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 ‘여자 수제비’ [0.687]

기사승인 2022-01-07 06:2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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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87]
글로벌 성 평등 지수 0.687. 156개국 중 102위. 2021년 한국은 완전한 평등에서 이만큼 멀어져 있다. 기울고 막힌 이곳에서도 여성은 쓴다. 자신만의 서사를.


식탁 위 ‘여자 수제비’ [0.687]
그래픽=이해영 디자이너

“이건 남자 수제비”

수제비에 성별이 있는지 몰랐다. 그릇을 받아든 내 손을 그가 밀치기 전까지.

4년 전 일이다. 짬을 내 토익 스터디 친구들과 밥을 먹으러 갔다. 한눈에 봐도 역사가 깊어 보이는 수제비 집에는 많은 손님이 있었다. 우리 테이블은 나를 포함해 여자 둘, 남자 하나였다. 주문한 지 얼마 안 돼 쟁반 가득 수제비가 나왔다. 안쪽에 앉은 내가 먼저 음식을 받으려는 순간, 일이 벌어졌다. 수제비 가게 사장은 “이건 남자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금방 와”라며 손을 밀쳤다. 

몇 분 후 ‘여자 수제비’가 왔다. ‘남자 수제비’ 양 절반이었다. 이유를 물었다. 여자는 많이 주면 남기니까. 사장은 원하면 더 준다고 덧붙였다. 가격은 같지 않냐고 되물으려 했다. 같은 테이블 남자 친구가 가로막았다. 불만을 토로하는 나를 예민한 사람 취급했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백종원이 음식점에 갔다. 그가 2인분을 주문하자 사장은 1인분을 줬다. 혼자 다 못 먹는다는 이유에서다. 수제빗집에서 나를 제지하던 친구는 이 장면을 보고 분노했다. 두 사례는 다를까.

떠올려 보면 성별로 인한 소비차별을 어릴 때부터 겪었다. 목욕탕에 갈 때면 주머니에 100원짜리 동전을 챙겨야 했다. 목욕탕 드라이기 사용 값은 1분에 300원이었다. 동전이 없으면 선풍기 찬바람으로 머리를 말려야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남탕은 드라이기 사용이 무료였다. 

남탕은 수건도 마음껏 쓸 수 있었다. 여자는 달랐다. 수건을 쌓아두면 집으로 가져간다는 이유에서다. 나는 수건을 훔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쓸 수 있는 수건의 양은 정해져 있었다.

소비차별은 품목을 가리지 않는다. 옷의 질도 다르다. 똑같은 디자인의 바지도 남성복은 뒷주머니가 있다. 여성복은 모양만 낸 가짜 주머니다. 재킷 안주머니도 여성복에는 없다. 남자는 기능을, 여자는 디자인을 보고 산다는 이유에서다. 같은 소재를 써도 여성복이 비싸다. 심지어 원단은 남성복에 더 많이 들어갔어도 말이다.

따져야만 찾을 수 있는 권리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남자에겐 당연하지만, 여자에게는 그렇지 않은 차별을 우리는 차이로 인정해야 하는 것일까. 마땅한 부당함은 없다. 이 글을 보고 ‘내가 보기엔 아닌데’, ‘이유가 있는데’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해 줄 말은 간단하다. 남자와 같이 혹은 남자보다 더 달라는 게 아니다. 지불한 만큼의 나의 몫을 받겠다는 것이다.

손희정 기자 sonhj1220@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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