.

영화 ‘이터널스’ 스틸컷

동시에 그리스 신화처럼 신들의 아주 사적이고 감정적인 이야기가 담겼다. 이터널스는 각자 다른 능력을 가졌을 뿐, 인간과 똑같은 외형으로 지구에 와서 인간들 속에 섞여 살아간다. 마치 가족처럼 긴 시간 함께 지내며 서로 사랑하고 또 질투하며 미워한다. 같은 곳에서 태어나 같은 목적으로 지구에 와서 같이 시간을 보내지만, 서로가 얼마나 다른지 극렬히 부딪히며 깨달아간다. 이터널스 멤버들은 기본적으로 외계인이자 신에 더 가까운 존재지만, 성 정체성부터 피부색, 장애 여부 등 다양한 인물로 구성돼 인류 그 자체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출발점이 달라지자 새로운 이야기가 됐다. ‘이터널스’는 외부의 적이 아닌 내부에서 적을 만들어 싸우고, 지구와 인류를 구하는 것이 목표가 아닐 수 있게 됐다. 자신들의 목적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인 동시에 인간에 더 가까워지는 이야기다. 또 이터널스가 왜 지금까지 어벤저스의 활약을 지켜만 보고 아무 것도 안했는지, 왜 앞으로 지구를 지키는 히어로로 활약할 예정인지 설득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마블의 이전 페이즈가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공간 배경을 확장했다면, 이번엔 생명을 탄생시킨 존재를 등장시키고 역사를 오가는 등 시간 배경을 확장하는 과정일지 모른다.

배우 수현이 오디션을 통해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 출연했지만, 마동석처럼 국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배우가 마블 영화에 출연한 건 ‘이터널스’가 처음이다. 마동석은 국내 관객들에게 익숙한 힘세고 듬직한 캐릭터 길가메시로 출연한다. 보디가드처럼 테나(안젤리나 졸리)를 지켜주는 역할로 비중이 높은 편이다. 영어로 대사를 뱉고 마블 세계관 속 액션이라는 점을 빼면 국내 작품과 크게 다른 점이 없다. 다만 마동석 특유의 유머가 사라지고 시종일관 진지하고 무거운 모습만 보여준다. 진지하고 심각한 건 영화 전체가 그렇다.

다음달 3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56분. 쿠키 영상 2개.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