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참사 기억법, 추모 공간은 지금[참사, 기억①]

한국의 참사 기억법, 추모 공간은 지금[참사, 기억①]

기사승인 2024-02-08 11:00:02
1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매헌 시민의 숲에 마련된 삼풍참사위령탑을 찾았다. 사진=임지혜 기자

설을 앞두고 경북 문경시의 육가공품 공장 화재 현장에서 고립됐던 소방관 2명이 순직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비극적 사고는 해마다 끊이지 않는다. 와우아파트 붕괴(1980) 성수대교 붕괴(1994) 삼풍백화점 붕괴(1995) 대구 지하철 화재(2003) 용산 참사(2009) 우면산 산사태(2011) 세월호 사고(2014)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2022) 이태원 압사 사고(2022) 오송지하차도(2023) 등 사회적 참사는 이어져 왔다.

재난과 참사는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피해 복구와 지원의 중요성, 국가의 안전 시스템을 돌아보게 한다. 참사를 경험한 생존자, 유족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참사가 잊혀진다고 말한다. 또 한 해가 밝았다. 우리는 지난 참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꼭꼭 숨은 추모 공간…잊힌 참사의 기억

1994년 10월21일 32명의 희생자를 낸 성수대교 붕괴 참사 위령비는 도시고속도로(강변북로) 사이 외딴 섬 같은 공간에 마련돼 있다. 도보로는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 지난 1일 ‘성수대교 사고 희생자 위령비’ 주차장을 내비게이션에 입력하고 도착한 곳은 성수동 한강사업본부였다. 본부 관계자는 “차로만 갈 수 있다. 고속화도로를 지나야 해 위험하다”고 말했다. 먼저 휴대전화 지도를 따라 위령비 근처까지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가로막힌 철조망 뒤로 차들이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이 길을 자주 산책한다는 한 어르신은 “성수대교 사고는 알지만, 위령비는 본 적 없다”고 잘라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를 통해 도보 접근이 가능한 길을 찾았지만, 차들이 빠르게 지나는 터널을 지나 자동차 전용 도로를 걸어야 했다. 그마저 터널의 좁은 도보 구역은 녹색 철문으로 굳게 잠겨 있었다. 서울시설공단 관계자는 “강변북로가 연결돼 있어 위험하다는 판단에 막았다”며 “제가 알기론 위령비에 걸어 갈 수 있는 길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차량을 이용해 강변북로 도로와 도로 사이에 마련된 주차장을 통해 방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기자가 이날 확인한 위령비 주차장 입구는 화분들로 막혀 있었다.

성수대교 붕괴 참사 위령비는 도시고속도로(강변북로) 사이 공간(빨간 상자)에 마련돼 있다. 사진=임지혜 기자

1995년 6월29일 502명의 목숨을 앗아간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를 추모하는 삼풍참사위령탑도 외롭게 서 있긴 마찬가지다. 위령탑은 참사 현장과는 6㎞가량 떨어진 서울 서초구 양재동 매헌 시민의 숲에 마련돼 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자리엔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섰다. 참사 직후 삼풍백화점 자치에 추모공원을 조성하자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비싼 땅값과 주민 반대에 막혀 참사와 아무 관계 없는 이곳에 세워졌다고 한다. 

삼풍참사위령탑은 매헌 시민의 숲 남측 2구역 가장 끝자락에 있었다. 공원 중앙에 위치한 미얀마 대한항공 858기 희생자위령탑 뒤편,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서 있는 삼풍참사위령탑이 보였다. 조화만이 덩그러니 곁을 지키고 있었다. 매헌윤봉길기념관과 운동시설 등이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던 1구역과는 대비되는 풍경이다. 삼풍참사위령탑 앞 안내문 글귀는 세월에 상당 부분 지워져 ‘삼풍위령탑을 잊지 않고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는 내용만을 짐작하게 했다. 또 2011년 7월 우면산 산사태로 목숨을 잃은 15명의 희생자와 유족을 위로하는 ‘일상의 추념’ 위로비도 우면산이 아닌 매헌 시민의 숲에 있다.

1970년 4월8일 3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울 마포구 창전동 와우아파트 붕괴 참사도 시민에게 잊혔다. 참사 현장에는 와우공원이 들어섰고, 공원 입구 계단에 당시 희생자를 추모하는 동판이 설치됐다. 하지만 크기가 작고 계단 손잡이에 가려져 눈에 띄지 않았다. 지난 2일 현장을 찾은 기자도 이 계단을 몇 번을 지나쳤지만, 동판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아챘다. 나이가 지긋한 한 주민은 “오래전 이미 잊힌 사고”라며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1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매헌 시민의 숲에 마련된 삼풍참사위령탑의 안내 글귀가 대부분 지워져 있다. 사진=임지혜 기자

“결코 잊혀서는 안 된다”…참사 경각심 되새겨야


시간은 흐르고 그날의 아픈 감정과 기억은 흐려진다. 하지만 희생자 유가족, 참사를 목도한 이들의 시간은 참사 당일에 멈춰 있다. 2009년 1월20일 재개발에 반발하던 철거민 등이 망루 농성을 벌이던 중 경찰 진압 과정에서 불이 나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숨진 용산 참사 현장에 있던 김모씨의 기억도 그대로다.

김씨는 “숨진 철거민들의 얼굴, 함께 한 대화, 남일당 불길이 아직도 생각난다”며 한동안 말을 잊지 못하고 울먹였다. 이어 “수억씩 대출받아 가게를 열었는데 재개발이 결정되고 나오는 보상금은 턱없이 모자란 수준이었다. 누가 그냥 나올 수 있었겠나. 이전만 해도 평범한 시민이었던 사람들이 그렇게 남일당 건물 망루에 올라 세상을 떠났다.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고 잊어서도 안 된다”고 덧붙였다.

생존자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2019년 용산 참사 당시 망루 농상에 올랐던 철거민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참사가 난 남일당 건물이 있던 자리에는 43층 주상복합이 들어섰다. 참사의 흔적은 이곳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용산 참사 추모비는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 있다.

2일 서울 마포구 창전동 와우공원에는 와우아파트 붕괴 참사 추모 동판이 마련돼 있다. 사진=이예솔 기자

시민들은 참사 추모 공간 조성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참사에 대한 경각심을 되새겨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와우공원 인근 학교에 재학 중인 중학생 김태호(가명·15)·권현준(가명·17)군은 “추모 동판이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 유가족이 더 슬플 것 같다”며 “잘 보이는 곳으로 옮겨야 시민들도 추모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성수대교 사고 희생자 위령비 인근에서 만난 시민 A씨는 “도로 사이에 위령비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추모를 할 수 없는 위치에 있어 위령비 자리를 옮겨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아무도 찾지 않은 삼풍참사위령탑에는 이 같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뜻하지 않는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의 넋을 위로하고, 다시는 이 땅 위에 그런 가슴 아픈 탈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짐하고자 위령탑을 세웠다.’

임지혜 이예솔 기자 jihye@kukinews.com

임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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