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기회로…MZ ‘놀이터’로 변신한 전통시장

광장시장·망원시장, 젊은 트렌드에 맞춰 탈바꿈
MZ 고객 확보 위한 청년 상인 확보가 관건
“영세 자영업자 계속 늘어…정부 일자리 늘려야”

기사승인 2022-11-16 0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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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기회로…MZ ‘놀이터’로 변신한 전통시장
9일 방문한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내부.   사진=김한나 기자

서울의 전통시장이 MZ세대의 ‘놀이터’로 진화하고 있다. 전통시장은 ‘어른들의 공간’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MZ세대 취향을 고려한 새로운 장소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레트로, ‘갓생’ 열풍 등 포스트 코로나 시대 등장한 힙한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의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전통시장도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MZ세대 유입을 위한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채로운 먹거리와 개성 가득한 굿즈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기존의 고리타분한 이미지에서 탈피해 즐길거리가 가득한 공간으로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는 모습이다.

관광명소로만 알려졌던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도 힙한 장소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MZ세대 취향을 저격한 광장시장 그로서리 스토어(식료품 잡화점)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9일 방문한 광장시장 ‘365일장’은 길거리 노점들이 가득한 먹거리 골목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성수동에나 있을 법한 현대적인 공간이 시장 내 자리한 것도 눈길을 끈다. 각종 식료품, 주류 등을 파는 그로서리 스토어로, 건물 전체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만들었다. 2층엔 음식을 총괄하는 센트럴 키친이, 4층엔 와인바가 자리했다. 

위기를 기회로…MZ ‘놀이터’로 변신한 전통시장
‘365일장’ 가게 안에 각종 주류들이 비치돼 있다.   사진=김한나 기자

모던한 분위기의 다양한 셀렉션을 갖춘 이곳에선 MZ세대의 입맛에 맞춘 와인을 비롯해 전통주, 신선, 가공식품을 판매하고 있다. 톡톡 튀는 글귀가 새겨진 문구류와 리빙 아이템도 진열돼 있었다. 바로 옆 ‘365 키친’에서는 요리도 판매하고 있어 취식이 가능하다. 시장표 대표 먹거리인 김밥, 순대, 팟타이, 만두 등을 시장에 어울리게 재해석한 게 특징이다.

MZ세대의 지갑을 고려한 것인지 가성비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와인의 경우 컨벤셔널, 내추럴 와인 등 다양한 구색을 갖췄다. 와인을 비롯한 전통주 등 가격대는 주로 9000~1만8000원대로 구성됐다. 술을 잘 알지 못하는 이들도 쉽게 선택할 수 있도록 BEST 코너도 마련돼 있다. 한쪽 벽면에는 가게를 찾은 방문객들의 방명록이 빼곡히 적혀 있어 소소한 재미도 더했다.

위기를 기회로…MZ ‘놀이터’로 변신한 전통시장
가게 내 벽면에 붙은 메모장.   사진=김한나 기자

실제 MZ세대들의 반응도 좋다. 이곳에서 만난 이 모씨(23·여)는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왔다가 간판이 눈에 띄어 들어오게 됐다”면서 “독특하고 재미있는 아이템이 많은 것 같아 계속 구경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방문객 홍 모씨(29·여)도 “유튜브를 보고 지방에서 놀러 왔다. 시장 내 이런 매장이 있다는 데 놀랐다”며 “젊은 층들이 매력을 느낄 만한 아이템이 수두룩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할 것 같다”고 전했다. 

안쪽에는 시장을 둘러보다 쉬어갈 수 있는 작은 카페도 마련돼 있다. 시장에 없던 색다른 요소를 모아 소통위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365일장은 전통시장과는 상반된 이국적인 인테리어와 와인, 치즈 등 식료품 및 다양한 굿즈로 차별화를 꾀해 MZ세대 사이 핫플레이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365일장 직원인 박 모씨는 “전통시장이 점점 쇠퇴해가고 있는 와중에 다양한 컨텐츠를 자체 개발해 시장 경제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가게 앞 비어 있는 노점을 활용한 팝업 존도 준비 중이다. 향후 빈 상가도 새참 컨셉으로 기획해 전통주 하이볼 바를 열려고 구상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직원은 “이곳에서 운영하는 어니언 카페가 젊은 층에게 인기가 좋은 편”이라며 “MZ세대를 타깃으로 인테리어도 바꿨다. 다른 그로서리 마켓 벤치마킹을 많이 하면서 개선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1층을 나와 옆 계단으로 올라가면 ‘히든아워’라는 이름의 루프톱 와인바를 만날 수 있다. 4층에 위치한 이곳은 광장시장에서 보기 드문 감각적 디자인으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내부는 조각난 거울들로 메워진 벽면과 목재 소재 테이블 등으로 트렌디하게 꾸며졌다. 주말에는 예약 없이는 이용하기 힘들 정도로 인기가 많다. 현재 이달 중으로 리뉴얼 오픈을 준비 중인 상태다.

위기를 기회로…MZ ‘놀이터’로 변신한 전통시장
15일 방문한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 내부.   사진=김한나 기자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망원시장도 MZ를 위한 대표 상권으로 거듭나고 있다. 망원시장은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MZ세대 사이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망원시장에서 호떡 장사를 하는 상인 A씨는 “최근 시장을 찾는 2030 젊은 친구들이 부쩍 늘고 있는데 아무래도 SNS의 영향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망리단길 역시 MZ들이 많이 찾는 장소 중 하나다. 망원시장을 지나 한강공원 방면으로 직진하다 보면 망리단길이 나온다. 망원에서 합정으로 이어지는 망리단길은 약 473m 길이의 거리가 형성돼 있다. 망리단길 곳곳에는 감각적인 카페를 비롯해 퓨전 음식점과 베이커리, 팝업스토어와 각종 소품샵 등이 자리했다. MZ세대 취향을 고려한 독특한 감성으로 꾸민 가게들이 꽤 많다. 앞서가는 유행의 대명사인 홍대와는 달리 망원동 일대는 레트로한 분위기가 매력적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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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 꽈배기 카페인 ‘콰페’ 망원점.   사진=김한나 기자

망리단길에는 디저트 꽈배기 카페인 ‘콰페’ 망원점도 입점해 있다. 특색 있는 도넛들과 1층에는 문구류와 다양한 아이템들이 판매되고 있다. 2층은 먹고 쉬어갈 수 있는 카페처럼 운영된다. 이곳에서 만난 한 직원은 “주말에는 방문하는 젊은 층들이 많아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라며 “도넛 사진을 찍어 SNS에 인증샷을 올리려는 목적으로 많이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망리단길 인근의 한 공인중개소 중개업자 B씨는 “최근 몇 년 사이 젊은이들을 겨냥한 레트로한 매장들이 많이 늘고 있는 추세”라면서 “그만큼 젊은 층들의 유동인구도 늘어나 활기를 띄는 분위기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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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페’ 망원점 내부.   사진=김한나 기자

김진철 망원시장 상인회장은 코로나 이후 젊은 층들이 망원시장을 많이 찾는다고 했다. 김 회장은 “젊은 층들이 망원시장 주변에 예쁜 가게나 유명한 곳을 가보기 위해 겸사겸사 오는 것 같다. 젊은 트렌드에 맞는 요소들이 시장에 들어오면서 이런 요소들이 MZ세대 사이 하나의 문화가 된 것 같다”고 전했다.

이처럼 전통시장은 점차 현대화 돼가는 추세지만 아직 MZ세대 유입 효과는 미미한 상태다. 이는 국가별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지난 9월 오픈서베이가 발간한 ‘트렌드 리포트 2022’에 따르면 한국(1.9%)보다 미국(11.8%) 전통시장이 MZ세대 사이의 이용률 강세를 보였다. 이는 MZ세대를 겨냥한 장소와 철저한 품질 관리, 차별화된 판매 전략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성공한 미국의 전통시장들은 시장 운영을 전담하는 ‘마켓 매니저’를 두고 시장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상가를 관리하고 입점 업체 선별, 홍보 마케팅까지 종합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대형마트와 경쟁하기보다 철저한 품질 관리와 MZ 세대 등을 겨냥한 기발한 판매 전략으로 전통시장을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만들었다.

위기를 기회로…MZ ‘놀이터’로 변신한 전통시장
출처=오픈서베이 9월 ‘트렌드 리포트 2022’


전통시장 상인회는 MZ세대를 끌어들이기 위한 방편으로 청년 상인들 확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서울광장시장 상인회총연합회 관계자는 “전통시장 상인 자체가 나이 든 사람이 대부분이어서 필연적으로 젊은 트렌드를 따라가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MZ세대인 청년 상인을 육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청년 상인들이 늘어나야 젊은 층의 고객들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다. 그럼 자연스레 MZ세대 방문도 많아질 것”이라며 “정부의 실질적인 지원도 필요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젊은이들이 취업만이 아니라 창업에도 매력을 느껴 일단 시장으로 유입되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회장은 국내 전통시장이 해외에 비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데 대해 “정부가 유통 재벌들을 유리하게 끌고 가는 정책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경기 불황 속에 대기업은 외국으로 빠져나가고 일자리는 부족해 젊은이들도 자영업에 뛰어들 수 밖에 없다. 국내 전통시장이나 골목상권으로 영세 자영업자들은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며 “장기적으로 정부가 자영업자를 보호해주고 젊은 세대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청년 상인들이 유입되면 기존 기성세대에게도 변화의 바람을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회장은 “젊은이들은 시장에 들어올 때 도전적이고 독창적인 생각을 가지고 온다. 반면 기성세대는 경험으로 장사하기 때문에 큰 변화는 어렵다”면서 “그런 점을 새롭게 유입된 젊은 층들이 깨뜨려 주고 있다. 기성세대도 변화돼 가고 있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김한나 기자 hanna7@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