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호 안양시장이 쏘아 올린 국철1호선 지하화사업...14년 만에 빛을 보다

국회 특별법 통과로 지자체마다 기대감 ‘쑥쑥’
4ㆍ10 총선 앞둔 여야 모두 제각각 지하화 공약..재원조달 우려도
경제성 검토, 구간 선정 등 갈 길 멀어

입력 2024-02-06 12: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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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호 안양시장이 쏘아 올린 국철1호선 지하화사업...14년 만에 빛을 보다
최대호 안양시장

“국철1호선 안양구간을 지하화하겠습니다.”

지난 2010년 5월 중순, 경기 안양시 만안구의 한 건물. 6ㆍ2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 전신) 최대호 안양시장 후보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이 같은 내용의 공약을 발표했다.

관련법이 통과된 지금 돌이켜보면 미래를 점친 ‘신박한’ 구상이었지만, 당시 기자들 반응은 시큰둥했다.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기초자치단체장이 내걸 공약이 아닌 데다 막대한 재원 마련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건 상식적으로 여겨졌다. ‘선거용’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당시 최 시장이 쏘아 올린 국철1호선 지하화사업은 지역 정가를 들끓게 했다. 일부 시의원은 물론 지역 국회의원도 비판적 시각을 여실히 드러냈다. 선거를 앞두고 표를 의식한 ‘정치적 선동’이라는 거친 발언도 나왔다.

그로부터 14년이 흐른 지난달 9일 국회에서는 ‘철도지하화 및 철도부지 통합개발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됐다. 천문학적 재원 조달의 어려움으로 불가능할 것 같았던 사업의 법적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특별법 통과로 국철이 지나는 지자체마다 타당성 용역 등 분주해졌다. 지하화사업 구간에 포함되기 위한 명분 때문이다. 때마침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도 여야 할 것 없이 이를 공약하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갈 길은 여전히 먼데 장밋빛 전망만 쏟아지면서다.

도심을 관통하면서 도시 단절과 소음, 분진 등 도시성장의 장애물로만 여겨졌던 철도가 특별법 통과로 오히려 도시발전 정체기에 직면한 지자체에게는 지상개발을 통한 미래 발전의 새 돌파구로 인식되기도 한다.

‘정치 이벤트’ ‘지방선거용 표몰이’ ‘정치적 선동’ 등 공공연한 비판 속에서도 이를 최초 공약하고 추진해 온 안양시 사례를 통해 최근 이슈로 떠오른 국철지하화 사업을 되짚어본다.

◆험난했던 진행과정‘우공이산’이 만들어 낸 14년만의 결실

최대호 시장 선거공약으로 시작된 국철1호선 안양구간 지하화사업은 첫발부터 순탄치 않았다. 최 시장 취임 첫해인 2010년 12월 안양시가 제출한 관련 용역은 시의회에서 비판받았다. 구로철도기지를 안양으로 유치하고 이전 사업비 5000억 원을 지하화사업 비용으로 충당한다는 최 시장의 계획이 논란이 됐고, “실현 가능성이 1%도 없는 사업에 행정력만 낭비하고 있다”는 비난 발언까지 나왔다.

최 시장은 2년여 뒤 사업방식과 명칭을 바꿨다. 철도지하화는 안양시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착안해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인근 군포시를 비롯해 서울 용산ㆍ동작ㆍ영등포ㆍ구로ㆍ금천구 등과 힘을 모으기로 했다.

2012년 10월, 안양시를 포함한 7개 지자체가 ‘경부선철도지하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했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에서 국책사업으로 추진해 줄 것을 요구했다. 당초 안양 6.4㎞(석수~명학)였던 지하화 추진구간은 서울역~군포 당정역 32㎞로 늘어났고, 당시 기준으로 추산 사업비만 9조6000억 원에 달했다.

그해 10월 경부선철도 지하화 촉구 대시민 서명운동이 전개됐고, 불과 한 달 만에 103만 명의 서명지가 12월 대선을 앞둔 후보에게 전달되는 등 대선후보 공약화도 추진됐다.

비판도 계속됐다. 그해 11월에는 당시 새누리당 안양시의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시가 중앙정부와 사전 협의도 없이 밀어붙이기 식으로 국철지하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이듬해 2월, 박근혜 대통령인수위원회에 지하화 촉구 건의문이 전달됐지만 공약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5월에는 7개 지자체가 사업비 8억3000만 원을 들여 경부선 지하화 기본구상용역에 착수했다. 안양시는 지역 국회의원과 주민 등 1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착수보고회를 열기도 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최대호 시장이 낙선하면서 그의 대표 공약인 국철지하화는 한동안 수면 아래 가라앉았다. 2018년 지방선거에 나선 최 시장은 이를 다시 공약했고, 지역 정치권 분위기는 바뀌었다. 이제 누구도 이 공약을 비판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들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대선 때마다 후보 공약에 포함시키기 위한 안간힘이 이어졌고,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지역 유세에서 이를 약속하면서 지하화 사업은 비로소 추진동력을 확보했다. 

더 이상 ‘포퓰리즘’ ‘선거용 표몰이’ 등 비판은 최소한 출마 후보들 간에는 나오지 않는 ‘당연한’ 공약으로 안착했다.

최대호 안양시장이 쏘아 올린 국철1호선 지하화사업...14년 만에 빛을 보다
최대호 안양시장은 2022년 9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을 만나 국철1호선 경부선 지하화 추진을 건의했다.

◆ 4ㆍ10 총선 앞두고 정치권마다 공약으로 민심잡기

국철지하화는 한때 ‘포퓰리즘’ 등 비판 대상에 올랐지만 어느덧 비판하던 상대방도 이를 선거공약으로 내걸 정도로 인식도 변화했다. 안양시 관계자는 “도심을 관통하면서 지역발전의 걸림돌이었던 철도가 개발 가용면적이 없는 지자체에게는 지상부지 개발을 통해 균형발전은 물론 도시성장의 새로운 모멘텀으로 부상할 개연성이 크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2010년 최 시장의 선거공약으로 시작된 국철지하화는 이후 경부선뿐 아니라 경의선 등 지자체마다 추진을 요구하는 단골 공약이 됐다.

지난달 특별법 통과에 이어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모두 공약으로 내걸 만큼 큰 이슈로 떠올랐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31일 경기 수원시 장안구를 방문해 구도심 철도 지하화를 공약한데 이어 민주당이 1일 경부선 경의선뿐 아니라 도심을 지나는 모든 철도를 지하화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으면서 국가 재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재원조달 방안이 철도부지 개발사업 수익으로 충당하는 ‘민자 유치’라고 특별법에도 명시됐지만 이는 사실상 추상적 개념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철도가 지나는 구간에 따라 개발에 대한 경제적 효과가 판이하기 때문에 사업성 검토 등 구간선정 과정에도 험로가 예상된다.

사업 가시화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최대호 시장 일문일답

-처음 이 공약을 내걸 당시, 실현가능성에 회의적 시각이 컸음에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2010년 안양시장에 출마할 당시 안양시 100년 미래를 위해 해결해야 할 근본적 문제가 무엇인지 고민했고, 안양을 동서로 분단시키고 있는 국철1호선 지하화가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시장 후보로 이 공약을 발표했을 당시에는 ‘된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이라면서도 누구도 이 공약이 지켜지리라 섣불리 믿지 않았다. 막대한 재원조달 방안과 특별법 제정 등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아서다. 하지만 ‘우공이산’처럼 내가 나서고 시민이 함께 하면 결국 이루어진다는 것을 느꼈다. 눈앞의 현실적 정책도 중요하지만 다음 세대를 위한 미래지향적 정책의 필요성을 실감하는 계기가 됐다. 다시 생각해도 특별법 통과는 감개무량하다.”
  
-특별법 통과 이후에도 구체적 재원조달 방안과 구간선정 등 가야할 길이 먼데.

“우선 구간지정이 첫 과제다. 국철이 지나는 많은 지자체가 지하화사업을 요구하고 있고, 선거를 앞두고 여야 모두 관련 공약을 쏟아내고 있는 상황이다. 밀집된 도심 철도가 우선돼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재원방안에 대해서는 특별법에도 민자 유치로 나와 있지만, 이는 추상적 개념이라 사업을 위한 경제성 검토 등 전문 용역 등을 통해 산출해봐야 한다.”
  
-향후 국철 지하화 사업이 마무리되면 안양은 어떻게 바뀌게 될지.

“가용면적이 없는 안양시는 이미 도시발전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특히 구도심인 만안구는 평촌신도시를 품은 동안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뎠다. 선거 때마다 출마자들이 지역 균형발전을 내세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안양을 동서로 단절하고 있는 철도가 사라지면 지상부지 개발을 통해 지역 균형발전은 물론 안양의 랜드마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많지만 이제 첫 단추를 꿴 만큼 시민들의 의견과 뜻을 모아 미래를 준비하고 설계할 생각이다.”
  
-특별법 통과에 대해 시민들에게 한 말씀 한다면.

“국철 지하화를 전국 최초로 최대호 공약으로 내걸 당시만 해도 이 공약이 지켜지리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인근 지자체들을 설득해 협의체를 구성해 밀어붙였고, 경기 군포시를 비롯, 서울 용산ㆍ동작ㆍ영등포ㆍ구로ㆍ금천구가 함께 해왔다. 103만 명이 넘는 시민들도 서명운동에 동참하면서 오랜 기간의 노력이 이제야 그 빛을 보게 됐다. 경부선 철도가 개통된 1905년 이후 무려 130년 가까이 된 국철은 이제 소음과 분진, 환경문제에 이어 지역발전의 큰 걸림돌이 된 지 오래다. 더 이상 지역 주민들의 희생을 요구해선 안 된다고 본다. 안양시가 이 사업을 첫 구상하고 추진해온 만큼 그 동안의 각종 용역과 준비과정 등 경험이 안양구간이 우선 선정되는 데 유효하리라 본다. 함께 힘을 쏟아준 시민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안양=김태영 기자 ktynews@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