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은 옛말…한국과 일본의 스포츠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

기사승인 2023-09-16 06: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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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은 옛말…한국과 일본의 스포츠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
지난 10일 독일을 상대로 4대 1로 완승을 거둔 일본 축구 대표팀. AP 연합

지난 10일 축구계에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일본 축구대표팀이 독일 볼프스부르크 폭스바겐 아레나에서 독일 축구대표팀을 상대로 4대 1로 승리를 거뒀다. 지난해 11월 카타르에서 열린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E조에서 일본이 2대 1로 이긴 바 있지만 당시 일본은 전략적인 카운트 어택으로 이변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번에는 독일을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일본이 독일을 격파하기 이틀전 한국은 영국 카디프의 카디프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웨일스와 평가전에서 유효 슈팅이 1개에 그치는 졸전 끝에 0대 0 무승부를 거뒀다.

이미 한국과 일본의 격차는 벌어진 지 오래다. 한국은 최근 성인 대표팀을 비롯한 각급 대표팀 경기에서 5경기 연속으로 패배를 기록한 바 있다. 이 중 파울루 벤투 감독 시절 성인 대표팀이 2번 모두 0대 3으로 대패하는 굴욕을 맛보기도 했다.

비단 축구 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야구에서는 이미 격차가 하늘과 별 차이다. 일본은 지난 3월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결승전에서 미국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반면, 한국은 1라운드 탈락이라는 굴욕을 맛봤다. 1라운드 맞대결 당시 한국은 일본에 4대 13으로 참패했다.

농구와 배구의 격차는 더욱 심하다. 과거 농구 만큼은 ‘한국이 일본보다 위’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제는 옛말에 불과하다. 최근 막을 내린 ‘2023 국제농구연맹(FIBA)’에서 일본은 최종 3승 2패라는 기대 이상의 성적으로 ‘2024 파리 올림픽’ 진출권도 따냈다. 한국은 코로나19 확산 당시 지역 예선에 불참해 농구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지도 못했다.

배구 격차 제일 심하다. 일본 남자배구는 국제 배구 최상위 리그인 ‘2023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3위를 써가며 역대 최고 성적을 썼다. 준결승 무대에서 세계 최강 폴란드에 덜미가 잡혔지만 3~4위 결정전에서 세계랭킹 3위 이탈리아를 꺾고 당당히 메달을 목에 걸었다. 

반면 한국은 국제 랭킹이 낮아 VNL 참가 자격도 얻지 못했다. 한국 남자배구는 지난 7월 ‘2023 아시아배구연맹(AVC) 챌린지컵’ 바레인과 4강전에서 패배해 VNL 진출 자격을 얻지 못했다. 지난 8월 아시아선수권도 고전 끝에 5위에 머물렀다.

여자배구의 격차도 나날이 벌어지고 있다. 여자배구는 VNL에서 지난해와 올해 모두 전패를 당하는 최악의 수모를 겪었다. 반면 일본은 예선 라운드를 7위로 마쳐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하며 경쟁력을 입증했다.

201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한일전 이라 부를 만큼 일부 종목에서 비슷한 위상과 위치에 있었지만, 10년이 지난 만큼 두 국가의 격차는 어느덧 걷잡을 수 없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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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기뻐하는 일본 야구대표팀. AP 연합

한국과 일본의 스포츠 경쟁력 격차가 벌어진 데는 일본의 장기적이고 철저한 계획과 종목을 향한 아낌없는 투자에서 비롯됐다.

일본은 스포츠에서 각 종목 별로 장기적인 시선과 세분화된 계획을 가지고 운영한다. 또한 한 대회에서 성적을 내는 게 끝이 아닌 10년, 20년을 바라보고 움직인다.

일본의 WBC 우승이 대표적이다. 일본의 우승은 스타 선수들의 활약도 있지만, 일본야구기구(NPB), 일본야구협회 등이 계획적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일본은 2013년 WBC에서 3연패에 실패한 뒤 대표팀 경기력 강화에 나섰다. NPB는 이후 ‘일본 대표 마케팅 위원회’라는 조직을 창설해 일본야구협회와 함께 연령별 대표팀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사무라이 재팬’이라는 이름도 붙여 팬들에게 각인시켰다.

나아가 전담 감독을 선임하고, 일본 프로야구 시즌이 끝나면 대표팀을 소집해 함께 훈련하며 멕시코, 대만, 프랑스 등 국가 대표팀은 물론이고 프로팀과도 평가전을 치렀다. 2023 WBC를 앞두고 일본은 작년 11월 호주와 두 차례 평가전을 실시했다. 이번 대회에서 맹활약한 주축 선수들은 이때부터 호흡하며 손발을 맞췄다.

반면 한국은 제대로 된 계획 없이 대회에 참가했다. 대회 개막 7개월을 앞두고서야 감독을 선임했다. 심지어 전임 감독이 아닌 kt 위즈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이강철 감독이 대표팀을 맡아 대표팀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회 개최 직전 베이스 캠프도 개최지인 일본이 아닌 kt 위즈의 스프링캠프가 진행 중이던 미국 애리조나에서 하는 바람에 소속팀이 달랐던 일부 선수들은 엄청난 거리를 오가기도 했다. 

라이벌은 옛말…한국과 일본의 스포츠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
지난 8월 열린 농구 월드컵에서 호성적을 거둔 일본 농구 대표팀. AP 연합

일본은 이러한 철저한 계획들을 앞세워 기업들의 투자도 적극적으로 이끌어내고 있다.

일본농구협회(JBA)의 경우 2019년 일본 최대 통신사인 소프트뱅크와 4년간 125억엔(약 1430억원)에 달하는 대형 스폰서 계약을 맺는 등 파격적인 행보로 눈길을 모았다. JBA는 이를 재투자해 국가대표팀 경쟁력 강화에 힘을 썼다. 많은 코치들을 선임하면서 선수들에게 더욱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창출하고, 매년 프로리그가 종료된 이후에는 유럽의 일부 농구 강국들을 초청해 평가전을 치르면서 대표팀 경쟁력을 키웠다.

한국도 최근 몇 년 간 비시즌에 평가전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필리핀,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을 초청하는 데 그쳤다. 이마저도 1년에 1~2번에 불과했다. 또한 이번 농구대표팀은 아시안 게임 직전까지 제대로 된 파트너를 구하지 못해 훈련도 진행하지 못하다 아시안게임 직전에서야 일본 전지훈련을 떠났다. 

양 국가 협회들의 행정력 차이도 눈에 띈다.

일본축구협회는 ‘100년 계획’을 추진하면서 그 일환으로 지난 2020년엔 독일 뒤셀도르프에 일본축구협회 유럽 오피스를 오픈했다. 뒤셀도르프 센터에는 천연 잔디 축구장 1개에 샤워실, 라커룸, 안마방 등 치료실을 갖췄다. 유럽 리그에서 뛰는 일본 선수들이 훈련과 마사지, 재활, 간단한 치료, 정신 관리 등을 일상적으로 받을 수 있다. 일본 축구 대표팀의 유럽 원정 때 훈련 시설로도 활용된다.

9월에도 일본, 터키 등 유럽 강호들과 격돌한 일본 축구는 오는 10월에 북중미의 다크호스 캐나다, 튀니지 등 강력한 상대들과 계속해 스파링을 하면서 경쟁력을 쌓고 있다. 반면 한국은 오는 10월 32년 만에 동남아 팀(베트남)과 국내 평가전을 치른다. 내년 1월 아시안컵을 대비해 치르는 경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만 큰 의미가 없는 경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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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웨일스와 축구 평가전에서 졸전 끝에 0대 0으로 비긴 한국 축구대표팀. 대한축구협회(KFA)

유소년 저변 마저 양 국가의 차이는 크게 난다.

일본 스포츠는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한 학원 스포츠로 꽃을 피웠다. 일본의 학생들은 학교에서 부활동 등을 통해 스포츠를 접한다. 또한 야구의 고시엔, 축구 농구등이 포함된 인터하이 등 일본의 고교 국제 대회는 수백 개가 넘는 학교들이 참가할 정도로 수 많은 인원들이 참가한다. 유소년 선수들은 이 같은 대회에 참가하며 성장하고 발전하며 스포츠 선수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엘리트 스포츠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은 최근 인구가 즐면서 스포츠 존립 기반도 흔들리고 있는 처지다. 2022년 초등학교 운동부 등록 선수는 2만명이 넘지 않았다. 프로 스포츠가 있는 종목들은 그나마 처지가 낫지만, 비인기·아마추어 종목들은 선수 수급에 애를 먹고 있다.

갖은 문제점들로 인해 일본과 한국의 스포츠 경쟁력은 어느덧 비교하기 민망할 만큼 벌어졌다. 한국도 지금부터 달라져야 한다. 모든 기관들, 모든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김찬홍 기자 kch0949@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