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흥망성쇠②]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었다

기사승인 2021-11-20 05: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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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흥망성쇠②]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었다
곳곳이 임대 문의가 붙은 명동 거리  한전진 기자

[명동 흥망성쇠①]에서 이어짐. 

명동은 죽었다. 패션‧뷰티의 메카는 옛말이 됐다. 중심가에 늘어서 있던 노점 행렬도 이젠 자취를 감췄다. 거리에는 달고나를 팔고 있는 한 노모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요즘 어떠시냐’ 말을 붙여보려다 그만뒀다. 질문도 답도 뻔할 것 같아서였다. 이미 폐점 매장의 누렇게 변한 ‘임대 문의’ 안내문들이 현재의 참담한 현실을 생생히 고발했다.

명동역 6번 출구에서 소공동 롯데백화점으로 향하는 약 900m의 거리를 걸으며 ‘임대’가 붙은 매장을 세어보니 40곳이 넘었다. 현재 명동의 공실률은 전국 최고 수준이다. 상업용 부동산 플랫폼 알스퀘어가 한국부동산원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3분기 명동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47.2%까지 치솟았다. 이는 서울 지역 평균 공실률인 9.7%보다 무려 37.5% 높다. 

100년 가게들도 쓰러졌다

명동의 ‘백년 가게’들도 문을 닫고 있다. 명동에서 6.25동란 직후인 1950년대부터 3대째를 이어온 찌개 식당 ‘금강보글보글섞어찌개’는 지난해 11월 영업을 중단하더니 결국 문을 닫았다. 2019년 중소벤처기업부가 이곳을 ‘100년 가게’로 선정한 이후 2년도 채 버티지 못했다. 식당이 있던 인근 골목은 담배꽁초만 가득했다.

1969년 서울 안국동에 문을 열고 50년 넘게 장사를 했던 설렁탕집 ‘만수옥’도 지난 3월 문을 닫았다. 서울미래유산으로 등록된 비빔밥집 ‘전주중앙회관’ 명동점도 지난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관광 맛집으로 손꼽혀왔지만 외국인 관광객이 뚝 끊기자 이를 버티지 못했다. 폐업 1년이 지났음에도 가게에는 당시의 흔적이 그대로였다. 

정말 코로나에 침몰했던 걸까

문인이 글을 쓰고, 문화·예술이 가득했던 명동. 20‧30청년들의 활기가 가득했던 거리는 왜 이렇게 됐을까. 명동에서 길게는 30년째 장사를 이어왔다는 자영업자들은 “코로나 때문만에 이렇게 된 것은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코로나19로 외국인이 썰물처럼 빠지면서 예견됐던 위기는 현실이 됐다. 명동에서 30년간 인삼 판매점을 운영 중인 A씨는 “2000년대 후반까진 명동에 특색 있는 전통 찻집이나 다방과 상점들이 많았는데, 이후부터 외국인들을 위한 화장품 점과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들어서더니 개성을 잃기 시작했다”며 “사드 이후에도 이런 경향이 이어지더니 기존 내국인들은 강남 같은 번화가로 완전히 옮겨가서 돌아오지 않았다”라고 했다. 

[명동 흥망성쇠②]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었다
과거 노점들이 늘어서던 명동 거리 초입  한전진 기자
[명동 흥망성쇠②]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었다
과거 영업중이던 찌개 식당 ‘금강보글보글섞어찌개’의 모습  연합뉴스

‘문화의 거리’서 ‘외국인 거리’로


외국인 거리가 된 명동은 내국인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명동 시내의 한 면세점 관계자는 “외국인 관광객의 의존도가 높아지자 상대적으로 내국인 마케팅은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이들에게 상권의 모든 것을 걸었던 것이 문제였다. 사드때는 중국인이 끊겼고, 불매운동 때는 일본인도 사라졌다”라고 했다. 

이어 “다른 문화 콘텐츠를 개발해나가야 했을텐데, 명동은 화장품과 의류 판매 등 손쉬운 방법으로만 승부를 보려고 했다”라며 “상권 특색이 사라지면서 단순히 쇼핑을 하려는 외국인만 가득해져 갔고, 내국인은 찾지 않는 곳이 됐다”라고 평가했다. 

시간이 흐르며 명동의 정체성은 무너져만 갔다. 1998년도부터 잡화상을 운영해 왔다는 B씨는 “90년대만 해도 사람들이 명동을 다녀오면 ‘국내 최고의 번화가에서 시간을 보냈다’는 정서가 있었다”면서 “영화배우들도 다녀가고, 역사가 있는 양장점과 금은방, 안경점 들이 수두룩하던 곳이었는데 문화적 자산들이 쉽게 사라진 것 같아 안타깝다”라고 했다. 

명동의 높은 ‘지대’도 발목

명동의 높은 땅값도 상권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자영업자의 위기가 건물주인 상가 소유주들에게도 전이 중이다. 한국부동산원의 자료에 따르면, 명동 중대형 점포의 3분기 순영업소득은 ㎡당 1만1500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3분기 (15만4900원) 대비 92.6% 급락했다. 건물주가 임대료를 절반까지 인하해도 들어오겠다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지금 명동의 현실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명동에 다시 돌아올까. 자영업자들도 쉽게 모험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19가 명동을 할퀴는 동안 중국에도 로컬 화장품 브랜드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한국 화장품의 경쟁력마저 떨어지는 상황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이 다시 명동 로드숍을 찾을지는 미지수다. 이 같은 우려는 ‘유령 상권’ 공포마저 불러일으킨다.

명동은 부활할 수 있을까

오늘도 과거를 떠올리며 하루를 버티고 있다는 것이 명동 상인들의 말이다. 지난 6개월간 가게 매출 56만원을 올렸다는 A씨는 “가게를 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다시 활기로 가득 찰 명동이 그립기 때문”이라며 “이 생각으로 2년을 버터 왔는데, 서서히 사라지는 주변 풍경을 보면 이제는 끝인가 싶어 망연자실하다”라고 토로했다. 

A씨는 “명동에 필요한 것은 단기적 지원이 아닌 경쟁력을 되찾을 수 있는 장기적인 미래 전략”이라며 “명동이 살아날 수 있도록 정부와 민간이 나서 머리를 맞대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왔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명동 흥망성쇠③]에서 계속.

[명동 흥망성쇠②]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었다
연말 명동의 모습. 명동은 부활할 수 있을까. 쿠키뉴스 DB

한전진 기자 ist1076@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