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화장실 앞에서 고민하고 있다 [쿠키청년기자단]

민수미 / 기사승인 : 2021-12-01 07: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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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시장애인복지관에 설치한 모두의 화장실. 과천시장애인복지관

성공회대학교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가 교내 ‘모두의 화장실’ 설치를 위해 각종 토론회, 1인 시위 등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학교와 학생 사이 의견이 엇갈리면서 잡음이 커지고 있다.

모두의 화장실이란 이분법적인 성별 구분에서 벗어나 성소수자, 장애인, 노인, 여성 등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한 화장실이다. 유럽의 공공시설과 대학, 미국 백악관에도 설치되어있다. 해외에서는 위화감 없이 일상 속에 녹아든 것에 비해 한국에서는 모두의 화장실 논의 진행이 어려운 상황이다.

모두의 화장실은 일차적으로 권리와 자유에 관한 문제다. 사람은 하루에 평균 4회에서 10회 정도 화장실에 간다. 용변을 자유롭게 볼 수 있다는 것은 건강 문제와 직결한다. 화장실은 용변 해결 외에도 다양한 기능을 한다. 장루 주머니를 교체하거나 수유 또는 투약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모두의 화장실은 기본 권리를 보장하고 다양한 정체성을 포함하는 공간으로서의 논의인 것이다.

지난 10월 성공회대학교에서 50여명의 학생이 모두의 화장실 설치를 요구하는 플래시몹을 진행했다. 성공회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화장실의 한계


현재 대다수 화장실의 문제는 성별 이분법적이고 비장애인 중심이라는 지적이 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는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에 발표했다. 트랜스젠더 589명 중 241명(40.9%)이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 받는 부당한 대우나 불쾌한 시선이 두려워 자신의 정체성과 다른 성별의 화장실을 이용했다고 응답했다. 기존 화장실은 타고난 성과 정체화한 성이 다른 소수자가 배제되는 구조인 것이다.

기존 화장실을 이용하는 데에 있어 제약을 받는 건 성소수자만이 아니다. 장애인 화장실은 어떤 유형의 장애인이든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고안됐다. 그러나 현재 곳곳에 설치된 장애인 화장실은 그 기능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 자주 이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창고, 청소도구함이 되거나 고장 나도 수리하지 않는 문제 등이 있다. 조례나 제도에 의해 만들기는 하지만, 장애에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만들어 엘리베이터가 없는 고층에 화장실이 있는 곳도 있다.

성범죄가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

모두의 화장실이 공용화장실과 무엇이 다르냐는 의문도 있다. 성별 구분이 없는 화장실처럼 성범죄가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도 뒤따른다.

모두의 화장실은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공간이다. 공용화장실은 성별 분리가 없지만, 칸이 나누어져 있어 많은 사람이 동시 이용한다. 반면 모두의 화장실은 변기, 세면대, 기저귀 교환대, 보조 손잡이, 비상벨 등이 갖춰진 1인 시설이다.

모두의 화장실과 성범죄 사이의 인과관계는 입증된 것이 없다.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는 지난 2016년에 트랜스젠더 화장실 법을 통과시켜 성별 정체성에 따라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법안 통과 2년 후 미국 윌리엄스 연구소(UCLA 로스쿨 산하 연구소)는 트랜스젠더 화장실 법이 범죄율에 미치는 유의미한 영향이 없었다고 밝혔다. 많은 유럽 국가에도 모두의 화장실을 만들었지만, 화장실과 성범죄 사이의 상관관계는 보고된 적 없다.

과천시장애인복지관에 설치한 모두의 화장실. 과천시장애인복지관

한국에 있는 모두의 화장실…더 이상 눈치 보지 않는다


한국에도 모두의 화장실이 있다. 과천시장애인복지관은 지난해 관내에 모두의 화장실을 만들었다. 이를 추진한 최현주 사무국장은 장애인과 장애인활동지원사의 성별이 다른 경우 발생하는 불편함을 자주 목격했다고 했다. 아내와 함께 여자 화장실에 갈 수 없는 남편이 여자 활동지원사를 불러달라고 하는 일이 많았다. 지적장애인의 경우 활동지원사가 물 내리고 손 씻는 것 등을 알려줘야 하는데 성별이 달라 화장실 밖에서 큰 소리를 외치기도 했다.

모두의 화장실 반응에 대해 최 국장은 양해를 구하지 않고 편하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유의미하다고 밝혔다. 그는 “성별이 다른 어린 쌍둥이를 자녀로 둔 어머니가 복지관에서 치료를 받는다. 모두의 화장실 설치 전에는 아이를 밖에 두고 화장실에 가야 해서 어머니가 항상 불편해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를 데리고 화장실에 갈 수 있다” 말했다.

화장실,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

1975년, 지금의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지어지기 전까지 의회로 사용되었던 건물에는 여자 화장실이 없었다. 당시 정치의 주류는 남성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정치에 여성의 자리는 없을 것’라는 편견이었다. 당시 여성 정치인이었던 박순천 전 국회의원은 방광염을 오래 앓았다고 한다. 지금도 공사 현장에는 여성 노동자가 있지만 화장실이 없는 곳이 많다. 탈의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도 있다. 세상의 주체는 남성이었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사회의 주체로 인정되면서, 여성 화장실이 생겼다. 이렇듯 화장실은 남녀 화장실 논의, 장애인 화장실 논의 등을 거쳐 지금의 모두의 화장실 논의까지 이어지게 됐다.

김지학 소장이 있는 한국다양성연구소에서는 끊임없이 모두를 위한 화장실 의제를 토론하고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모두의 화장실을 통해 실현하고 싶은 가치가 있냐는 질문에 김 소장은 “누군가를 정체성으로 분류하고 배제하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을 포함하는 공간과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를 통해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가치관과 방법을 확산하고 싶다”고 답했다.

방의진 객원기자 qkd041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