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영화엔 있고, ‘범죄도시2’엔 없는 것

기사승인 2022-05-28 06:00:16
- + 인쇄
경찰 영화엔 있고, ‘범죄도시2’엔 없는 것
영화 ‘범죄도시2’ 스틸. ABO엔터테인먼트

돈 앞에선 물불 가리지 않고 칼부터 휘두르는 희대의 살인마 강해상(손석구). 연장으로 가득 찬 가방을 들고 살기를 내뿜는 그에게 형사 마석도(마동석)는 말한다. “넌 그냥 좀 맞아야 돼.” 지난 18일 개봉한 영화 ‘범죄도시2’(감독 이상용)는 배우 마동석의, 마동석을 위한, 마동석에 의한 작품이다. 마동석의 성난 근육과 뿔난 주먹, 찌푸린 미간 앞에서 케이퍼 무비 속 흔한 흥행 공식도 맥을 못 춘다. 한때 국내 극장가를 휘감았던 경찰 영화 클리셰를 ‘범죄도시2’와 마동석이 어떻게 깨뜨렸는지 살펴봤다.
□ 무기가 없다

한 뼘짜리 주머니칼부터 식칼, 도검, 심지어 도끼에 이르기까지. 살벌한 쇳소리와 함께 벌어지는 칼춤 한가운데서 마석도는 맨손으로 블루스를 당긴다. 그에겐 영화 ‘독전’(감독 이해영)에서 이원호(조진웅)가 쓰던 총이 없다. 영화 ‘아수라’(감독 김성수)의 문선모(주지훈)처럼 뒤를 봐주는 세력은 더더욱 없다. 그저 근육을 방탄복처럼 두르고 주먹을 무기로 삼아 범죄자들을 때려잡을 뿐. 집채만 한 조직폭력배를 주먹질 한 번으로 기절시키고, 총 든 상대도 단숨에 제압해버리는 그의 괴력은 오히려 나쁜 놈들 안위를 걱정하게 될 만큼 막강하다. 과잉 진압 걱정은 개나 주고 신나게 용의자를 두들겨 패는 마석도를 보고 있으면, 영화 ‘베테랑’(감독 류승완)의 서도철(황정민)은 왜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고서야 “지금부터 정당방위”라며 주먹을 날렸나 싶어 마음이 애잔해진다.

□ ‘선수 입장’이 없다

마석도를 비롯한 금천경찰서 직원들은 몸으로 사건을 푼다. 일단 찾아가고, 없으면 헤집는다. 인터넷망을 쥐 잡듯이 뒤지는 대신, 걸리는 놈을 쥐 잡듯이 팬다. 영화 ‘걸캅스’(감독 정다원)에서 박미영(라미란)과 조지혜(이성경)가 양장미(수영)의 신들린 해킹 능력을 빌려 범인의 행선지를 추적했다면, 마석도는 범인 주변 사람들을 ‘진실의 방’으로 불러 윽박부터 지른다. 영화 ‘보이스’(감독 김선⋅김곡)에서 괴짜 해커 깡칠(이주영)이 보이스피싱 네트워크에 침투해 콜센터 위치 정보를 수집했다면, 마석도의 후배 경찰 오동균(허동원)은 폐공장 일대를 무작정 뒤지며 강해상을 찾아낸다. 해커? 없다. 선수 입장? 당연히 없다. “어디 한 번 놀아볼까”라느니, “빙고!” 같은 대사도 없다. 오직 패기와 끈기, 그리고 어떻게든 빨리 잡겠다는 의지만 있다.

경찰 영화엔 있고, ‘범죄도시2’엔 없는 것
영화 ‘범죄도시2’ 스틸. ABO엔터테인먼트

가족이 없다


과격하고 험상궂기가 범죄자 못지않아 ‘독사’ 아니면 ‘꼴통’으로 불리는 한국 영화 속 경찰들에게도 약점은 있다. 바로 가족이다. ‘아수라’의 한도경(정우성)과 영화 ‘신세계’의 이자성(이정재)이 변절한 배경엔 각각 말기 암 환자인 아내 정윤희(오연아)와 임신 중 유산한 아내 주경(박로사)이 있었다.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도 겁내지 않던 ‘베테랑’의 서도철은 아내와 아들 앞에선 꼼짝 못하고, 맷집이 워낙 좋아 좀비라고 불리는 영화 ‘극한직업’ 속 고 반장(류승룡)은 ‘씻고 오겠다’는 아내의 말에 진땀을 흘린다. 하지만 마석도, 잘 알려졌다시피 싱글이다. 가족 부양의 의무 없이 벌이는 혈투는 더없이 산뜻하고, 축축한 가정사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 이야기 진행도 시원스럽다. 외로움에 사무쳤을 마석도에겐 미안하지만 자꾸만 남몰래 그의 비혼을 응원하게 된다.

□ 여자가 없다

영화 ‘감시자들’(감독 조의석⋅김병서)의 하윤주(한효주), 영화 ‘뺑반’(감독 한준희)의 은시연(공효진)·윤 과장(염정아)·우 계장(전혜진), ‘베테랑’의 미스 봉(장윤주)과 ‘극한직업’의 장 형사(이하늬)…. 마석도에겐 이들 같은 여자 동료가 없다. 검거해야 할 범죄자나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는 조력자도 모두 남자다. ‘범죄도시2’에서 두 문장 넘게 말하는 유일한 여성 캐릭터(박지영)마저 “사모님” “아줌마” 등으로 호명될 뿐, 이름이 제대로 불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른 여성 배우들은 사정이 더 나쁘다. 강도에게 인질로 잡힌 슈퍼마켓 사장과 대학생, 장이수(박지환) 사무실 방문객 등 단역으로만 잠깐 스친다.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는 모두 유흥업소 종사자거나 성폭력 피해자였던 ‘범죄도시’보다 발전했다고 해야 할지, 퇴보했다고 봐야 할지 알 수 없다. 맹렬한 기세로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는 ‘범죄도시2’지만, 벡델테스트(영화 성평등 테스트) 앞에서는 자꾸만 작아진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경찰 영화엔 있고, ‘범죄도시2’엔 없는 것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