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게임은 ‘반전’을 이야기합니다 [게임읽기]

기사승인 2022-03-04 06: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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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게임은 ‘반전’을 이야기합니다 [게임읽기]
우크라이나 키이우주의 보로디안카 지역의 주거 건물들이 2일(현지시간) 포격으로 인해 피해를 본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전쟁은 게임에서 빠질 수 없는 소재 중 하나입니다. 수많은 게임이 다양한 방식으로 전쟁을 다루고 있죠. 아케이드, 생존게임, FPS(1인칭 슈팅게임), RTS(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RPG(역할수행게임) 등 장르 또한 다양한 편입니다.

대부분의 전쟁 게임의 목표는 명확합니다. 적을 쓰러뜨리거나 정복하는 것이죠. 슈팅게임에서는 상대를 총으로 제압하거나, 전략게임에서는 상대 세력을 무너뜨리는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대부분의 전쟁게임은 아이러니하게도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용자가 전쟁의 참상과 참혹함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만들어 평화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겁니다. 그 어떤 게임도 전쟁을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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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이후 고통스러운 민간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디스 워 오브 마인'.  11비트 스튜디오

전쟁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대상은 비무장 민간인입니다. 직접적인 포격에 노출될 뿐 아니라 삶의 터전이 모두 무너지게 되죠. 2014년 출시된 폴란드 게임사 11비트 스튜디오의 ‘디스 워 오브 마인’은 전쟁의 참혹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게임입니다. 이 작품은 2014년 타임지가 선정한 베스트 게임에 선정되기도 했는데요.

기존의 전쟁 게임과 달리 디스 워 오브 마인에는 화려한 액션이 없습니다. 여타 생존 게임처럼 캐릭터가 성장하는 요소도 없습니다. 전쟁 게임에 으레 등장하는 위험하고 강력한 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폭격으로 집을 잃은 노숙자, 병든 아내를 보살피는 할아버지,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거리로 나선 아이들. 플레이어는 갑작스럽게 전쟁터에 내던져진 민간인들과 함께 처절한 생존 경쟁을 펼쳐야 합니다.

포격을 피할 은신처를 만들고 수리하다보면 동료들이 조금씩 모입니다. 하지만 식량은 턱없이 부족하고 추위는 계속 심해지죠. 생존에 급급해져서 다른 민간인의 집을 급습해 사람을 죽이고, 음식을 빼앗아오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일부 동료들은 죄책감에 시달려 우울증에 빠지기도 하죠.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게임은 수십 갈래의 방향으로 치닫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전쟁이 무고한 민간인의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면 총을 들고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은 어떨까요.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상대를 죽여야만 하는 가혹한 환경에 노출된 군인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 경우가 많은데요. 더이상 전쟁 이전의 일상을 살아갈 수 없게 된 것이죠. 다수의 세계 1·2차대전,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도 PTSD를 호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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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 군인의 PTSD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스펙옵스: 더 라인'.   2K

2012년 2K가 출시한 ‘스펙옵스: 더 라인(스펙옵스)’은 참전용사들이 PTSD로 미쳐가는 과정을 매우 적나라하게 담아낸 작품입니다. 스펙옵스의 무대는 모래폭풍에 휩싸여 사라진 두바이를 무대로 합니다. 주인공은 선량한 시민을 구하고 치안 유지를 위해 반군과 전투를 펼치지만, 이들이 모두 무고한 시민이었다는 것을 알고 큰 충격에 빠집니다.

스토리 진행 정도에 따라 동료들의 정신이 무너져가는데 이들의 언행도 과격해집니다. F가 포함되는 욕설은 기본이고, 적을 처형하는 모션이 점점 잔인해집니다. 게임 초반에는 발로 쓰러진 적의 목을 부러뜨리거나 단번에 총을 머리에 쏘아 사살하던 것이, 후반으로 갈수록 적에게 올라타서 얼굴을 주먹이나 개머리판으로 마구 때려서 죽이거나, 발악하는 상대의 머리나 입안에 총구를 들이밀며 확인 사살하는 것으로 바뀝니다.

게임에서만 발생한 일이면 좋겠습니다만, 이러한 참극은 2022년 지금도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2월 24일 현실이 아니길 바랐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으면서 양국의 전면전이 시작됐습니다.

군대를 국경 인근에 집결시켜 전쟁 위기를 고조시킨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미국과 서구 진영의 반대에도 우크라이나 내 군사작전을 승인했습니다. 러시아는 수도 키이우(키예프)를 포함한 주요 도시와 주요 시설 등에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고요. 러시아 측은 군사시설의 정밀 타격이라고 주장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역이 공습 피격을 당했다는 영상과 사진이 온라인을 통해 공유됐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전방위 침략을 받았고, 무차별 폭격으로 막심한 피해를 보게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건물이 파괴되면서 수많은 민간인이 보금자리를 잃게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도 생겼습니다. 우크라이나 정부 측은 이번 전쟁 이후 2000명의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했다고 밝혔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전쟁터로 징집된 러시아 병사들의 피해도 막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포로로 잡힌 러시아 병사의 영상을 보면 “훈련 도중 갑작스럽게 이동명령을 전달 받았다”면서 “실제 전쟁에 참여하는지는 몰랐다”고 실토했습니다. 전사자들도 계속해서 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전해지면서 러시아 내에도 반전시위 움직임이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세계 2차대전 참전 용사인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전쟁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옛날 서적에는 ‘조국을 위해 죽는 건 좋고 적절한 일’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현대 전쟁에서 죽는 것은 좋지도 않고 적절하지도 않다. 정당한 이유도 없이 비참하게 죽을 뿐”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역사적으로 전쟁을 개시하는 것은 고위 결정권자이지만,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일반 국민들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더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전쟁은 이제 게임에서만 존재했으면 합니다. 

강한결 기자 sh04kh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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