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세대’ 답습·기생하는 ‘청년 정치’, 외면받는 또 다른 이유 [말로만 청년⑤] 

편 가르기·줄서기 만연…공천권 목숨줄에 ‘거수기’ 역할만
겉으로만 ‘젊은 조직’…실제론 ‘젊은 꼰대’
기성 정치권, 청년 발언권 막고 재단하려는 행태

기사승인 2023-06-04 0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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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 답습·기생하는 ‘청년 정치’, 외면받는 또 다른 이유 [말로만 청년⑤] 
그래픽=안소현 기자

“생물학적 나이만 어리다고 청년인가요”

기성 정치인들과 다를 바 없는 청년 정치인들의 행태에 청년들마저 외면하고 있다. ‘그들만의 리그’라고 불릴 만큼 일반 청년들과 상당한 괴리감에 이미 많은 이가 기대를 접었다. 전혀 참신하지 못한 채 본인의 출세나 안위를 위한 언행은 눈살을 찌푸리게까지 한다.

청년 정치인 개개인의 역량 문제일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기성정치가 청년 정치인들에게 같은 목소리를 요구하는 구조적 폐단 때문이다.

최근 민주당 내에서 불거진 양소영 전국대학생위원장 사퇴 촉구 건만 보더라도 청년 정치인들 사이에서 편 가르기, 계파 줄서기는 이미 만연해 있다. 양소영 위원장 사퇴를 촉구하는 이들은 절차의 부당함을 문제 삼았지만, 실제로 양 위원장을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서려는 대학생위원회 내 반대파라는 해석도 있다.

지난달 31일 양 위원장 사퇴를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한 임지웅 고양정 대학생위원장은 그동안 양 위원장과 대립각을 세워 온 인사다. 매주 열리는 촛불집회에 참석해 전국대학생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면서 연일 비판해왔으며 최근까지 불편한 사이로 전해진다.

촛불집회 참석은 자율이고 당 차원의 독려 사항도 아니지만 친명계 의원들이 비명계를 향해 공격할 때 쓰는 레퍼토리를 그대로 가져와 기성세대의 정치법을 청년세대가 답습하고 있다.

국민의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당내 청년 정치인들은 특별한 계파 없이 정치적 생각을 공유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면서 함께 독려하며 성장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당대표 징계라는 초유의 사태를 거치면서 기성 정치권이 친이준석계 인사를 불편하게 보자 태도를 바꿨다.

일부 국민의힘 청년 정치인들은 본인이 친이준석계라고 낙인찍히면 주류 정치에서 소외될까 싶어 친이준석계 인사들과의 그간의 교류도 끊고, 생각이 전혀 다른 청년인 척하는 경우도 꽤 있다.

청년정치 참신함 기대…냉혹한 현실에 좌절
예윤해 “당 달라도 청년 만나면 공감…세대 균열 필요”

국민이 청년 정치에 주목하는 이유는 기성 정치권과 다른 참신함을 원하기 때문이다. 과거 기성 정치권의 악습을 답습하지 않고, 번뜩이는 참신함을 무기로 당의 미래를 개척하길 바라는 것인데 현실에서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겉으로는 당내 가장 젊은 조직, 참신한 미래 세대임을 표방하나 사실상 현실에서는 거수기 역할만 허용될 뿐이다. 기성 정치권과 다르지 않다면 굳이 이들을 응원할 지원할 이유는 없다. 

현재의 구태의연한 상황을 청년 정치인들의 탓만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기성세대의 기준으로 청년 정치의 의미를 평가하고 재단하는 현실 정치의 구조적 문제가 가장 핵심이다. 

청년들에게 자유로운 정치적 발언 기회를 보장한다면 독려하지 않아도 넘칠 정도의 다양한 의견들이 나올 테지만, 현실은 당 지도부 또는 당내 다수파의 의견과 다르면 바로 내쳐지는 냉혹한 구조다.

‘기성세대’ 답습·기생하는 ‘청년 정치’, 외면받는 또 다른 이유 [말로만 청년⑤] 
더불어민주당 대학생·청년 당원 512인이 지난달 31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양소영 대학생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사진=황인성 기자

이러한 청년 정치의 현실적 문제를 간파하고 날카롭게 지적한 비판도 있다.

예윤해 청년정의당 성남시위원장은 지난 4월 12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 주관 ‘청년 정치’ 토론회에서 “청년 타이틀을 달고 당선된 이들을 만나 술 한잔 기울이다 보면 당이 다르더라도 청년들끼리는 정작 잘 통한다. 다만 어른들에게 공천권이 있는 만큼 생존을 위해 그들의 눈치를 보다 보면 생각과는 다른 위치에 서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어른들이 허락하는 청년 정치에는 답이 없다”며 “진보 보수를 불문하고 세대 균열을 내야 한다. 어른들의 허락 안에 있는 정치에서는 결국 기성정치를 답습할 수밖에 없고, 생물학적 나이만 어린 꼰대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정말 ‘할 말 많은’ 청년세대지만 정작 온전히 청년을 대변해줄 수 없는 현실 속에 청년 다수는 정치권에 실망하고 있다. 무관심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대학에 재학 중인 21살 박인재씨는 쿠키뉴스에 “청년 정치인이라고 하면 청년들의 입장을 대신 전해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는데 딱히 그런 것 같지 않다”며 “그냥 나이가 어린 정치인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나마 이준석이 당대표할 때는 뉴스에서 20대들이 관심 가질 만한 이야기가 다뤄졌던 것 같은데 요즘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현실에 그냥 정치에는 무관심해진다. 사실 주변 친구들이 관심 자체가 없다”고 덧붙였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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