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발병률 24배” 학교 급식실에서 무슨 일이

기사승인 2021-12-02 17: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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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 발병률 24배” 학교 급식실에서 무슨 일이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원 및 학교급식노동자들이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학교급식노동자 결의대회에서 식판과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학교급식 노동자들이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왔다. 매일 3.77명(2019년 기준)이 급식실에서 다친다.

수도권 급식노동자 2000여명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학교급식노동자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급식복을 입고 식판을 든 노동자들이 서울시교육청 앞 도로를 빼곡히 메웠다. 이들은 비정규직에 대한 근속 수당 인상과 상한 폐지, 복리후생(명절휴가비) 차별 철폐와 함께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했다. 경찰의 시위 해산 명령 방송에도 집회는 이어졌다.

학교 돌봄전담사, 급식조리사 등으로 이뤄진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학비연대)는 결의문을 통해 “사측이 (임금교섭에서) 타결 가능한 안을 제시하지 않을 경우 중 ‘중대 결심’을 하겠다”면서 “2차 총파업은 곧 3차 총파업의 경고이며, 향후 노사관계 파탄과 장기투쟁 불씨가 될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최근 학교급식 노동자의 사고성 재해, 직업성 질환 등 산업재해 인정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비정규직 노조)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학교 급식실 폐암 산재신청 노동자 중 3명이 역학조사 없이 산재승인을 받았다. 

산재 승인받은 이들은 최소 10년 가까이 급식실에서 일한 뒤 폐암에 걸렸다. 15년간 경기 한 고등학교 급식실에서 근무한 60대 여성 A씨는 지난 2014년 12월 선암종 폐암 1기 진단을 받았다. 1999년부터 19년 7개월 동안 초등학교, 유치원 등 급식실에서 근무해온 B씨는 지난 5월 폐암 4기 선고를 들었다. 2010년부터 초등학교 급식실 조리사로 일한 50대 여성 C씨는 지난 7월 폐암 진단서를 받았다.
“폐암 발병률 24배” 학교 급식실에서 무슨 일이
지난 2019년 7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나서 서울 한 초등학교 학생이 대체 급식으로 나온 빵을 먹고 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지난달 민주노총에서 발표한 ‘급식실 산업안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유치원과 초·중·고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폐암 발병률은 일반인의 24배다. 발암 원인으로 튀김, 볶음, 구이 요리 등 기름을 이용해 고열에서 요리할 때 발생하는 초미세분진인 ‘조리흄’(cooking fume)이 꼽힌다. 

급식실에서 사용하는 각종 세척제에서도 유해물질이 발견됐다. 2014년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서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한 학교 급식실에서 사용하는 세척제 수는 평균 8개였다. 세척제 구성 성분 중에는 발암의심물질 3급, 환경호르몬 등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 있었다.

노동자 안전을 위해서는 급식 조리실 환기가 필수다. 하지만 실제 작업 환경에는 제대로 된 환기 시설이 없거나, 환기 시설이 있다 해도 노후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지난해 낸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급식실에 설치된 선풍기나 에어컨, 창문 개방을 통한 외부 공기유입이 ‘캐노피형 후드’(위쪽에 설치된 후드)의 방해 기류로 작용, 배기효율이 낮아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후드가 작업자의 머리 위에 설치돼있다 보니 오염물질이 작업자의 호흡영역을 통과한 후 외부로 배출되는 문제도 제기됐다.

지난 9월 국회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 노후 환기시설 전수조사 및 즉각 개선 △캐노피형 환기구가 아닌 측방형과 같은 슬롯 형태의 환기시스템으로 교체 △조리흄 발생이 높은 볶음, 튀김 등 식단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폐암 발병률 24배” 학교 급식실에서 무슨 일이
지난 6월7일 경기도 A고등학교 급식노동자 휴게실 벽면에 부착돼 있던 옷장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모습.   사진=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경기지부

학교 급식 종사자를 위협하는 요소는 많다. 운반, 세척, 조리 등 다양한 과정을 거쳐 정해진 시간에 음식을 제공해야 하다보니 △미끄러운 바닥에 넘어짐 △ 화상 위험 △식자재 운반·조리 등으로 인한 근골격계질환 등 다양한 위험에 노출돼있다. 지난 6월에는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급식실에서 휴게실 벽에 고정된 옷장이 떨어져 조리사의 하반신이 마비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2월 교육부에서 배포한 ‘학교 급식실 산업 안전 보건 매뉴얼’에 따르면 지난 6년간(2014~2019년) 학교 급식실에서 발생한 재해자 수는 4632명이다. 이들 중 사고로 다치는 비율은 약 86.38%이고 나머지 13.62%는 질병으로 인한 재해다. 학교 운영일에 따라 매일 3.77명이 학교 급식실에서 재해가 발생한 셈이다.

서울 내 초등학교에서 10년 넘게 근무한 한 조리사는 “일주일에 한 번씩 후드 기름때를 닦기 위해 높은 곳에 올라갔다가 떨어져서 다치는 사례가 빈번하다”면서 “세척제도 문제다. 빨리 깨끗이 세척을 해야 해서 뜨거운 솥단지를 락스 등 약품을 사용해 닦는다. 더운 열기 증발한 약품 성분이 다 어디로 가겠나. 조리사들이 다 마시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계에서는 △급식실 환기시설 전면교체 △폐암에 특화된 건강검진과 폐암 전수조사 △급식조리종사자 1인당 식수인원 절반(70명 수준)으로 배치기준 표준화를 요구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김진모 노동안전부장은 “최근 고용노동부에서 나서서 급식실 노동자에 대한 임시건강진단과 환기시설 가이드라인 연구를 마쳤다”면서 “노동부가 환기시설 가이드라인을 제시해도 교육부에서 예산 확보 등 환기시설 교체에 대한 충분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현재 교육부 대응을 보면 제대로 대비가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면서 적극적 개입을 촉구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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