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치료할 집이 없어요” 기침했다고 쫓겨난 쪽방 거주민

정진용 / 기사승인 : 2021-12-01 16:3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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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주거 취약 게층에 대한 이송 및 치료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요구사항을 적은 종이 박스를 들고 있다.   사진=정진용 기자

# “어제는 서울역 계단에서 몰래 자고, 얼마 전에는 화장실에서 화장지를 깔고 잤습니다. 오늘은 어디서 잠을 잘 수 있을지…”

전날보다 기온이 10도 넘게 곤두박질쳤다. 1일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6~5도를 기록했다. 이날 12시쯤 서울역 광장에서 만난 신모(54)씨는 다른 노숙인들이 세운 텐트를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게는 텐트를 세울 여유가 없다. 끼니도 고민이다. 다른 이들은 점심을 먹기 위해 무료급식장을 찾았지만 신씨는 예외다. 그가 잠시라도 몸을 뉠 지원시설과 무료급식장을 이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다. 얼마 전 발급받은 PCR(유전자증폭검사) 음성 확인서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음성확인서 없이는 밥을 먹을 수도, 병원에 갈 수도, 복지사와의 상담도 어렵다. 

정부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의료 대응이 한계에 다다르자 확진자에 대한 전면적인 재택치료를 결정했다. 집이 없는 거리 노숙인, 그리고 자가격리가 불가능한 쪽방촌·고시원 거주자 등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 안전망은 미흡하다. 

이날 시민단체 ‘2021 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이하 홈리스기획단)에 따르면 거리, 쪽방, 노숙인 시설 등 노숙인 거처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최근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달부터 영등포 복지시설과 고시원, 동대문 노숙인시설, 서울역 인근, 종로구 소재 쪽방 등지에서 발생한 노숙인 확진자는 175명에 이른다. 지난 1월 서울역 노숙인 응급잠자리에서 확진자 수십명이 나왔던 것보다 확산세가 크고 산발적이다.
1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시민단체 ‘2021 홈리스 추모제 공동기획단’이 주거 취약계층에 대한 이송 및 치료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정진용 기자

방역당국은 지난달 29일 의료대응 체계를 모든 확진자가 집에서 치료 받는 ‘재택치료’ 중심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주거환경이 감염에 취약한 경우와 보호자가 없는 소아·장애인·70세 이상 고령자는 입원 치료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거리가 멀다. 홈리스기획단은 “노숙인 감염자들은 입원, 생활치료센터 입소는 커녕 통상 일주일에 이르도록 자가격리가 불가능한 쪽방, 고시원 등지와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없는 컨테이너에 격리되는 등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면서 “일부 쪽방 임대업자들이 열이나 기침 등 코로나19 유사증상만으로 거주민을 퇴거시키거나 방문을 걸어 잠그는 일까지 발생했다”고 밝혔다. 

재택치료를 통해 격리된 공간에서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적이다. 고시원, 쪽방 거주자와 거리 노숙인에게는 다른 나라 얘기다. 이들에게는 돌아갈 ‘집’이 없기 때문이다. 주거 취약계층 확진자가 타인과 독립적으로 방, 화장실, 주방을 사용하고 외부로 나가서는 안 되는 기본적 방역 수칙을 지키기란 불가능하다.

강서구 화곡동 한 고시원에 거주하는 윤기욱(55)씨는 “25명이 화장실 2개, 세면장 3개, 부엌 1개를 함께 이용한다. 창문조차 없는 방이 많다”면서 “한명이라도 코로나19 감염자가 나온다면 다같이 집단감염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매 순간 한다”고 설명했다.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가 만난 한 노숙인이 보여준 올해 1월부터 모은 코로나19 검사 결과서와 검사 의뢰서가 가득 찬 봉투들.   사진=안형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음성확인서도 발목을 잡는다. 노숙인이 복지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7일 이내 실시한 음성확인서 제출이 필수다. 매주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음성확인서를 발급받는 과정도 쉽지 않다. 노숙인은 휴대폰도, 신분증도 없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노숙인 시설을 방문해 검사 의뢰서를 받은 뒤에야 코로나19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음성확인제가 복지 서비스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황성철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음성확인제는 지난 1월 이후부터 서울시에서 시행해온 제도다. 1년간 어떤 노숙인은 거의 코로나19 검사를 40번 넘게 받았다는 뜻”이라며 “제도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서울역 인근 한 무료급식소의 경우 한 끼니당 평균 300명이 이용했지만 음성확인제 이후 절반 정도로 떨어졌다. 지금까지도 그 수준을 유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당사자들에게만 방역 책임을 지우고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1일 서울역 광장에 노숙인들이 세운 텐트들.   사진=정진용 기자

시민단체들은 이날 서울지역 병상 확보와 생활치료센터 추가가 필요하고 즉시 해결하기 어렵다면 주거 취약계층 확진자가 자가격리할 수 있는 임시생활시설을 설치, 이송할 것을 요구했다. 또 서울시 행정1부시장에 긴급 면담도 요청한 상태다.

이보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주거 취약계층은 경제적으로만 힘든 것이 아니다. 신체적, 정신적으로도 기저질환이 많다. 열악한 환경에서 오는 만성적인 피로와,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해 면역력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감염병에 취약하다”고 말했다.

이 공동대표는 “선진국의 백신 이기주의는 저개발국가에서 ‘오미크론’이라는 새로운 코로나19 변이가 나타나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가장 취약한 사람을 돌봐라. 가장 아픈 사람을 치료하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이라며 “서울시는 전체 시민 건강을 위해서라도 주거 취약계층이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하고 제대로 된 치료와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