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지나간 자리, 마스크가 남았다

기사승인 2023-06-10 06: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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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지나간 자리, 마스크가 남았다
코로나19 위기경보 단계가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 조정된 지난 1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를 찾은 시민들의 모습.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됐지만, 여전히 많은 시민들이 마스크를 쓴 모습이다.   사진=임형택 기자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해제된 지 9일.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과 입소형 감염 취약 시설을 제외한 모든 장소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카페와 대중교통 등을 둘러봐도 의무화 해제 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분위기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활보한다. 사람들은 왜 아직도 마스크를 쓰고 다닐까.

“마스크 벗기 아직 두려워요”

지난 6일 오전 10시 서울 2호선 홍대입구역 인근 한 카페. 30분 동안 카페를 찾은 손님 50여명 중 20여명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카페 직원들 역시 전부 마스크를 쓴 채로 손님들을 맞았다. 대중교통도 마찬가지였다. 지하철 한 칸 내에 있던 승객 30여 명 중 절반 정도가 마스크를 쓴 채였다. 승강장에서 턱까지 마스크를 내려쓴 시민도 열차가 도착하자 마스크를 제대로 올려 썼다.

이날 카페에서 만난 A(대학생)씨는 두 시간 동안 음료 마실 때를 제외하곤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그는 “3년간 마스크를 썼더니, 이제 쓰는 게 더 편하다”라며 “사람 많은 공간에선 항상 마스크를 쓴다”고 했다. 마스크를 벗고 음료를 한 모금 마신 A씨는 다시 마스크를 올려 썼다.

오후가 되자 점심을 먹고 방문한 사람들로 카페가 북적였다. 마스크를 손에 걸고 있거나, 책상 위에 올려놓은 이들도 많았다. 일부 시민들은 경계심이 느슨해진 틈을 타 다시 감염병이 찾아올까 두려워했다. 이날 지하철에서 만난 직장인 이모(25)씨는 여전히 매일 아침 마스크를 챙긴다. 이씨는 “아직 위험하지 않나 싶어 마스크를 쓴다”며 “아직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많이 쓰고 다녀서 벗기에 눈치가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코로나19가 찾아오기 전엔 마스크를 전혀 쓰지 않았다.

코로나19 지나간 자리, 마스크가 남았다
실내 마스크 의무 착용이 해제된 지난 1월 오후 서울 시내 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마스크 착용 관련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실내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됐지만, 종업원과 손님은 마스크를 쓰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동조 심리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 교수는 “벗어도 된다는 걸 알아도 주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동조할 수밖에 없다”며 “마스크를 쓰는 이유엔 감염 위험, 신변 노출에 대한 부담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동조 심리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서경현 삼육대 상담심리학 교수 역시 사람들이 계속 마스크를 쓰는 이유 중 하나로 “주변 사람들의 시선 의식”을 꼽았다. 이어 “법은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사람마다 스스로 인식하고 정의하는 규범은 다르다”고 말했다.

“이젠 마스크와 한 몸 됐어요”

마스크의 편의성과 익숙함은 어느새 사람들에게 스며들었다. 오랜 기간 착용해 왔기에 마스크를 쓰는 것이 더 편한 사람들이 많다. 경기 안양시에 사는 김보미(14·중학생)양은 “마스크와 한 몸이 됐다”고 표현했다. 김양은 “마스크를 벗고 있어도 쓰고 있다고 착각할 때가 있다”며 “이제는 마스크가 안경같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 후 학교 풍경도 비슷하다. 김양은 “날이 더워졌는데도 실외 체육 수업 때 친구들이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있다”며 “벗어도 되지만, 굳이 벗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경기 성남시에 사는 김강산(28)씨는 마스크를 하나의 장신구로 생각한다. 그는 “마스크를 쓸지 말지는 이제 개인의 선택”이라며 현재를 “과도기인 것 같다”고 했다. 착용 의무가 해제됐어도 마스크를 완전히 벗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김씨는 “감기도 안 걸리고, 미세먼지도 막아주고, 벗을 이유가 없다”며 “대중교통에서도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지나간 자리, 마스크가 남았다
실내 마스크 의무 착용이 해제된 지난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전광판에 코로나19 방역조치 관련 안내 문구가 나오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이제 모두가 마스크, 신기해요”

강원 춘천시에서 네일아트숍을 운영하는 강모(26)씨는 벌써 6년째 마스크를 쓴다. 직업 특성상 손님들과 가까이 앉아서 대화하기 때문에 일을 시작할 때부터 항상 마스크를 썼다. 그는 “지금은 모두가 마스크를 쓰는 모습이 신기하다”며 “착용 의무가 해제됐어도 마스크를 쓰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기도 하고 이해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3년 4개월 동안 이어진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에게 마스크를 남겼다. 전 국민이 긴 시간 마스크를 착용한 경험 덕분에, 이전과 달리 언제든 마스크를 선택해서 쓸 수 있게 됐다. 서경현 교수는 “일부 사람들은 사회에서 나만 튀는 상황을 불쾌하게 느낄 수 있다”며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전에는 마스크를 착용했을 때 눈에 띄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마스크를 쓸 때 얻는 이점이 더 많아서 벗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마스크가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걸 모두가 알게 됐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그동안 바이러스가 돌아다니지 않다가,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고 감기가 많이 유행하고 있다”며 “개인의 선택이지만, 마스크는 안전을 위해 착용하는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이어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됐어도, 열이나 기침이 있으면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최소한의 에티켓이 되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예솔 기자 ysolzz6@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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