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좌에 돈 꽂히니 하늘 나는 기분” 도박 늪에 빠진 아이들

성매매 등 2차 범죄까지 심각

기사승인 2023-06-05 18:4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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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좌에 돈 꽂히니 하늘 나는 기분” 도박 늪에 빠진 아이들
5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국회의원회관에서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 주관으로 열린 ‘청소년 불법 도박: 우리 아이들이 위험하다’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청소년 불법도박 STOP!’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임지혜 기자

“청소년들에게 왜 도박하는지 물으면 ‘계좌에 돈이 꽂히면 하늘을 나는 기분’이라고 합니다. 돈을 딸 때 쾌락이 있으니 도박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거죠” (오세라비 작가)

온라인 불법 도박이 10대 청소년들에게까지 급속히 번지고 있다. 휴대전화로 불법 도박 사이트에 쉽게 접근 가능하고, 도박 빚을 지거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2차 범죄로 이어지는 점이 문제다. 청소년 도박 중독 문제 역시 심각하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온라인 도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현안”이라며 정부의 강력한 대책과 법안 마련을 촉구했다.

5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국회의원회관에서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 주관 ‘청소년 불법 도박: 우리 아이들이 위험하다’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10대 청소년들이 휴대전화로 온라인 도박 사이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데 우려를 드러냈다.

수년간 청소년 사행성 온라인 도박 실태를 연구해 온 오세라비 작가는 그동안 만난 도박 중독 청소년들의 사례를 언급했다. 오 작가는 “(한 학생은) 모의고사를 보다가 화장실 간다고 하곤, 도박 한 판을 하고 돌아온다고 한다”며 “파워볼 같은 게임은 5분도 채 안 걸린다”고 설명했다.

그는 “도박하는 학생 절반은 자신이 중독이라는 것을 안다. 이런 행동이 잘못이란 사실도 안다”며 “하지만 도박에 중독돼 본인도 어쩔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단도박을 하고 싶다”고 호소했던 중2 학생의 이야기를 전한 오 작가는 “어른으로서 이 아이에게 뭘 해줘야 하나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부모에게 (도박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한다. 자녀 도박 문제는 부모들이 제일 마지막에 아는 경우가 많다. 그때는 정말 늦은 것”이라며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도박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계좌에 돈 꽂히니 하늘 나는 기분” 도박 늪에 빠진 아이들
5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국회의원회관에서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 주관으로 열린 ‘청소년 불법 도박: 우리 아이들이 위험하다’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임지혜 기자

34년 차 교사이자 현재 고3 담임교사라고 밝힌 조윤희 대한민국교원조합 상임위원장은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온라인에서 ‘꽁머니(공짜 사이버머니)’ ‘꽁포(공짜 포인트)’를 검색하면 도박 사이트가 쫙 뜬다고 했다”라며 “그냥 도박할 수 있는 포인트를 먼저 준다. 그렇게 도박을 시작한다더라”고 말했다.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청소년 도박의 심각성에 토론회가 진행되는 동안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김대헌 한국성범죄무고상담센터 대표가 불법 도박 사이트와 성인 인증 없이 볼 수 있는 디지털 성범죄 게시물을 보여주자 청중 사이에서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김 대표는 “학생들은 군중심리가 강하다. 1~2명이 도박을 하다보면 친구 여럿이 하게 되고, 도박 빚 해결이나 도박 자금 마련을 위해 성인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범죄에 노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도박 중독도 문제다. 청소년 사이버 도박 조사에서 중독 위험군이 3만명에 육박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달 29일 전국 학령전환기 청소년 약 128만명을 대상으로 2023년 청소년 인터넷·스마트폰 이용 습관 진단조사를 한 결과, 중1·고1 학생 87만7660명 중 2만8838명(3.3%)이 위험군으로 나타났다. 또 사이버도박 위험군의 44.5%가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을 보였다.

불법 도박을 하다가 2차 범죄에 연루되거나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김 대표는 “불법 도박 사이트를 차단해도 로그인 회원정보만 있으면 새 사이트로 회원 정보를 옮길 수 있다”며“(학생의) 개인정보가 온라인에 계속 돌아다니다가 보이스피싱에 이용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들어서는 마약 문제도 매우 심각하다”며 “텔레그램 등에서 마약 운반만 하면 고액의 돈을 벌 수 있게 해준다고 청소년들을 꾀어내 코인을 지급한다. 이런 코인을 환전해 또 도박 자금으로 이용하게 유도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계좌에 돈 꽂히니 하늘 나는 기분” 도박 늪에 빠진 아이들
5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청소년 불법 도박: 우리 아이들이 위험하다’ 토론회에서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임지혜 기자

도박 빚을 갚거나 도박 채무를 갚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거나 성매매를 하는 문제도 있다. 지난 1일 경기 김포에서는 도박 빚을 갚기 위해 새벽 시간대 금은방 출입문을 부수고 귀금속 수천만원어치를 훔친 10대들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불법 도박 문제가 심각한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처벌 기준이 너무 낮다고 지적했다. 오명근 법무법인 내일 변호사는 도박이 개인 피해에 국한된다는 인식 탓에 처벌이 중하지 않다고 말했다. 오 변호사는 “도박을 하다가 잡히더라도 입건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의 경우 부모에 보호관찰을 맡기는 정도”라며 “청소년 도박의 폐해는 심각하지만 법 제도는 방치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불법 도박 신고 기관이 복잡하거나 도박 사이트를 차단하는 등 정책이 미비한 데 대한 아쉬움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불법 도박 예방을 위해 청소년 보호법을 더 강력하게 개정하고, 365일 24시간 도박, 우울, 가정, 학교, 학대 등 청소년 상담을 할 수 있는 키즈 헬프폰을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청소년 도박 중독 상담가와 청소년 도박 중독 치료소의 확충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정 의원은 “각종 메신저와 암호화폐 발달로 인한 익명성이 강화된 온라인 환경은 범죄가 파고들기 쉬운 무법지대가 돼 호시탐탐 우리 아이들을 노리고 있다”며 “청소년 불법 도박 및 마약 중독 근절을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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