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운드’, 이 청춘의 가짜 실패는 값지다 [쿡리뷰]

기사승인 2023-03-30 06: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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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운드’, 이 청춘의 가짜 실패는 값지다 [쿡리뷰]
영화 ‘리바운드’ 스틸컷. (주)바른손이앤에이

2010년 부산의 한 길거리 농구장. 학생들의 내기 농구를 지켜보던 한 남자의 눈이 유독 반짝인다. 드리블부터 슈팅까지, 코트 위 움직임을 좇는 눈빛은 분주하다. 경기가 파하고 어느 학생에게 다가간 남자는 당차게 말한다. “너, 우리 팀에서 농구해라!” 자신만만해하며 건넨 건 삐뚤빼뚤 손글씨가 적힌 어설픈 수제 명함. 그의 정체는 부산 중앙고등학교에서 근무 중인 25세 공익근무요원이자 현 농구부 코치다. 그가 폐부 위기에 놓인 농구부를 떠맡은 뒤로, 고교농구의 몇몇 문제아가 중앙고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영화 ‘리바운드’(감독 장항준)는 최약체로 평가받던 2012년 부산 중앙고 농구부가 협회장기 전국남녀중고교농구대회에서 준우승을 이루기까지의 실화를 각색한 작품이다. 영화는 중앙고가 대회 돌풍으로 떠오르는 과정을 차근차근 짚는다. 중앙고에서 일하던 공익근무요원 양현(안재홍)은 존폐 기로에 선 농구부를 살리고자 얼떨결에 중앙고 농구부 코치를 맡는다. 하지만 코치직을 맡자 그의 마음엔 불꽃이 일렁인다. 고교대회 MVP 선수 출신인 그는 맨땅에 헤딩하듯 길거리 농구장을 전전하며 부원을 모집한다. 슬럼프에 빠진 기대주 기범(이신영)과 부상으로 농구를 등진 규혁(정진운), 축구선수 출신 센터 순규(김택), 길거리 농구 전문가 강호(정건주), 농구를 사랑하는 만년 식스맨 재윤(김민), 자칭 마이클 조던 진욱(안지호) 등 여섯 부원을 모아 꿈을 키워간다.

‘리바운드’, 이 청춘의 가짜 실패는 값지다 [쿡리뷰]
영화 ‘리바운드’ 스틸컷. (주)바른손이앤에이

‘리바운드’는 언더독 이야기를 다룬 스포츠 영화 전개 공식을 착실히 따른다. 오합지졸, 문제아, 라이벌이 모인 농구부는 바람 잘 날이 없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모래성처럼 위태롭던 농구부는 힘든 훈련을 거치며 점차 구색을 갖춰간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풍파 속 와해 위기에 놓였던 이들은 우여곡절을 거쳐 빼어난 팀워크를 갖춘다. 교체선수가 없는 빈약한 환경에도 절대 기죽지 않는다. 언뜻 실패한 듯해도 이들은 끈질기게 리바운드를 시도한다. 그렇게 중앙고 농구부는 과오를 값진 가짜 실패로 만들며 나아간다. 성과에 쫓기던 초보 코치 양현과 농구를 즐기지 못하던 기범, 규혁은 농구를 사랑하는 진심을 마주하자 빠르게 성장한다. 물과 기름처럼 겉돌던 이들이 비로소 한 팀이 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 감동이다. 노력으로 꽃 피운 청춘의 땀방울에는 마음을 울리는 힘이 있다. “좋아하는 걸 절대 포기하지 마”, “농구는 끝나도 인생은 계속된다” 등 대사는 잊고 있던 열정을 일깨운다.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실화는 ‘리바운드’의 무기다. 실제 중앙고 농구부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약팀이었으나 강양현 전 농구선수(현 3x3남자농구 국가대표팀 감독)가 코치를 맡은 뒤 기적 같은 준우승을 거머쥔다. 영화는 이를 적절히 각색해 오락적인 재미와 감동을 배가했다. 일부 장면에선 속도감이 느려지기도 하나, 집중력을 저해하진 않는다. 실감 나게 재현한 농구 경기를 보는 맛이 쏠쏠하다. 중앙고와 맞붙었던 당시 용산고 소속 농구선수 허훈을 필두로 실제 선수들도 여럿 출연했다. 실제 경기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배우들도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실제로도 3점 슛과 앨리웁 덩크 등 다양한 기술을 선보였다. 이는 장면 전환이나 끊김 없이 원 테이크로 고스란히 담겼다. 경기 내용과 선수들의 심리 상태는 중계진의 입을 빌려 서술했다. 덕분에 농구를 잘 모르는 관객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실감 나는 연기와 세세한 연출이 더해진 시너지 효과는 엄청나다. 

‘리바운드’, 이 청춘의 가짜 실패는 값지다 [쿡리뷰]
영화 ‘리바운드’ 스틸컷. (주)바른손이앤에이

장항준 감독의 존재감이 어느 때보다도 도드라진 작품이다. 특유의 유쾌함이 영화 곳곳에 덧씌워져 있다. 말맛이 살아있는 대사와 재미난 상황들이 소소한 웃음을 자아낸다. 작품이 친밀하게 느껴질수록 몰입감은 높아진다. 평소 장항준 감독의 입담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웃을 대목이 많다. 다양한 대사를 차지게 구사하는 안재홍 역시 돋보인다. 세세한 부분을 놓치지 않는 능청스러운 연기가 여기저기서 빛을 발한다. 농구선수로 변신한 이신영과 김민은 스크린을 마구 휘젓는다. 감정을 그대로 담아낸 생생한 표정들을 보여준다.

농구 만화가 인기를 끄는 최근 분위기는 ‘리바운드’에게 분명한 호재다.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감독 이노우에 타케히코)와 웹툰 ‘가비지 타임’이 흥행하며 온라인상에서 ‘농놀’(농구 놀이의 준말) 열풍이 불어서다. 농구에 관심이 있다면 극에서도 흥미롭게 느낄 장면이 많다. 경기를 충실히 재현한 만큼 농구를 좋아하는 관객에게도 좋은 볼거리가 될 만하다. 각 만화에서 좋아하는 캐릭터를 극 중 인물에 대입하면 더욱더 새롭게 즐길 수 있다. 다양한 요소로 관객 마음을 리바운드하듯 두드리는 영화다. 122분. 오는 5일 개봉.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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