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 ‘왕진가방’ 들기 어려운 이유 [의료, 집으로③]

의료법 예외 규정으로 운영되는 방문진료
수요 있지만 시혜적 시행 한계 뚜렷
의료진·환자, 적정 수가·보상 체계 필요 공감
“초고령화 사회 대안…활성화 논의 시작해야”

기사승인 2023-03-25 13: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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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이 ‘왕진가방’ 들기 어려운 이유 [의료, 집으로③]
방문진료 전담 기관 집으로의원의 왕진 가방. 혈압계, 혈당계, 주사, 수액, 소변줄 등이 들어있다.   사진=김은빈 기자

방문진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김지영 집으로의원 간호부장이 넌지시 말했다. “원장님, 저 이번 달 월급 안 주셔도 돼요.” 김주형 집으로의원 원장이 “괜찮다”며 웃었다. 김 간호부장은 “지난달 의료비 청구 금액이 얼마 안 돼서, 원장님이 월세는 어떻게 냈는지 모르겠어요”라고 털어놨다.

현재의 방문진료 시스템은 시혜적 성격이 짙다. 지난 8일 동행 취재한 성남시 방문진료 일정에서 집으로의원을 마주한 환자들은 “의사 선생님이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냐”, “너무 감사하다”며 진심을 담아 인사를 건넸다. 진료에 나선 의료진은 매번 비슷한 고민을 안고 돌아온다. 김주형 원장은 “‘돈을 받아도 되나’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 재택의료 시스템은 전무한 수준이다. 이건세 대한재택의료학회 회장(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예방의학교실 교수)은 지난 17일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시에서 재택의료 시범사업을 추진할 당시 의사들이 점심시간, 저녁시간을 활용해 방문진료를 다녔는데, 대부분 포기했다. 방문진료의 필요성은 느끼지만 현실적 한계가 많기 때문”이라며 “환자 집을 찾아가는 일이라 기회비용은 큰 데 주어지는 보상이 턱없이 적다”고 밝혔다.

박건우 대한재택의료학회 이사장(고려대 의과대학 신경과 교수)도 “현재 방문진료는 의사가 베푸는 식으로 흘러가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방문진료를 갔는데, 환자가 위중한 상황이었지만 골목이 좁아 구급차가 들어올 수 없었다. 결국 제 차에 태워 1시간30분 정도 걸려 병원에 갔다. 만약 차 안에서 돌아가셨다면 책임을 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환자 이동 소요 시간에 대한 수가체계도 없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정당한 수가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며 “드레싱을 하거나 피 검사를 하는 등 행위에 따른 수가체계가 있고, 그에 맞는 정당한 보상이 있어야 계약 관계가 형성된다. 환자들이 고마워하고, 의사들이 시혜적으로 다가가는 관계는 적절치 않다”고 강조했다.

환자들도 제대로 된 보상이 이뤄져야 재택의료가 활성화 될 수 있다는 데 공감했다. 이용우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CRPS) 환우회 회장은 “환자들이 10만원가량의 재택의료 진료비를 비싸다고 느낄 순 있다. 다만 CRPS 환자들은 거동이 불편해 택시를 타거나 응급차를 불러야 하는데, 이 비용만 5~6만원이 넘는다. 간접비용을 생각하면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또한 “CRPS 환자가 통증을 호소할 때마다 보호자들이 약을 주는데, 이때 하루 용량을 초과해 복용하는 경우가 많다. 외래진료를 받으면 3분밖에 보지 못하니 문제를 모르는데, 재택의료는 오·남용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며 “재택의료가 활성화되면 몸이 불편해서 병원에 가기 힘든 환자들이 치료받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것 같다”며 기대했다. 

의사들이 ‘왕진가방’ 들기 어려운 이유 [의료, 집으로③]
김주형 집으로의원 원장이 지난 8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한 가정을 방문해 진료 후 처방전을 인쇄했다. 프린터기는 미국에서 공수해왔다. 휴대용 프린터기가 없을 경우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 처방전을 인쇄해 환자 집에 보내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사진=김은빈 기자

“재택의료, 초고령화 시대 대안 될 것… 정부 의지 보여야”

전문가들은 시범사업을 통해 방문진료가 시행되고 있지만, 한계가 존재한다고 입을 모은다. 보건복지부가 시행하는 재택의료 관련 시범사업은 △장애인 건강주치의 시범사업 △1차의료 방문진료 수가 시범사업 △장기요양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 △중증소아 재택의료 시범사업 △1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 △복막투석 환자 재택관리 시범사업 등이 있다.

우선 의료현장에선 시범사업이 분절돼 있어 행정업무가 과중하다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집으로의원 역시 김 원장, 김 간호부장 외에 행정업무를 전담하는 직원이 있다. 김 원장은 “재택의료는 50%가 행정업무”라며 “병원 안에서 행해지는 의료 행위는 전자의무기록(EMR)에 입력하면 자동으로 청구되지만, 방문진료는 사업별로 청구 기관이 달라 행정업무에 상당한 부담이 된다”고 했다. 

법적인 제재도 걸림돌이다. 현행법상 의사가 환자의 집에서 진료를 보는 것은 ‘불법’이다. 의료법 제33조 1항에서 ‘의료기관 내에서 의료업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응급환자를 진료하는 경우, 환자나 환자 보호자의 요청에 따라 진료하는 경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공익상 필요하다고 인정해 요청하는 경우 등 예외적으로만 인정된다. 방문진료는 현재 이 예외조항에 따라 행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탓에 의료보험 수가의 지불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다. 각종 서비스에 대한 표준화된 수가체계가 없으니 참여하는 의사도 적다. 의대생 교육과정에도 방문진료는 포함되지 않는다. 방문진료를 뒷받침하는 의료기기는 발달을 거듭하지만, 의료기기를 통해 병원에 건강데이터를 전송해도 현행법상 의사가 그 기록을 확인할 수 없어 재택의료에 활용할 수가 없다.

가장 큰 문제는 대형병원 중심의 현 의료체계는 다가오는 초고령화 사회를 대비할 수 없다는 점이다. 통계청은 오는 2025년엔 65세 이상 인구가 20.6%에 달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5명 중 1명은 병원에 가기 어려운 노인인 셈이다. 진료를 받아야 하는 노인의 수는 늘어나는데, 노인 의료 접근성은 뒤처지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이건세 회장은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병원을 찾아올 수 있는 분들이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모두 병원이나 요양시설에 입원시킬 순 없지 않나”라면서 “재택의료가 초고령화 사회의 의료적 대안이 될 것이다. 노인 의료비용을 줄이면서 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선 재택의료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중요한 건 정부의 의지다. 이 회장은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계속해서 병원 밖에 방치할 순 없다. 의료체계를 바꿔야 한다”면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선 정부의 의지가 강해야 한다. 환자들이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인간답게 생활하기 위해선 집에서도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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