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문 닫습니다”…‘악성 민원’에 멍드는 소아과

기사승인 2023-08-14 06: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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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문 닫습니다”…‘악성 민원’에 멍드는 소아과
쿠키뉴스 자료사진.   사진=박효상 기자


“의원 문 닫겠습니다.”
“폐업 예정입니다.” 
“통증과 내과 관련 질환을 치료하는 의사로 살아가겠습니다.”

소아청소년과 병원들이 내건 폐업 안내문들이다. 보호자들의 각종 윽박에 병원 리뷰 테러, 맘카페 갑질까지. 소아과 전공을 택한 의사들 중 악성 민원에 시달려 진료를 접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13일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등에 따르면 지난달 충남 홍성의 A소아과 의원은 맘카페 회원의 갑질에 시달려 병원을 폐업하고 성인 진료로 전환할 예정이라는 공지문을 게시했다. A소아과는 초진인 9세 환아가 보호자 연락이나 대동 없이 홀로 내원해 보호자와 함께 오라는 당부와 함께 아이를 돌려보낸 바 있다. ‘14세 미만은 보호자가 동반해야 한다’는 내부 방침에 따른 조치였다.  

이에 아이의 엄마는 해당 병원이 진료를 거부했다며 관할 보건소에 민원을 제기했다. 민원을 넣은 이는 관련 글을 맘카페에 올리기도 했는데, 주장 중 일부는 거짓으로 드러나 글을 삭제하고 민원을 취하했다. 하지만 A소아과는 폐과를 결심하고 더 이상 소아과 전문의로 활동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A소아과 의원은 공지문을 통해 “보호자의 악의에 찬 민원에 그간 어려운 상황에서도 소아청소년 진료를 열심히 한 것에 대한 회의가 심하게 느껴져 더는 진료를 지속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며 “안타깝지만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제한하거나 성인 진료로 전환할 예정이다”라고 전했다.

지난달 6일 광주의 B소아과 의원도 악성 민원으로 폐과를 선언했다. B소아과 의원에 따르면, 피부가 붓고 고름과 진물이 나오는 4살 아이가 병원을 찾아 두 차례 진료 후 상태가 나아졌지만, 보호자는 간호사 서비스가 불충분하다며 허위·악성 민원을 제기했다. B소아과 의원은 공고를 통해 “환자가 아닌 이런 보호자를 위한 의료 행위는 더 이상 하기 힘들다고 판단한다”며 “아픈 환자 진료에 진심을 다하기 위해 소아청소년과 의원을 폐과하고 만성 통증과 내과 질환을 치료하는 의사로 살아가겠다”고 밝혔다.

최근 소아과 의사들의 진료 과목 변경은 심화되고 있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3월 기준 소아청소년과 상근 전문의는 3338명으로 이 중 667(20%)명은 다른 과를 진료하고 있다. 5년 전인 2018년 3월과 비교하면 6.5%p 증가한 수치다.

전문의로서 기반을 닦은 동네 소아과 의사들도 아동 진료를 기피하는 형국에 전공의 지원도 바닥을 찍고 있다. 2023년도 전반기 전공의 모집에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은 총 199명 중 33명에 그쳤으며, 하반기 상급년차 모집에는 전체 278명 중 단 2명만이 지원 서류를 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은 지나친 항의에 소아과 의사들이 멍든다며, 이로 인한 피해는 결국 아이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전했다. 최용재 대한아동병원협회 부회장(튼튼어린이병원장)은 “소아과에서 심하게 보채거나 의사와 직원들에게 부당한 불평을 하는 분들이 있는데, 결국 그 결과는 아이에게 향한다”며 “어느 순간 부모들이 소아과를 하찮게 여기게 됐다. 그래서 소아과 의사들은 보람 있는 곳을 찾아 이동한다. 제도적 불이익이나 사회적으로 부당한 대우가 계속된다면 의사들의 이동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악성 민원들로 일차 의료를 담당하는 소아과 의원이 무너지면 그 부담을 아동병원과 대학병원이 떠맡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최 부회장은 “소아과 의원 환자들이 아동병원과 대학병원으로 몰리면 중증환자를 볼 역량을 잃게 될 것”이라며 “악성 민원은 편익을 위해 다른 아이의 생명을 위협하는 행동이다. 의사가 다른 직종으로 옮겨가면 환자는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회를 잃게 된다”고 했다.

이어 “의료진이 위축되면 적극적인 진료를 할 수 없다. 이미 사회적 분위기는 과할 정도로 필수의료를 위축시키고 있다”며 “직원들이 지속적으로 병원을 그만두고 있다. 소아과 근무는 ‘3D(Difficult, Dirty, Dangerous) 직종’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고 역설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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