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와 만난 김은숙 작가, ‘더 글로리’ 봤더니

기사승인 2022-12-31 06: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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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작가가 넷플릭스에 가면 어떤 작품이 나올까. 그 드라마가 복수극이면, 거기에 송혜교를 더하면? 넷플릭스 ‘더 글로리’는 여러 모로 시청자들이 기대할 요소가 가득한 드라마다. 지난 30일 공개 전부터 반응이 뜨거웠던 이유다. 쿠키뉴스 대중문화팀 기자들이 8회까지 공개된 ‘더 글로리’ 파트1을 보고 각자 감상을 남겼다.

넷플릭스와 만난 김은숙 작가, ‘더 글로리’ 봤더니
넷플릭스 ‘더 글로리’ 스틸컷

어긋난 기대

내가 대체 뭘 보고 있는 거지, 조금 더 지나면 뭔가 나오겠지, 그래 다음 회는 더 재밌겠지. 믿음과 인내의 싸움이었다. ‘더 글로리’는 생각보다 더 어두웠다. 통쾌한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현실에 발을 딛고 학교폭력 피해자들에게 말을 걸고 싶어 하는 드라마다. 하지만 가해자들의 화려하고 자극적인 일상과 엉뚱한 로맨스·우정이 나올 때마다, 현실과 선 긋는 느낌을 준다. 배우들이 매력을 뿜어낼 여지가 별로 없고, 시청자도 믿고 의지하며 볼 인물이 거의 없다.

김은숙 작가의 장기인 톡톡 튀는 대사는 여전하다. 김 작가 드라마에선 사랑에 빠진 순간 내뱉는 말들이 각 캐릭터 개성과 뒤엉켜 밖으로 나온다. 긴장이 커지고 쾌감이 폭발하는 순간이다. 매 작품 그랬고, 대부분 성공했다. 이야기의 배경과 설정이 현실에서 멀어질수록 특히 좋은 결과가 나왔다. 군대로 공간을 옮기거나, 일제강점기로 시간을 옮겼다. 도깨비를 등장시키기도 했다. ‘더 글로리’는 반대다. 더 깊고 차가운 현실에 발을 들였다. 처절하고 급박한 상황을 만들어 그 안에서 한가롭게 농담처럼 로맨틱한 대사를 주고받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이유다. 멋진 남성에 휘둘리고 의존하는 여성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여성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변화는 눈에 띈다. ‘더 글로리’가 아닌, 더 밝고 경쾌한 작품에서 다시 보고 싶은 변화다.

넷플릭스와 만난 김은숙 작가, ‘더 글로리’ 봤더니
넷플릭스 ‘더 글로리’ 스틸컷

엉성한 만남

고도로 넷플릭스화된 김은숙 드라마는 아침 드라마와 다르지 않다. ‘더 글로리’ 첫 회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말초신경을 자극해 흡인력을 높였을진 몰라도, 개연성도 통찰도 찾아볼 수 없다. 나쁜 놈은 더 나쁘게, 폭력은 가능한 한 잔인하게, 피해자는 최대한 비참하게 묘사하는 데 몰두한 결과다. 문동은(정지소·송혜교)과 박연진(신예은·임지연)의 학창 시절을 다룬 초반 장면이 가장 큰 진입 장벽이다. ‘오징어게임’의 선정적 폭력 묘사와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의 진부한 문법이 뒤엉켜 ‘넷플릭스 표준의 나쁜 예’를 몸소 보여준다.

온통 흑백인 캐릭터들 사이에서 배우 염혜란이 연기한 강현남은 생기를 뿜어낸다. 폭력 피해자이지만 명랑하고, 주눅 들어있으면서도 품이 넓어 매력적이다. 다만 이런 강현남마저도 이야기에 착 달라붙지 못한다는 인상이 강하다. 작품의 톤이 중구 난망이라서다. 건조한 오프닝으로 흥미를 자극하다가도 곧장 클리셰로 직행하고, 장황하고 비장한 대사 속에 뜬금없는 웃음과 눈물을 버무린다. 가장 이질적인 존재는 남자 주인공 주여정(이도현)이다. “왕자는 필요없다”는 문동은에게 “칼춤 추는 망나니”를 자처하며 다가가지만, 누가 봐도 백마 탄 왕자 캐릭터라 헛웃음이 난다. 김은숙과 넷플릭스, 복수극과 로맨스의 엉성한 만남.

넷플릭스와 만난 김은숙 작가, ‘더 글로리’ 봤더니
넷플릭스 ‘더 글로리’ 스틸컷

도파민 실종

보고 있으면 물음표가 띄워진다. 여기서? 갑자기? 이렇게까지? 진짜로? 온갖 의문문이 머릿속을 오간다. 동은(송혜교)의 복수를 응원보다 관망하게 되는 건 작품에 빠져들지 못해서다. 그간 김은숙 작가의 강점으로 꼽히던 것들은 복수극에서 힘을 잃었다. 복수극은 유치함이 사랑스러움으로 승화되는 로맨틱 코미디와 다르다. 주인공들이 핑퐁처럼 주고받는 대화나 말장난하는 듯한 대사는 극에 섞이지 못하고 물과 기름처럼 겉돈다. 폭력은 복수에 당위성을 주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실한 개연성을 채울 순 없다. 여정(이도현)과 동은의 러브라인 역시 애매하다. 복수에 앞서 장황한 말만 앞서는 동은의 모습 역시 몰입을 저해하는 요소다.

배우들의 연기력은 빛난다. 정지소와 신예은이 걸출한 연기로 과거 서사를 탄탄히 다졌다. 임지연과 김히어라 역시 인상적이다. 현남을 연기한 염혜란은 회색빛인 드라마에 분주히 활력을 불어넣는다. 하지만 이들의 고군분투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복수극 특유의 도파민이 샘솟을 구석이 없다. 지금으로선 파트 2에 담길 동은의 본격적인 복수와 가해자들의 파멸에 큰 기대가 생기지 않는다. ‘더 글로리’가 어떤 방식으로 통쾌함을 안길지 지켜볼 일이다.

이준범 이은호 김예슬 기자 bluebell@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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