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정원이 확대되면 국민 의료비 부담이 증가할 것이라는 대한의사협회의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의대 정원 확대 규모가 2000명이 될 경우 국민 1인당 월 6만원, 3000명 증원한다면 월 8만5000원의 의료비를 더 부담해야 한다고 전망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은 19일 서울 중구 한반도선진화재단에서 긴급토론회를 개최해 이같은 추계치를 발표했다. 이날 모인 전문가들은 의대 정원이 늘어난다면 의료비 증가는 필연적이라며, 건강보험과 의료개혁 없인 의료인력을 조절해선 안 된다고 피력했다.
발제자로 나선 우봉식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장은 “보건의료 지표 중 의료비(건보 재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의사 수와 병상 수”라며 “건보 재정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의사 수를 대폭 늘리면 어떻게 되겠나”라고 반문했다.
연구원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국민의료비 결정요인에 대한 실증분석을 한 결과, 인구 1000명당 의사 1명이 증가할 경우 의료비가 약 22%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1인당 의료비는 159달러 증가했다.
의사 수는 요양급여비용 증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난 10년간 보건의료비 데이터에 따르면 우리나라 의사 1인당 의과 요양급여비용은 2010년 3억5190만5000원에서 2020년 5억6588만6000원으로 10년만에 약 60% 늘어났다. 현재 의대 정원을 유지한다고 해도 요양급여비용은 고령화, 의료이용 증가 등에 따라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의대 정원을 확대하면 요양급여비용 총액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연구원이 현재 거론되는 의대 증원 규모에 따른 요양급여비용 총액을 계산한 결과, 350명 증원을 가정하면 2040년엔 약 6조원이 더 투입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대 정원 1000명을 늘릴 경우 2040년 요양급여비용 총액은 약 17조원 더 확대되는 것으로 추정했다.
의대 증원 규모가 2000명, 3000명일 경우 2040년 요양급여비용은 각각 약 35조원, 약 52조원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 경우 국민 1인당 월 6만원, 8만5000원 의료비를 더 부담해야 한다고 연구원은 조사했다.
우 원장은 “앞으로 계속 배출된 의사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하는 2040년 이후엔 의료비 증가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심각한 건보재정 파탄이 예고된 상황에서 병상 총량을 관리할 정책도 세우지 않고, 대학병원 수도권 분원을 무한정 증설하게 하며 그 병상을 운영하기 위해 의사를 무한정 늘리겠다면 결국 건강보험료 폭탄으로 되돌아 올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저수가 기조 때문에 의료가 왜곡돼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수가체계를 개선하지 않고 비급여 시장을 관리하지 않으면 의대 정원을 늘려도 필수의료 붕괴, 지역의료 공백 문제는 해소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고려대 안암병원장을 지낸 박종훈 고려대 의대 교수는 “우리나라 의료는 현재 위험 수위에 도달해 있다”며 “의사들에게 과잉진료를 하지 말 것을 주문하면 ‘수가가 너무 열악하다’고 입을 모은다. 살기 위해서는 영리성이 강한 비급여 진료를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박 교수는 “중증 분야 기피현상은 의료시장의 왜곡 현상에 기인한다”면서 “중증질환은 건강보험 수가 책정 초기부터 일찌감치 급여체제로 들어와 있던 반면 피부, 미용 등은 급여 범위 밖의 의료행위였다. 피부, 미용은 경제 수준이 높아지며 비급여 영리화하기 좋은 분야로 발전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저수가 기조는 급여를 기반으로 한 중증 필수 분야의 몰락을 초래했고 영리 비급여 진료의 영역이 확대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의료인력 쏠림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의료체제 개선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도 “필수의료와 지방의료 공백을 위해선 건강보험 개혁이 우선”이라며 “국민들은 항상 보다 많은 급여 혜택을 요구했고 포퓰리즘 정책으로 이어졌다. 그동안은 보험수가 억제를 통한 희생으로 사실상 유지해올 수 있었다. 의대 증원 문제는 이들의 희생을 더 강요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의료시장의 가장 큰 문제로 필수의료 부족과 지방의료 공백은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우선돼야 하고, 이에 따른 의사 정원을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수가 인상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